우연과 인연의 땅, 나의 스리랑카 진료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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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인연의 땅, 나의 스리랑카 진료답사기
  • 신순희
  • 승인 2014.09.04 15:3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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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신순희 원장의 스리랑카 힐링캠프 후기

 

2014년 8월 9일 토요일 밤 11시,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를 향해 비행기가 출발한다. 8시간 넘는 비행 후 바로 진료지까지 차로 5시간쯤 이동해야 한다. 후발대로 출발한 나와 송화수선생은 진료 당일 새벽에 공항 도착이라 다른 선택이 없다. 몸이 잘 버텨줄지 살짝 걱정된다.

이미 스리랑카 현지에서는 구강암 국제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고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구강암 연구기금을 지원받는 김진교수는 선발대(구강병리학 교실 연구원들과 경기도 치위생사협회 임원들)와 함께 Sri Lanka Oral Cancer Research Center 설립을 주도하고 계신다. 교수님의 연구비가 대한민국을 넘어 인류의 구강암 정복을 위해 쓰이는 중이다.

구강암 발병률 세계 1위, 국민 암 중 발병 1위가 구강암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스리랑카는 인구 2천만 국가에 치과대학이 하나뿐인 가난한 나라라 상황 개선을 위해서는 외부지원이 절실하다. 바로 그 절실한 외부지원이 대한민국이고 구강병리학자 김진이고 바텍, 오스템 등 우리 치과계 기업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바텍은 2013년에 스리랑카 유일의 치과대학인 페라데니아 치과대학병원에 Dental CT를 기증했고 오스템은 2014년 힐링캠프에 진료물품을 지원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좋은 본보기이다.)

▲ 아레카넛과 베텔잎

스리랑카에 구강암이 그렇게나 많은 이유는 아레카넛, 베텔잎 등 씹는담배가 주원인이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오늘 우리 진료단은 고산지대 차밭으로 간다. 아무리 실험실에서 조직 슬라이드를 보며 구강암을 연구하고 훌륭한 치료법을 개발한다고 해도 구강암을 줄이거나 정복할 수는 없다는 연구자의 좌절감이, 결국 구강암 정복을 위해서는 환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뭔가 열쇠를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기에,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연구실을 나온 연구자는 그렇게 스리랑카 고산지대의 차밭 노동자들 삶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연구를 위한 연구라 하더라도 논문 실적만 채우면 지원받은 연구기금에 대한 의무는 끝날 텐데도 예순이 넘은 노교수는 굳이 그 가파른 고갯길을 오른다. 그의 길을 나도 잠깐 따라 걷는다. 그 곳에서 그가 그의 일을 할 수 있게 나는 나의 일을 하려 한다.

스리랑카는 정말 가난하다. 수도 콜롬보와 제 2의 도시 캔디를 연결하는 유일한 도로가 1차선이다. 새벽 4시에 콜롬보 공항에 내려 캔디까지 가는 내내 군데군데 포장이 벗겨진 도로 탓에 택시가 덜컹거린다. 캔디에 도착해 선발대와 합류한 후 버스로 타밀족이 사는 고산지대를 향해 다시 산길을 달린다.

가파른 산길은 금방이라도 흙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아름다운 주변 풍광을 감상하기에는 차창 옆을 스치는 낭떠러지가 아찔하다. 우리가 오늘 가는 차밭 지역은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에 살던 타밀족을 이주시켜 조성한 거대한 차 생산지라고 한다. 대부분이 불교도인 스리랑카 원주민과 달리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이 이주해 와 언어도 다르고 종교 갈등도 있다. 타밀호랑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타밀반군은 2004년 쓰나미 때 큰 타격을 입었지만 여전히 와해되지 않고 활동 중이란다.

낡은 버스의 멈출 듯 긴 오름 끝에 오늘의 진료지 sogama estate에 도착했다. 마을 주민 전체가 나와 기다리다 크게 환영해주는데 신발을 신은 사람이 몇 없다. 아이들의 옷도 허술하다. 그나마 1년 내내 춥지 않으니 다행이지 싶다. 그런데도 다들 표정이 정말 밝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어른신들 표정도 천국의 어린아이 수준이다. 진료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줄 앞에서도 누구하나 재촉하지 않는다.

▲ 주민들의 환영식

오전 10시쯤 진료를 시작해 겨우 한 시간 정도 분주히 환자를 보고 있을 때 차를 마시러 오라는 전갈이 왔다. 기다리는 환자 줄이 길어 가고 싶지 않지만 동네 촌장쯤 되는 분들과 부녀회쯤 되는 분들이 빵까지 구워 놓고 기다린다는데 안갈 수가 없다. 줄 선 환자들에게 미안해 고개를 숙인 채 얼른 뛰어 간다. 실론티의 나라 스리랑카답게 최고급 홍차가 진하게 들어간 짜이를 잔뜩 준다. 얼른 마시고 눈치껏 앉았다가 진료차량으로 돌아와 다시 환자를 본다.

다시 한 시간쯤 환자를 보고 있으니 이번엔 점심 먹으러 오라는 전갈이다. 방금 전 먹은 다과가 아직 위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점심이라니. 그래도 혹여 민폐가 될까 싶어 더부룩한 속을 부여잡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노란카레, 빨간카레, 각종 카레가 차려진 점심을 먹고 진료차량으로 돌아간다. 가보니 아직 현지 진료 보조원의 점심식사가 안 끝났나 보다. 어차피 기다려야 한다. 혼자 서성거리는데 오전에 치료받아 안면을 익힌 꼬마 녀석이 장난을 걸어온다. 동네 아이들과 잠깐 뛰어 논다. 맨발인 녀석들이 돌길을 나보다 훨씬 더 잘 뛴다. 가쁜 숨을 내쉬며 나이 탓을 한다.

▲ 마을 어린이들과

오후 진료가 드디어 시작되고 오전부터 줄 서 기다린 환자들을 서둘러 보고 있는데 또다시 오후 차를 마시러 오라는 전갈이다. 너무 자주 쉬는 것 같아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홍차를 진료차량까지 들고 온다. 포트에 컵에 컵받침에 다과들이 줄줄이 배달된다. 현지 진료보조원이 체어 옆에 서서 차를 마신다. 괜히 일이 더 번잡해지는 것 같아 항복하고 차 마시러 다시 갔다. 가서 짧은 영어로 가능한 점잖은 거절의 말을 전했다. 차를 많이 마시면 밤에 잠이 잘 안와서 그러니 이제 티타임에 나를 그만 불러 달라고. 적당한 예의를 차린 후 얼른 돌아와 환자를 보고 있는데 5시쯤 되니 이제 그만 진료를 끝내고 내려가야 한단다. 고산지대라 해가 금방 지고 산길이 비탈진데다 비까지 내려 미끄러워 야간에 버스가 내려가다가는 굴러 떨러질 수도 있다나. 어쩔 수 없이 진료를 바쁘게 마무리 한다.

진료 둘째 날에는 더 높은 고산지대 차밭에 가느라 더 시간이 모자랐지만 첫날의 경험을 살려 티타임에도 적당히 빠지고 진료 속도도 조절해가며 무사히 진료를 마쳤다. 역시 경력이 무섭다.

▲ 진료버스

▲ 너무 자주(!) 돌아온 티타임

사실 스리랑카는 사회주의 국가라 교육, 의료 모두 무상이다. 전 세계에서 완전한 무상의료를 실현하고 있는 나라는 쿠바와 스리랑카뿐이라고 자랑한다. 비록 마취앰플도 없이 큰 갈색병에서 리도카인을 주사기로 뽑아 쓰고 충치치료 재료는 대부분이 ZOE, GI 뿐이지만 그 누구도 민간보험이나 치과보험에 들 필요는 없다. 내가 본 50 여명의 환자 중에도 구강암 의심환자가 두 명이나 있을 정도로 구강암이 많지만 전국 각지에 구축된 100 여개 공공병원에서 누구나 무상으로 수술 받을 수 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 없는 입원실에 모기장 하나 달랑 치고 누워있어도 돈 때문에 치료 못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 나라 사회구조는 분명 우리에게 시사점이 크다. 심지어 이 곳 고산지대 차밭은 공공병원에 대한 진료 접근성이 떨어져서 이동식 치과진료 차량이 한두 달에 한 번씩 농장을 방문하는데 그것도 당연히 무료다.

정말이지 모두들 가난하게 평등하다. 가진 것이 너무나 적지만 그래도 가능한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려 노력하는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그래서인지 시도 때도 없이 차를 마시실 정도로 모두들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행복의 파랑새가 사방에 넘친다.

스리랑카를 가게 된 건 그냥 우연이었다.
10년 전쯤 건치 여선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됐던 중국거주위안부할머니 후원모임이 할머니들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전폭 지원결정으로 훈훈하게 끝이 나 버린 이후에도 모임의 여선생들이 가끔 모였는데 후원회장이셨던 김진교수의 홍제동 작은 집이 주 장소였다. 비록 일 년에 한 두 번 보는 사이라도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왠지 그 사람을 깊숙이 아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라 김진 교수님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교수님을 나의 가까운 지인 목록에 일방적으로 올린 데는 예순이 넘은 연세에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비혼 여성 치대교수의 희소성도 한몫했지 싶다. 어쨌든 여성들에게 동성 멘토는 늘 부족하니 말이다.

5월 초쯤 모임 카톡방에 스리랑카 힐링캠프 참가자 모집공고를 교수님이 올리셨을 때, 비록 가까운 지인사이라 해도, 설마 내가 여름휴가를 교수님과 스리랑카에서 보내게 될 줄은 몰랐었다. 초등학생 아들의 방학 기간에 일주일이나 집을 비운다는 건 명색이 엄마로서 쉬운 결정이 아니었고 일 년에 한번뿐인 휴가라 쉬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힐링캠프 기간에 딱 맞춰 아이는 방학캠프를 가게 됐고 남편도 여름휴가를 출장으로 쓰게 되면서 나는 졸지에 휴가기간에 가족도 계획도 없는 처량한 신세가 돼버렸다. 오래된 카톡을 뒤져 힐링캠프 공고를 찾아내고 제 발로 연세 치대 병리학교실 문을 두드린 건 이런 우연의 연속 때문이었다.

▲ 힐링캠프에 참가한 9명의 치과의사·치위생사 그리고 현지 치과의사

서쪽으로 한참, 그리고 남쪽으로 더 가야 하니 멀고 덥겠고, 그리고 이따금 엽기적인 여성잔혹사가 뉴스로 들려오는 인도 즈음에 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스리랑카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어느 것 하나 호감은 아닌데다 첫 예비모임에 가보니 치과의사 참가자가 (교수님 빼고) 나 혼자였다. 경기도 치위생사회의 참가자가 6명이나 있었지만 임상 치과의사가 한명이라면 진료계획을 포기해야 하는 건가 모두 고민할 때, 그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오호라,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나는 봉사하고자 했으나 어쩔 수 없이 못한 걸로 마무리 하자.’는 안락의 유혹이 고개를 들었지만 “지금부터 치과의사 모집도 더 해보고 후원도 받아보고 이리저리 노력해 봐서 그래도 안 되면 그때 포기하죠.”라는 말이 입 밖으로 불쑥 나와 버렸다. 오기였을까 호기였을까. 이후로도 오랫동안 내내 나는 내가 참 궁금했다.

▲ 스리랑카 치과대학을 부터 감사장을 받고 있다

출발조차 막막하던 첫 모임 이후, 건치신문의 윤은미 기자가 “스마일스리랑카 2014 힐링캠프”를 기사화해주었고, 그걸 본 지인이 로고디자인을 재능기부 해주었고, 그 디자인으로 건치신문에서 후원을 호소하는 배너광고를 실어주었고, 광고를 보고 치과의사 추가 참가자가 생겼고, 후원업체도 생겼고, 또 용기도 생겼다.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고마운 마음들이 가득 모여서 멀고 더운 생소한 나라 스리랑카에 결국 가게 되었다.
 
우연 속에 이루어진 일들이라 하기엔 돌아보니 새삼 신비롭다. 사이사이마다 자잘한 시련과 걸림돌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너무 쉬우면 또 재미가 없지 않은가. 충분히 재미있을 만큼만 힘들었고 그걸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인연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김진교수를 비롯해 경기도 치위생사협회 이선미회장과 김선일, 전미경 이사, 동남보건대 안세연 교수, 이대 임치원의 구한나 선생, 연대 구강병리학 교실 김도경 선생 모두 정글의 병만족처럼 현지의 수많은 변수를 척척 해결해 내며 수평적 여성연대의 최고봉을 보여주었다. 우리 모두에게 늘 풍성한 여유와 영감을 심어준 송화수 선생에게는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2014년 스리랑카에서 나는 가난한 행복을 보았다. 최근의 내 삶에서 어쩌면 가장 고민되던 지점이 저절로 해결되는 기분이었다. 베텔잎과 아레카넛을 씹으며 혹여 동물들이 농작물을 훼손할까 밤새 졸음을 참으며 지키는 노동자에게 “빠꾸 사뿔단 위나.” (담배 씹지 마세요라는 뜻의 타밀어)를 외친들 그의 삶속에서 구강암을 막아 주리라 감히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2014 스마일 스리랑카 힐링캠프에 참가한 우리 9명의 여성들이 그곳 차밭에서 노동자와 어린이들을 만난 건 분명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 여길 뿐이다. 우연은 인연에서 비롯되고 인연은 우연 속에 쌓이는 걸 믿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땅 스리랑카인데 그 정도는 우겨도 되지 않을까.

 

 

신순희 원장(종로 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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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2014-09-11 11:21:21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수고를 좋은 기억으로 새겨서 멋진 글로 우리에게 나눠주셔서 감사하고요...

김의동 2014-09-05 09:05:51
ㅋㅋ 솔직한 글 재미있게 잘 읽었네....수고 많으셨구만....모두들 고생하셨어요.....멋지십니다.

전양호 2014-09-04 16:45:06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네요...고생 많으셨습니다.특히 여전히 왕성하게 새롭고 의미있는 길을 가고 계신 김진 교수님께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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