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제2 부활 이루겠단 열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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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제2 부활 이루겠단 열정으로…”
  • 강민홍 기자
  • 승인 2014.10.21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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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특별기획] 역대 편집국장 릴레이 인터뷰…소종섭 7대 편집국장

 

건치신문은 ‘치과의사들이 만드는 젊은 신문’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만큼, 실제 신문 제작 과정에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회원들의 역할이 컸다.

많은 건치 회원들이 편집위원, 객원기자로 참여하며 건치신문의 논조와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실제 컨텐츠를 채웠고, 그 중심에는 편집국장이 있었다.

건치신문 역대 편집국장은 정창권, 김옥희, 임종철, 이상윤, 신이철, 장현주, 소종섭, 문세기를 거쳐, 현재는 전양호 원장이 맡고 있다.

1994년 설립된 건치신문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주년을 기념해 역대 편집국장 릴레이 인터뷰를 게재한다. 소종섭 편집국장편에 이어 장현주 편집국장의 인터뷰가 나갈 예정이다.

 
가장 먼저 인터뷰가 나가게 됐는데, 나름 의미가 있는 것같아요. 인터넷신문을 창간했던 2004년 10월에 취임하셨다.…. 건치신문이 매우 어려운 시기였으니 남다른 각오가 있었을 것같은데요.

특별한 각오가 있었다기 보다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같아요.

나는 건치신문을 통해 건치에 입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건치신문을 만들어 가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는데, 편집국장이란 중책은 맡지 않으려 버티고 버티다 결국 맡아야 할 때가 된 거죠.

원래는 그 전에 편집국장을 맡아야 했었는데, 전공 공부를 핑계로 도망가 있다가 과정을 마치고 다시 복귀하게 됐고 결국 편집국장이라는 책임을 맡게 됐어요. 도망다닐 때 선배들과 동료들의 눈총도 많이 받고 술자리에서 욕도 많이 먹었어요.

하지만 의무감만 있었다면 할 수 없었을 거에요. 건치신문에 대한 나의 끊을 수 없는 인연과 애정. 그리고 침체돼 있던 건치신문의 제2의 부활을 이뤄야 겠다는 열정이 그래도 이유라면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건치신문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공보의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했죠. 종이신문 만들 때는 포천 창수면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신문을 만들기 위해 건치 사무실을 드나들었어요.

그때는 정말 치과의사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이 기사 작성과 편집, 교정은 물론이고, 표지 디자인과 제목과 발문, 글자의 폰트까지 일일이 다 편집국 선생님들이 직접 고민하며 신문을 만들었어요. 저도 부족한 글솜씨로 커버스토리나 기사를 쓰느라 나머지 시간들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당시의 건치신문 상황은 어땠나요?

말 그대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어요. 32P 타블로이드판 종이신문을 격주로 만들다가 재정 악화로 2003년부터 월간으로 바꾸었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인터넷신문 창간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죠.

어찌 됐든 인터넷 건치신문 안착에 핵심 역할을 하셨다고 볼 수 있지 않나요?

당시 내가 편집국장이었다고는 하지만 온라인 신문 편집 능력이나 감이 떨어지는 터라 문세기 선생이 고생을 많이 했었어요. 거의 홀로 고군분투했다고 할까. 인터넷 신문이 대박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연착륙을 하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죠.

인터넷 건치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2006년부터는 종이신문을 폐간하고 100% 인터넷 신문 체계로 넘어갔는데, 그러면서 건치신문의 체계가 치과의사 중심에서 기자 중심으로 넘어간 시기였던 것같아요.

물론 이인문 기자, 강민홍 기자 그 다음에 이현정, 박은아 기자 등 기자단이 급격하게 능력을 발휘하며 헌신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을 테고….

재정 상황은 어땠나요?

2000년에 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자금을 확보했는데, 야금야금 까먹었고 거의 바닥 상태였떤 것으로 기억해요. 인터넷 건치는 초기라 업체광고도 거의 없었고, 그나마 60여 명의 후원회원들이 내주시는 후원금과 건치 지원금으로 버텨나갔던 시기였는데, 시간이 가면서 광고 상황이 조금씩 호전돼 나갔던 것같아요.

당시 건치와 치과계 내에서 건치신문의 위상은 어느 정도였나요?

방금전 말했듯 독립된 주식회사였지만 재정 자립을 이루지 못해 지원을 받는 처지니, 건치 내에서 편집국장의 파워는 거의 없었죠.

치과계에서도 신문으로서의 독자성 확보에 이어 온라인 구축으로 치과계 언론을 선점하겠다는 의욕은 컸지만, 현실은 미약했던 시기라고 하는게 맞을 것같아요.

편집국장을 역임하면서 기억에 남는 기획이나 기사가 있다면요?

저는 오히려 94년 95년 이때 한달에 한번씩 커버스토리 쓰고, 꼭지가 많아서 기사 섭외하고 했던 것들은 기사 내용까지 다 생각나는데, 이상하게 막상 편집장일 때 기사는 별로 생각이 나지 않네요

PD수첩에서 치과 핸드피스 소독 문제를 터트렸고, 유시민 장관이 의료법 전면개정을 추진해서 총파업을 했던 사건, 그와 연관돼 복지부 내 구강보건전담부서가 사라진 사건, 치협의 정치권 로비가 문제돼 치정회가 없어지고 안성모 회장 등이 강도높게 검찰 조사를 받은 사건 등이 내가 편집국장일 때 일어났던 사건들이었던 것같아요.

마지막으로 현재 건치신문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요?

너무 잘하고 있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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