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제보자와 건치신문,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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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제보자와 건치신문, Fighting!
  • 김철신
  • 승인 2014.10.23 13: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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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김철신 논설 위원

 

최근 개봉한 영화 ‘제보자’는 불과 몇 년 전 일어났던 서울대 황모 교수의 어처구니없는 사기극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줄기세포로 불치병을 치료하는 세계 최초, 최첨단 바이오 의료산업”이라는 어마어마한 설명을 듣고 온 국민이 대한민국만세라며 환호하고 열광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몇몇 의혹제기에 대응하며 그 과학자가 말했던 “과학에는 국경이 없어도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말까지 더해지면서 거의 온 사회가 그에게 단단한 지지를 보냈었고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 같은 ‘국민 까(임)방(지)권’이 형성된 적이 있었다.

영화는 그때의 이야기들을 꽤 자세히 풀어냈다. 진실을 파헤치는 피디로 분한 박해일의 훌륭한 연기 덕에 한껏 감정이입을 하며 영화를 즐겁게 보았다.

영화를 본 후 한참이 지났지만 제목 자체인 ‘제보자’에 관한 상념들이 마음에 남는다.

모두가 믿고 따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 제보자.

내가 속한 공동체가 모두 한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명백한 진실이라 해도 대단히 어렵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어느 광고에서처럼 쿨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별로 없고 오히려 더러운 배신자, 개울을 흐리는 미꾸라지 한 마리로 치부되기 쉽다.

일례로 삼성의 내부 비리를 제보했던 변호사 김용철은 개인 신상이 폭로되고 온갖 공격에 거의 인격살인까지 당했었다. 윤석양 이병, 이문옥 감사관등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는 내부 고발자들이 겪었던 고초는 우리사회에서 다수의 부당한 담합에 반대한 이들이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는지 보여준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들은 옳지 않다는 걸 알아도 다수의 의견에 그냥 동의한다고 한다. 솔로몬 아쉬라는 사람이 ‘동조 실험’이라는 걸 했는데, 실험실에 있는 7명의 사람이 차례차례 오답을 말한 상태에서 정답을 알고 있는 실험 대상자가 과연 이 ‘명백한 오답’에 동조할 것인가 하는 실험이다.

실험 결과는, 아무런 제제와 위협 없이도 75%의 사람들이 앞서 7명이 말한 ‘명백한 오답’에 동조했다고 한다. 집단의 부당한 담합에 대한 대다수 사람의 동조가 입증된 실험이다. 불편한 진실보다 편안한 침묵을 택하는 것이 개인으로선 더 자연스러운 일인 게다.

이처럼 다수의 부당한 담합에 대하여 흔히 말하듯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온갖 사회적 압력이 있는 한은 더욱 어렵다. 입바른 소리하는 개인이 감수해야 할 수많은 부담감, 때로 그것은 인생의 위협일 수도 있고 편안한 관람객석에서 장터의 조리돌림에 내몰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이 편안한 침묵 대신 장터의 조리돌림을 감수하고 나섰을 때 사회는 진실을 깨우치고 발전할 기회를 얻는다.

온 나라의 날 선 눈초리에 맞서 진실을 폭로한 용기 있는 그 제보자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원이 거짓 연구에 낭비됐겠는가? 아니 그런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입바른 소리 잘하는 난방열사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라도 계시면 우리 집 관리비가 한 푼이라도 더 싸질 수 있다.

그렇지만 개인에게 혼자 이 모든 고초를 이겨내라고, 위협에 맞서라고, 따가운 눈총도 감수하라고 강요하는 것인 대단히 이기적인 짓이다. 그야말로 공짜로 행운을 바라는 못된 심보이다. 무임승차의 이득을 누리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그들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할 의무가 있다. 든든히 곁을 지켜야 한다. 대단한 보상을 할 순 없지만 “김부선 파이팅!”이라도 열렬히 외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무 살 건치신문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건치신문은 20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건강사회를 위한 신념을 가지고 치과계의 믿음직한 언론으로 역할 해왔다. 항상 누구보다 먼저 잘못된 관행을 지적했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목소리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당한 압력과 압박에 맞서 싸우며 상장처럼 수많은 고소고발을 당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내부 제보자를 흔들림 없이 지지했고, 건치신문 스스로도 기꺼이 치과계의 내부 제보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언론으로서 당연할 수도 있지만 편안한 동조 대신 언제나 장터의 조리돌림을 감수하고 나서준 덕분에 치과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 발전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었다. 그 무모함에 존경을 표한다.

20살 건치신문, 이제 성년이 되었으니 보다 더 따뜻한 눈길로 치과계의, 아니 우리사회의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환갑 때까지 힘내서 맘껏 함께 떠들기를 바란다.

앞서 이야기한 아쉬의 실험에서 다수의 담합에 의심을 제기하는 사람이 7명 중에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실험 대상자의 95%는 진실을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진실 앞에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보상이 필요한 게 아니다. 아주 작은 사회적 지지라도 존재한다면 누구나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건치신문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수많은 제보자의 곁을 지키고 지지한다면 우리사회에는 진실 앞에 용기를 내는 더 많은 난방열사가 나올 것이고 더 따뜻해질 것이다.

그런 건치신문 곁은 건치인과 독자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건치신문 Fighting!

 

 

김철신 (건치신문 논설위원, 인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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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 2014-10-23 17:01:41
건치신문 20주년 기념사로 채택합니다~~~ ㅎㅎ 어깨가 더 무거워지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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