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의학의 확산과 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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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의학의 확산과 의료민영화
  • 정형준
  • 승인 2014.10.3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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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으로 현재 약 5000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50%에 육박한다지만, 인구가 밀집된 산업화된 도시가 아닌 곳에서 발생한 사망자수로는 사실 놀라운 수준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에 국제사회는 여러가지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다. 무엇보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료보다는 그간의 예방과 대비가 부족한 것을 만회하기가 사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1960년대 말 발견된 바이러스에 대해 예방책이 없는 이유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수조원을 들여야 개발할 백신개발을 등한시 했다는 점으로 밝혀지면서 이윤중심의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서아프리카 지역의 수준 이하의 공공보건환경이 확산에 원인임이 밝혀지면서 저개발국가의 보건의료체계가 단순히 선진국의 치료약제 공급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근본적 의문도 제기된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보더라도 유명한 허준이나, 드라마에서는 그를 핍박하는 인물로 자주 나오지만 사실과 달리 유능한 의사였던 양예수의 경우, 소설적 상상력과는 달리 실제는 전염병을 잘 통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의사들의 역할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고 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양예수의 경우는 수인성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하천의 구조를 파악해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양예수는 내의원출신으로 지방 각도의 육군을 통솔하는 병마절도사에 임명되기도 했다. 병마절도사는 국방 외에 도적방비, 내란 진압책임까지도 가졌던 종2품의 군부 고위직인데, 사실상 전염병관리는 강력한 사회체계 변화를 추진했어야 한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허준도 이러한 이유로 양주목사를 지낸바 있다.

서구의학의 역사를 보면 19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병의 원인을 환경과 사회관계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 중시됐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서 장티푸스, 결핵, 구루병의 병리와 역학을 상세하게 분석하면서, 의학적 개입만으로는 이런 질병들이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비르효(R. Virchow)는 실레지아 지방에서 발생한 발진티푸스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토지 개혁과 소득재분배, 주거 개선, 그리고 다른 사회적 프로그램을 요구했다.

1854년, 영국 런던에서 콜레라의 대유행이 발생했는데, 그 당시로서는 원인을 몰라 수많은 사람이 탈수로 사망하는 무서운 전염병에 대해 의학사의 전설적인 인물 존 스노우(John Snow)가 등장한다. 그는 '최초의 역학자(epidemiologist)'로 의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사람이다.

그는 콜레라의 병인보다는 발생한 환자의 거주지를 지도에 표시하여 공동우물이 원인임을 밝혀냈고, 우물의 펌프손잡이를 없애서 콜레라의 창궐을 막아냈다. 콜레라의 병인론이 밝혀지기 전에 공중보건과 역학적 접근으로 전염병을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의료가 ‘개인의 질병 치료’로 협소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의료를 사회구조와 연결시키면 결국 지배자에 대한 공격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질병의 원인을 세균이나 개인의 특성으로 돌리고 싶어 했다. 둘째는 의료를 더 쉽게 상품화하려는 시도 때문이었다.

질병의 원인이 개별 세균이나 개인의 생물학적 상태라면, 그 치료 방법도 상품으로 판매되기 적합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의료서비스가 분화되고 각각에 가격이 쉽게 매겨졌다. 따라서 예방과 공중보건보다 ‘치료의학’이 의학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
그러나 이런 개별 ‘치료의학’의 발전보다는 자본주의 생산 발달과 대중투쟁이 건강에 미친 영향이 훨씬 크다. 수명 증가와 영아사망율 감소는 사실 영양상태, 공중위생, 식품위생이 향상된 덕분이었다. 사회보험과 공공병원은 대중투쟁의 성과물이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영리병원 도입 시도를 시작으로 이제는 영리자회사, 부대사업확대, 임상시험간소화 등 극단적 의료민영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여러가지 맥락의 해석이 가능하지만, 한국사회의 ‘치료의학’에 대한 지나친 쏠림은 결국 의료상품화를 가속화하고 그 결정판을 보여준다.

단적으로, 미국과 달리 영국 NHS의 주치의제가 갖는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적 측면이 금융자본의 천국 영국에서도 의료의 상업화를 막아내고 있다. 쿠바는 서방국가와는 비교도 안되는 의료예산으로 미국보다 나은 의료지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전세계적 반응은 사실상 공포와 무방비이다. 각국은 자국의 방역체계를 걱정하고, 일부는 에볼라를 기회로 서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 한다. 일부는 어처구니 없게도 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상태는 어떠한가? 의료민영화에 혈안이 되어 ‘치료의학’의 상품화에만 매진하느라,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OECD 꼴찌, 방역체계도 엉망, 사회보험인 건강보험도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국가적인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적 계획은 아예 없다. 치과계에서도 수도불소화와 같은 효과적인 예방사업 등이 있지만, ‘치료의학’의 만연으로 공론화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이제 의료민영화 반대투쟁과 함께 ‘치료의학’으로의 쏠림에 대한 경고도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을 무시한다면 서아프리카의 참담한 사태가 단지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정형준(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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