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정책 논설•시론
진보와 이단(異端)[논설] 송필경 논설위원
송필경 | 승인 2014.11.12 11:22

 

이단이란 흔히 옳지 않은, 자기가 믿지 않는, 또는 엉뚱하게 주장하는 이론이나 행동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단은 믿음으로 내려오는 권위에 대한 비판 행위를 말한다.

중세 유럽에서 성경 권위를 의심하면 장작불 위에 묶여서 통닭구이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 노장 사상을 읊조리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사돈팔촌까지 모가지를 댕강했다.

21세기 이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친일파가 지배하는 권위를 비판하면 좌빨로 몰려 녹슬고 무딘 ‘국가보안법’ 칼날에 몸뚱이를 맡겨야 한다.

인간 사회는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했다. 민중은 지배 권위를 의심 없이 기계적으로 믿어야 했다. 지배자는 권위에 복종하는 삶을 요구했고, 권위를 비판하면 목숨까지 앗아갔다.

역사의 반항아는 기존 관습과 제도를 비판하고 새 체제를 요구했다. 노예 질서에 도전한 고대의 스파르타쿠스나, 봉건 체제에 반란한 현대의 전봉준이 그러했다. 이들은 결국 제국의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외세 제국주의 개입으로 참수를 당했지만, 도전하지 못할 권위란 없다는 교훈을 역사에 새겼다.

새로운 질서와 체제를 요구하는 행위를 20세기 용어로 진보라 했다. 생물이 진화하듯 사회 체제도 진화한다. 어떤 사상과 제도라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비판을 비켜 갈 수 없다. 진화의 눈에는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가 된다. 그래서 사회는 비판(이성적인 이단)을 존중해야 한다. 권위로써 비판의 자유를 억압하면 참을 수 없는 모순은 혁명의 욕구로 폭발한다.

보수와 진보가 격렬하게 자리바꿈을 한 인류사에서 최대의 혁명 시대가 우리가 방금 지나온 20세기였다. 혁명이란 이단의 최종적 요구다. 혁명은 권력이 강요한 질서(명; 命)를 민중이 갈아엎는다(혁; 革)는 행위다.

   
▲ 시대를 비판하고, 시대에 반항한 이단자들이었던 4.19세대. 지금은 확고한 수구세대다

인간사의 아이러니는 성공한 혁명 주체가 비판을 막는 새로운 보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이 한 예다. 스탈린의 소비에트 체제는 역사적 진전이 나름 있었지만 권위에 대해 맹목적 복종을 요구한 점에서 봉건 러시아의 짜르 체제와 다를 바 없었다. 레닌이 시작한 의미 있고 거대했던 혁명은 한 세기도 못 버티고 붕괴했다.

20세기에 몰아친 인류사 격류의 한 가운데에 한반도가 있었다. 한반도의 진정한 비극은 이데올로기 충돌이 빚은 잔혹한 살상을 치르고도 봉건체제를 청산하거나, 제국주의 식민지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다. 오래 굳어진 냉전 체제는 세계사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에도 한반도의 이 쪽 저 쪽 모두는 풍화되어 낡아 버린 사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쪽에서는 친일지배세력에게 도전을 하면 ‘좌빨’로 몰아치고, 저쪽에서는 봉건적 최고 존엄에 의문을 품으면 ‘미제의 앞잡이’로 몰린다. 자신은 신성하고 상대방은 악령으로 몰아 지배 권위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진보 진영을 보자. 해방 후부터 줄기찬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민노당은 2002년에 총선을 통해 합법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2008년에 노선 차이로 비판이 아닌 비난을 주고받으며 분열했다. 2012년 총선에서 진보당은 자유주의 정당 국민참여당과 통합진보당을 만들어 무려 13석의 의석을 확보했으나 선거 직후 비례 의석 배분을 놓고 곧바로 분열했다.

나의 경험이다. 통합진보당 창당 당시 NL 계열의 진보당이 한미 FTA 신봉자인 유시민과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는가 라고 강하게 불만을 터트리자, 페이스북의 진보당 친구들에게 모조리 친구 거절을 당했다. 비판적 의문에 발끈하며 용납하지 않는 진보 진영 역시 ‘내재적 보수성’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통합진보당은 자신들의 위기 상황을 지배 권력의 탄압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탄압의 빌미는 자신들이 만들었다. 분열 직후 유시민은 ‘진보당 사람들은 애국가도 안 불러요.’라고 언론에 고자질 했다. 이에 수구 세력에게 당 해체를 강요당하는 수모를 받고 있다. 여론조차 싸늘해지며 지지율이 1%대로 추락했고 이제는 존재감마저 희미하다.

세월호 참극에서 보듯, 윤리 없는 수구 세력이 함부로 저지르는 날개 짓은 진보 세력의 위축으로 저항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새 무리’들의 날개 짓을 멈추기 위해 진보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진보 세력은 2012년 총선 전후에 있었던 시행착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파벌로 뭉친 ‘내재적 보수성’에 대한 비판에 귀 기울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성적 비판을 하는 이단과 함께 가야만 역사는 진보한다.

송필경  spk55@hanmail.net

<저작권자 © 건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필경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상호명: (주)건치신문사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54길 21, 제1호 3층  |  대표전화 : 02)588-6946  |  팩스 : 02)588-6943
대표자: 전민용  |  청소년관리책임자: 윤은미  |  정보관리책임자 : 김철신  |  사업자등록번호 : 214-86-74634  |  발행인 : 전민용  |  편집인 : 김철신
Copyright © 2019 건치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