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치가 있어 참 좋은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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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치가 있어 참 좋은 이유들
  • 이상구
  • 승인 2014.12.23 13: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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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건치 회원들이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
이희호 여사님과 함께 우리나라의 여성 운동을 이끄셨던 박영숙 선생님이 국회의원으로 호주제 폐지나 공직 선거에서 여성 할당제도를 만드신 것 등은 잘 알려져 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친정 엄마와 같은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한국여성재단’을 만드셨다는 것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여성 활동가들뿐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 생활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야만 하는 여성들에게 건강과 관련된 문제는 단순히 통증이나 불편함의 문제를 넘어 생존과 직결되는 치명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송파의 세 모녀 자살사건은 식당일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던 엄마가 팔을 다치게 되면서 일을 못하게 되자 생존이 막막해진 일가족이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매년 1억 원의 많지 않은 기금으로 시작한 건강지원 소위원회의 활동은 여성 활동가들에 대한 지원을 넘어 어려운 처지의 많은 여성 가장들에게도 매우 소중한 기여를 하고 있는 여성재단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일 것이다.

이를 위해 여성재단에서는 의료지원분과의 소위원회를 구성해 각 지역의 여성단체들이나 사회복지기관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대상자 중에서 치료의 절박성과 시급성, 대상자의 가정형편이나 경제 상황 등에 근거하여 지원 여부와 지원 금액 등을 결정하고 있다. 나는 박영숙 선생님께서 임종 하실 때 까지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고문으로 계셨던 인연으로 5년째 여성재단의 의료비 지원분과 소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의 가슴이 저리도록 열악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항에서 계모에 의해 학대당하다가 죽은 아이의 방사선 촬영 사진만 보아도 구타의 모습과 상해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고, 그 아이가 겪었을 고통이 떠오르듯이, 같이 활동하셨던 치과선생님들은 ‘만성복합치주염, 잔존근치, 치아치조농양, 치수 침범이 있는 치관 파열, 사고와 발치 또는 국한성 치주질환에 의한 치아 상실’ 등 병명이 적인 의뢰서를 보면 대강 환자가 그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가 눈앞에 선하게 보일 것 같다.

그리고 왜 그렇게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최저 생계비에 한참 모자라는 월 소득과 의료보호 대상자, 전 남편의 부채 1,500만원, 남편의 상습적 구타로 이혼하고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음 등 다들 너무나 힘든 상황들이라서 경제적 어려움만으로는 선정의 우선순위를 가리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해마다 지원을 받고자 하는 신청은 많은 반면, 예산의 한계 등으로 실제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은 한정이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치과 진료를 받고자 하는 분들은 1월에 신청 하신 분들 만으로도 전체 지원 금액이 모자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였다.

그래서 소위원회에서는 내부 규정을 정해 치료가 시급한 경우, 시술을 해서 확실하게 호전될 수 있는 경우 등 마치 전장에서 전상자의 치료 우선순위를 분류하듯이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는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다.

일반 의료 지원이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인 것은 의료보험에서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10~20% 정도의 본인부담금에 대한 지원을 통해 신청 받은 분들의 어려움의 상당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과 분야는 치과의원을 통해 지출되는 치과 의료비 총액이 7조원이 넘는 반면 국민건강보험의 비중이 1.6조원이고, 평균 본인 부담금의 비중도 84.6%(2012년, 국가 통계 포털)에 불과한 낮은 건강보험 보장율로 인해 아직도 여전히 국민들의 부담이 매우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치과 분야의 의료비 심사를 담당하셨던 선생님께서는 심사 과정 자체가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 

다행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건치 덕분에 치과 분야의 의료비 지원을 받는 대상자들이 1.5배나 증가하게 되었다. 여성재단과 건치가 MOU를 채결하여 재단이 전체 치료비의 50%를 지원하고, 직접 치료를 담당하시는 건치 회원들께서 나머지 50%를 담당하는 것으로 협약을 하고, 대신 이 금액을 재능기부에 따른 현물 기부로 처리해드리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건강보험법의 규정에는 진료비의 본인 부담금을 임의로 싸게 받는 것은 환자 유인 알선 행위로 분류되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법 위반이 되는 범법 행위이다.

그러나 기재부의 공익성 기부 대상 단체로 등록되어 있는 여성재단에서 영수증에 근거하여 현물 기부로 후원 처리를 하는 경우 이 모든 과정이 합법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2013년에는 같은 금액으로 27명의 신청자가 혜택을 보았지만, 올해는 건치와의 MOU 덕분에 41명이나 혜택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 사업을 진행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든 것은 대부분의 지역사회에서는 “건치 회원”이 하는 치과라고 하면, 여성단체 활동가들이나 사회복지단체들이 대부분 상당히 신뢰를 해 주신다는 것이다. 아마 개별 회원들의 질 관리(?)가 이렇게 잘 되어 대중적인 존경과 신뢰를 받는 전문가 집단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번 크리스마스에 건치 선생님들의 치과 치료를 받고 마음껏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분들 중에는 아마 건치라고 하는 이름을 잘 모르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냥 치과의사의 옷을 입은 젊은 산타클로스 중의 한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 분들이 추운 방에서나마 따듯한 음식을 건강하게 꼭꼭 씹어 드실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면 ‘건치’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건치가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

물론 건치의 봉사 활동이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까지 전국 곳곳에서 장애인 치과를 운영하고 있거나, 자원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건치의 회원들이었다.

건치는 봉사활동 뿐 아니라, 주위의 분들에게 구강보건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상수도 불소화 정도만 알던 내가 불소도포사업과 치면열구전색 사업을 알게 된 것도 부산 건치에서 활동하는 동료들 때문이었다.

대통령 비서실과 보건복지부 등 공직에 있을 때 건강보험의 급여가 확대되어야 할 다른 많은 분야에 앞서 치아 스케일링을 포함한 치과 진료의 영역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시키는 노력을 하게 된 것도 건치에서 그 중요성을 배운 덕분이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건강보험문제를 주된 이슈로 제기하여 실질적인 치과건강보험급여확대를 이뤄낸 것도 많은 건치회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단일 분야에서 1조원이 넘는 급여확대를 한 것을 두고 다른 직능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선거라는 시기를 잘 활용한 것은 그동안 꾸준히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들과 연계하면서 국민들과 소통해 왔던 건치의 축적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전 치협 회장님께서 검찰에 불려가고 협회가 먼지가 날 때 까지 털리는 등 고초를 겪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의 다수가 영리형 의료법인의 문제를 제대로 알게 된 것도 건치가 해 온 노력의 덕분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 국민들은 건치에 참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에서 아동청소년 치과주치의 시범 사업을 3년째 해 보니 4학년 학생들이 6학  년이 될 때 까지 우식경험 영구치의 비율의 증가로 비교해 보면 충치예방효과가 89.6%나 된다는 자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도 정세환 회원 등 건치 회원들의 노력 때문이다. 나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복지국가 후보로 출마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공약으로 이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고, 내년부터 아동청소년 치과 주치의 사업을 인구 100만 명의 특정 시의 전역으로 확대시키는 것을 추진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지원 금액은 협의를 해 보아야 하겠지만 주치의 사업에 참여하는 치과 의원마다 매달 1,0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추가로 지급하여, 의원의 경영 상황도 개선하지만 일상적인 진료 행위 자체를 치료에서 예방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모델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한 구상을 하게 된 것은 국가의 공공 구강보건체계를 확충하는 것도 시급하지만, 이미 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신 개원의들이 국가와 지방자체단체의 공공의료 사업에 참여하도록 하여 민간 의료기관의 진료행위 자체가 공익적이 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공공의료 확충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1차 진료가 살아나지 못하면 국민의 건강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건치의 이념과 노력, 그리고 구체적인 사업 성과에서 배운 덕분이다.

물론 건치 회원들이 아니어도 치과선생님들은 지역사회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다. 예를 들어 이번에 한겨레신문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대한민국지역사회 복지대상에 대구시 달서구의 “우리 동네 행복 주치의 사업”이 최우수 자치단체로 선정되었는데, 여기에는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 주민들에게 1인이 1명을 주치의로 담당하여 보철 등 치과 치료를 무료로 해 주신 지역 치과의사회의 도움이 컷 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지역에서 요구되는 역할들을 성실히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선의에 의한 봉사 활동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노력들을 올바른 진료 환경을 만들고 국가의 구강보건시스템의 개혁으로 까지 가져가는 노력들은 건치가 아니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최근 치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 된 이후 젊은 치과의사들의 건치 가입이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치대 학생들이나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치과의사들에게는 여성재단과 같이 하는 방식의 자원봉사 활동이 건치의 역할에 대해 쉽게 이해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서는 지회별로 이러한 사업들을 확산하여 시행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의를 가지고 시작한 후배들에게 건치가 지금까지 해 온 자랑스러운 일들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대한민국의 구강보건체계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과 신념을 심어준다면 적어도 구강보건 분야에서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저물어가는 한해를 돌아보면서, 우리나라에 건치가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가지 답답한 일들이 많지만, 적어도 구강보건에 있어서는 건치가 우리나라의 희망이 될 것이다. 그래서 2015년에 건치 회원들의 더욱 의욕적인 활동들을 기대하게 된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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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 2014-12-23 16:39:31
치과계에 대해 많은 걸 알고 계시네요~~ 건치에 대해서는 조금 쑥스럽지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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