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진료소는 ‘비정상 조직’
상태바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는 ‘비정상 조직’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4.12.26 17:2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포]10년째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 봉사해온 대경건치 김명섭 회원…“의료제도의 빈틈 메꾸는 역할‧보편적 건강권 확립을 위해 갈 길이 멀다”

 

▲ 대구 외국인 노동자 치과 진료소 입구

기자가 되고 나서 좋은 것 중에 하나는, 활동반경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워낙에 서울을 사랑한 탓에 서울은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그 이상 벗어나지 못한 나에겐 특히 말이다. 취재를 위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닐 명분까지 주어졌으니 이보다 좋은 점은 없을 것이다.

이번엔 대구광역시에 가게 됐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구‧경북 지부(이하 대경건치) 김명섭 선생님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김명섭 선생님은 10년째 대구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치과진료 봉사를 해오신 분이다. 이 꾸준함을 인정받아 모교인 경북대학교에서 ‘자랑스런 동문 상’도 받으셨다고 한다.

핑계좋은 명분을 받아들고 ‘대구 외국인 노동자 치과 진료소’에 가기 위해 KTX에 몸을 실었다. 진료소는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올까, 기사는 또 어떻게 써야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대구지역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리면서, 나는 어린 엄마의 모습이 살짝 겹쳐졌다. 엄마는 가난한집 맏딸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오빠와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서 대구의 한 공장으로 보내졌다. 거기서 남은 청소년 시절과 20대의 초반을 보냈다.

엄마는 당시 일을 별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그저 ‘빨리 돈을 벌어 탈출하고 싶은’, ‘오빠가 빨리 대학을 졸업했으면’하는 생각 외엔 들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진료센터를 취재하기 위해 내려가는 길, 어린 엄마와 같은, 산업의 역군이라 불렸던 여공들의 자리를 이제는 외국에서 온 이들이 대신하고 있단 생각이 겹치면서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 카리타스 무지개 나눔터 입구. 이 안으로 들어가면 치과 진료실이 있다

카리타스 무지개 센터

동대구역에 내려 안지랑 사거리에 위치한 ‘대구 외국인 노동자 치과 진료소’로 향했다. 센터는 대구 천주교 대교구 카리타스 무지개 사업단 소유 건물 5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카리타스 무지개 사업단은 대구 대교구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여성들의 소통과 자립을 돕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래서 1~3층은 운영비 마련을 위해 세를 내주었고, 4층엔 카리타스 무지개 센터, 5층은 평일엔 카페로 일요일엔 치과 진료소로 활용된다.

▲ 진료소 알림판

진료소에 들어서니, 김명섭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날이 추워 그런진 몰라도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터뷰 많이 하라고 안 오는 것 같다”며 김명섭 선생님이 장난스레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요? 시작은 단순히 대경건치 선생님들 중에 저를 포함해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계셨거든요. 2004년 5월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치과 진료를 하자고 해서 대경건치 선생님 네 분과 단출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벌써 10년이 됐네요”

대구 구민교회에서 시작된 외국인 노동자 치과 진료소는 교회 한켠에 치과 체어 한 대를 두고, 교회로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료를 해왔다고 한다.

대경건치 회원 4명으로 단출하게 시작한 모임에 대구시치과의사협회(이하 대구치협)가 합류하면서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대구치협은 대구적십자병원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료를 하고 있었는데, 적십자 병원이 재정악화로 문을 닫으면서 대구의료원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이후 대경건치도 외국인 노동자 진료를 한다는 것을 알고 합의를 거쳐 구민교회에서 함께 진료를 하게 됐다.

2013년 1월, 지금의 카리타스 무지개 사업단 건물로 자리를 옮겨 치과 체어 3대, 소독실, 그리고 평일엔 카페로 운영되는 곳은 접수대 겸 대기실로 사용하고 있다.

카페 벽면에는 몽골,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에서 온 이국적인 장식품들과 옷가지가 눈에 띄었다.

▲ 벽면을 장식한 이국적인 장식품들

▲ (오른쪽에 3번째) 대경건치 김명섭 회원, 치과위생사 분들과 추진호 원장

현재 진료센터는 치과의사 14명, 치과위생사 7명, 치전원 학생 30명, 치위생과 학생 12명이 7조로 나눠 진료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치과재료 등은 대구시 한 기자재상에서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으며, 고가의 장비는 치과의사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이날 김명섭 선생님과 대구치협 추진호 선생님, 고수연·김은영·정은미 치과위생사 그리고 추 선생님의 자녀 2명이 진료를 위해 모였다.

“평소엔 외국인 환자들이 많이 오는데 오늘은 추워서 그런지 별로 오지 않네요(웃음). 우리 진료 센터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특히 많이 찾는 진료소에요. 멀리 마산, 창원, 부산에서까지 찾아오기도 해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일요일 외엔 쉴 수 있는 날이 없는데, 우리는 일요일에 진료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료는 전주에 다녀간 외국인 노동자들이 예약을 하고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따로 예약하지 않은 환자도 방문하면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평소엔 보통 센터가 오픈하는 10시부터 2시까지 쉴틈 없이 진료를 본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진료센터의 의미는 봉사가 아니다

진료소에서 꾸준히 10년간 봉사하면서 힘든 점은 없냐고 물었다.

▲ 대경건치 김명섭 회원
“치과치료는 한번에 끝나지 않기 때문에, 연속성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매주 담당 의사도 바뀌고, 매주 시간을 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체계적으로 진료에 대해 안내하기 어려워 중도에 치료가 포기 되는게 안타깝죠.”

“다른 어려운 점은, 진료소에서 함께 봉사하는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이유로 함께 하기 때문에, 소속감을 느끼는 부분도 서로 다르고 하나의 큰 명제적 연속성이 없다는 겁니다. 진료소에 10년간 100여 명이 넘는 치과위생사, 치전원생들이 거쳐 갔지만 이 외국인 노동자 진료센터가 가진 문제의식이 봉사라는 의미를 넘어 대구시의 소수자들을 향한 ‘사회적 모티브’로 공유되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또, 매우 아이러니 할 수도 있지만, 꾸준하게 외국인 노동자 분들이 많이 오는게 슬픕니다. 아직도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제도 범위내(일반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났음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진료소를 찾는 분이 줄지 않는게 안타깝습니다.”

사라져야할 외국인 노동자 진료센터?

조금은 생경한 대답이라 더 들어보는게 좋을 것 같았다. 김명섭 선생님은 이에 대해 처음 외국인 노동자 진료센터를 시작했을 때의 목표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처음 시작할 때 저희의 목표는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를 없애자’였어요.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외국인이든 치과진료를 포함한 모든 것들에 보편적 건강권이 적용돼, 10년 뒤엔 일반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본과 4학년때 친구 선‧후배를 모아 달구벌 빈민촌에서 지금과 같은 치과 진료소를 운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몇 년 사이에 전국민 보험화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해산 하게 됐습니다. 그와 같이 외국인 노동자도 제도권내로 흡수돼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가) 자연스런 해체 수순을 밟길 기대했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할뿐더러 더 어려워 진 것 같네요.”

어디까지나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는 의료제도가 커버해 주지 못하는 곳, 빈틈에 존재하는 집단이란 것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외국인 노동자의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불법체류, 임금체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학대와 착취 문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의 막가파식 의료민영화 정책 밀어붙이기까지. 외국인은 물론이고 국민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특히, 대구는 지역 선전물에서 ‘메디컬 시티’를 자처하며 의료관광과 메디텔, 의료기기사업을 신성장사업으로 홍보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의료민영화에 대한 김명섭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구는 농담같지만 ‘고담시티’에요. 전체적으로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곳이죠. 의료민영화에 대해서도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아직 실생활에 닿는 부분이 없어서 그런지 미온적인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거기에다가 대고 ‘공공의료 실현’이란 대명제에 대해 얘기하기는 참으로 어렵죠.”

“의료민영화에 대응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리, 의사라는 정확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즉, 의사의 윤리, 의료란 무엇인가를 자신의 위치에서 더 깊이 생각하고 깨달을 때, 정부가 경제적 측면에서 의료민영화를 밀어 붙여도 의료의 측면에서 의료민영화를 막아낼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는 ‘비정상적 조직’입니다. 이유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비정상적 조직’이죠. 의료에 있어 비정상의 정상화란 바로 공공의료의 확충, 보편적 건강권의 확립입니다.”

▲ 진료중인 김명섭 회원
▲ 진료후 차후 처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은 조금 일찍 진료소 문을 닫았다. 아쉽게도 진료소가 바쁘고 활기차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기자의 작은 기대는 무너졌다.

하지만 10년간 건치회원으로, 대구에서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를 운영해온 한 치과‘의사’로서의 김명섭 선생님의 진료소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들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김 선생님이 처음 꿈꿔왔던 목표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가 사라지고 보편적 건강권으로 공공의료가 확충될 그 날을 그려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스토리가 있는 글 2014-12-26 20:58:23
기존 건치신문 기사와 달리 기자가 솔직히 자신의 목소릴 담은 듯한 기사라서 신선하네요...기자의 생각도 어느 정도 담긴 이런 기사가 건치신문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