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 혹은.. 과학..] 로르샤하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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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혹은.. 과학..] 로르샤하 테스트
  • 김진만
  • 승인 2004.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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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이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이 나쁜 말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미신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실제 미신인 경우보다는, 잘못된 개념으로 알려졌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 칼럼의 첫 주제로 어쩌면 독자분들도 잘 아는 일명 ‘잉크 블랏 테스트’라고 하는 로르샤하 테스트를 다루고자 한다.
이 검사법은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얼룩 무늬를 보여주고 피험자에게 그 얼룩 무늬를 보고 상상되는 것을 물어본 다음, 그 답변을 통해서 피험자의 정신적인 문제를 알아내는 것을 일컫는다. 언 뜻 보면 그럴 듯하고, 실제로 인간에 대한 통찰이 뛰어난 사람들이나, 경험 많은 사람들이라면 그 속에 숨겨진 정신의 상태를 진단하는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로르샤하 테스트에 대한 평가를 뒤져보면, 이미 1940년대 말부터 이미 효과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로르샤하 테스트 추종자들은 그 당시부터 조금만 더 연구하면 피험자의 정신적 문제를 알아낼 수 있을 것처럼 주장해 왔다. 그러나 1959년, 65년, 72년과 78년에 이뤄진 평가에 이르기까지 아직 그 증거는 없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예측 능력에 대한 회의적 문헌들만 수두룩하게 쌓여가기 시작했다.

또한 이렇듯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의문스럽지만, “효과가 있다”며 제시된 실례를 평가하는 방법도 검증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때문에 최근 로르샤하 테스트는 개선이 있기는 했지만 과학을 받아들이는 심리학자들에게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르샤하 테스트는 아직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법원에서는 성 범죄자를 판별하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정신병을 진단하는데 사용되기도 하며, 가석방 후 범죄를 저지를 것인지 아닌지 결정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심지어는 이혼하는 부부의 아이 결정권에 관여하기도 한다. 이 경우, 검사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더군다나, 만약 어떤 사람이 로르샤하 테스트를 받지 않으려 한다면,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은 “그가 ‘부정’(denial)이라는 병리적인 상태에 있다”고 진단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진단이 내려진다면, 그 범죄자는 로르샤하 테스트를 거부한 것만으로 감옥행을 면할 수도 있게 된다. 물론 이렇게 간단히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결국 로르샤하 테스트는 우리가 과학일 수도 있겠다고 막연히 믿기에는 보기보다 매우 무서운 함정이 들어있으며, 미처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는 일종의 덫이 될 수도 있다. 합법적으로 면허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지기 때문에 검사법에 대해 의문을 품어도 믿어줄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로르샤하 테스트가 그다지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김진만(딴지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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