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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에: 몽골여행[특별기고] 건치 김형성 사업국장
김형성 | 승인 2015.01.21 11:28

 

1. 울란바토르 - 몽골의 수도

비가 내렸다. 

검은 지평선 한가운데 서서 하늘 가득 찬 별빛을 온몸으로 맞으려던 기대는 일단 미뤄졌다. 초저녁부터 소리 없는 대포처럼 멀리서 번쩍거리던 빛의 정체는 번갯불이었고 어둠과 함께 내리치는 빗줄기는 정신이 번쩍 들만큼 차가웠다. 사막과 초원의 나라, 1년 강수량이 한국의 1/6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곳에서 만난 소나기는 낯선 여행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함께 술을 마시던 동갑내기 몽골 사진가는 부산에서 마흔 살에 처음 바다를 보았다고 했다. 그가 본 바다는 어땠을까. 빗속을 뚫고 돌아가는 그의 승용차가 모터보트처럼 물살을 가르며 매끄럽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그처럼 40여 년 만에 처음 지평선을 마주하는 밤이다.

2. 언긴 히뜨 - 스러져가는 라마불교 유적지

하루 평균 400킬로미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일정이다. 모래와 먼지, 강렬한 태양. 한 나절 만에 몸이 푸석푸석 말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사막에서는 잘 씻지 않아도 괜찮다는 나의 사진스승 말씀대로 밤마다 게르 밖에 널어 두는 양말은 며칠을 신어도 고린내가 나지 않았다.

건조한 모래바람을 맞는 시간만큼 몸도 옷자락도 건초마냥 바스락거려, 부싯돌이라도 대면 금세 화르르 타올라 재가 될 듯 가벼워졌다.
 
저녁 숙소로 도착한 차강어워의 캠프는 꽤 넉넉한 수량을 가진 언긴강을 끼고 있었다. 아이들이 팬티바람에 물놀이를 하며 깔깔대는 소리가 한국 냇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자갈이 별로 없는 강물은 조금 탁해보였지만, 씻고 마시기에 충분히 맑았다. 비가 온 해에는 물 걱정은 없다고 한다.

물이 넉넉한 이곳에는 고비 최대의 라마불교 사원 ‘언긴 히뜨’가 있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1936년 불어 닥친 종교탄압으로 전국에서 3만 여명의 승려와 지식인, 정치인들이 희생되고 746개에 이르는 사원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한때 수천 명이 모여 살았던 이곳도 지금은 사원 터에 몇몇 소수 승려와 신자들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몽골인구 50% 이상이 불교신도이지만 스러져간 사원의 복구는 요원하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끈 몽골의 국부 수흐바타르, 그리고 그가 아꼈던 승려 출신의 공산주의자 처이발상은 사회주의식 경제발전과 더불어 종교탄압의 칼을 휘둘러 수많은 라마교인들을 살해하고, 정적을 숙청한 독재자로 기억된다.

그 이후 냉전 종식, 개방과 자본화… 우리에게도 익숙한 삽화들로 이어진 몽골의 근대사를 함축한 유적지는 변변한 박제의 이름조차 없이 풍화되어가고 있었다.

24시간을 온전히 마른 대지에 몸을 맡기고서야 하늘은 별이 빛나는 밤을 내게 허락했다.  누군가 저것이 미리 내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별무리가 일군 강의 줄기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나를 압도하였다. 도시야경에 익숙하게 자란 사람에게도 북두칠성이 길잡이 별자리란 것을 깨닫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다.

깃발처럼 빛나는 별자리. 북극성에 기대어 캄캄한 밤길을 걸었을 생존의 기억이 마치 등골 어디쯤 박혀있는 듯하다. 땅바닥에 누워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첫 일정의 노곤함으로 일찍 불꺼진 캠프 앞마당에서 별들과의 조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출처 : 어수하

3. 바얀작 (공룡유적지) 과 헐그리 엘스(모래사막)

작은 소동이 있었다. 붉은 절벽이 우거진 바얀작은 나무가 많다는 몽골어 뜻과는 달리 초원과 황무지로 이뤄진 곳이었다. 세계적인 공룡발굴지라는 설명이 없다면, 협곡이라기엔 규모가 아주 큰 것도 아니어서 별 다른 감동은 없다.

승합차 그늘에 앉아 몽골식 튀김만두와 오이 두 조각을 맨밥에 꾸역꾸역 삼키고 다음 행선지인 모래사막으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차가 출발하려는데, 일행이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사진욕심에 협곡 아래까지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혹시 낙상이라도 한 게 아닌가 걱정이었다. 게다가 오지라서 이곳은 이동전화도 되지 않는다. 여섯 일행은 사방으로 나누어 협곡 사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협곡 아래를 내려가서야 이곳이 사막이란 사실이 실감되었다. 누구보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열심히 찾아다니던 몽골인 기사의 긴장된 표정이 떠올랐다. 여기서 길을 잃고 고립된다는 것은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 우리가 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차량인원을 확인한 선발대가 다른 차로 옮긴 일행을 발견하고서 우리를 데리러 오는 것으로 소동은 마무리 되었다. 물론 그날 밤 술과 안주는 예고도 없이 차를 옮겨 탔던 일행이 사야했고.

보통 사막 하면 떠올리는 기하학적 형태의 사구가 발달하는 모래사막은  전체 사막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모래가 많은 중동사막의 경우에도 30%에 불과하다고 한다. 고비사막도 대부분 모래와 자갈이 뒤섞여 있으며 우리가 사진으로 만나는 모래사막을 보려면 따로 몇 시간을 달려가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규모가 작은 것은 아니다. 이백여 미터 높이의 사구를 오르는 데에만 두어 시간이 걸리며 그 너비는 수십 킬로미터, 길이는 수백 킬로미터에 이른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헐그리 엘스(khongoiyn els)는 몽골어로 ‘아무것도 없는 모래땅’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사진작업을 했던 스승님의 전시제목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였다. 아마 선생도 헐그리 엘스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밑에서 올려다 본 모습은 그저 거대한 건설현장에 쌓아놓은 모래언덕처럼 보인다. 카메라를 들고 일행들이 일제히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세 걸음에 두 걸음은 미끄러져 제자리이다.

높은 언덕 탓인가,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모래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눈, 귀, 코, 머리, 옷 속까지 온통 모래투성이가 되고 갑자기 후두둑 비가 쏟아진다. 급기야 카메라 몇 대가 고장을 일으켰다. 일단 후퇴다.

미끄러운 모래언덕을 내려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오르는 시간의 절반도 안 된다. 아예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미끄럼을 타면 오 분만에 초원지대까지 내려올 수 있다. 빗줄기를 피해 허리춤에 감추었던 카메라를 꺼내 테스트하고 라면을 끓이던 우리는 누군가의 탄성에 뒤를 돌아보았다.

일몰을 앞둔 측광이 사구의 능선을 드러내며 장관을 펼치고 있었다. 어느덧 구름도 사라진 서쪽하늘은 노을로 타오르고 있었다. 인정머리 없는 모래사막 같으니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름 그대로 우리는 정작 모래언덕 위에서는 카메라를 들고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헐그리 엘스 아닌가.

4. 별이 빛나는 밤에

길을 잃었다.

무리한 일정에다 모래사막에서 너무 오래 지체한 탓에 캠프이동 중에 해가 저물었다. 더구나 목적지 캠프는 해발 1500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높이 오르기 전까지 불빛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전화도 걸리지 않는 사막 한복판에서 스마트 폰은 무료함을 달래주는 축음기일 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평선에 보이는 희미한 인가의 불빛을 향해 달려가 길을 묻기를 반복했다. 자동차라는 기계 덕분에 며칠씩 걸렸을 이동시간이 하룻밤으로 단축된 것만 빼면 유목민들의 오랜 길찾기 방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정보는 틀리기도 했고 누군가는 손수 오토바이를 끌고 나와 앞장서 주기도 했다.

한국의 남자들은 길을 묻지 않는다. 길을 묻지 않고 달려온 한국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잘 묻는 일에서 우리는 길을 찾는 방법의 실마리를 얻어야 할지 모른다.

이제 방향을 잡은 듯 속도를 내던 차가 갑자기 크게 요동쳤다. 펑크다. 기사가 익숙하게 바퀴를 갈아 끼우는 동안 일행은 대지 한복판으로 나와 둘러섰다. 엔진을 멈추고 헤드라이트가 꺼지고 오직 바람소리만이 귀를 울리고 있다. 길에서 벗어나 몇 걸음 더 옮기자 사방이 암흑이다.

불빛이 사라진 고비사막. 별이 빛나는 밤이다. 한쪽 귀를 잃은 화가는 여행을 위해 기차를 타듯이 별에 이르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막의 낭만이란 결국 죽음의 이미지 위에 덧대어진 것일 뿐이다.

마흔을 넘기면서 입버릇처럼 사막에 가보고 싶다고 했었다. 불혹이라지만 흔들리지 않기는커녕 유혹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일이 더 많다. 이제는 죽어서 별 하나가 되리라든가, 당신에게 별을 따다 주리라든가 하는 마음으로 살지는 않는다. 어쩌면 죽는 일이 별에 닿기 위해 기차를 타는 일처럼 가벼운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막에 가고 싶었던 이유도 이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김형성  schenker19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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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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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철민(채윤아빠) 2015-01-29 10:22:20

    괜히 눌렀다가(!) 세번 읽게 만드셨습니다.
    서사, 서정 모두 다 감동입니다.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걸 또 느낍니다.

    (제 생각에도 그분은) 불혹이라는 말을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나이라는 뜻으로 하신게 아닌가 합니다.

    멋진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삭제

    • 전민용 2015-01-22 14:28:39

      좋은 여행기 잘 읽었어요~~~ 인생의 고비라고 느껴질 때 가면 더 느끼는 것이 많겠네요~~~   삭제

      • 전양호 2015-01-22 14:03:34

        사막,별,죽음...어우 여기 가면 안되겠는데요ㅋ...좋은 글 잘 읽었어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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