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3대 요소인 단맛, 신맛, 쓴맛 중에서 처음에는 단맛의 막걸리가 맛있다고 느껴지다가 단맛이 어느 정도 혀에 익으면, 상큼하게 신맛이 입맛을 돋우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가 고수가 되면 쓴맛에서 그 맛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인데, 사실 나도 쓴맛이 강한 막걸리에서 맛을 느낄 정도는 못되는 것 같다. 다른 막걸리들과의 비교를 위해서, 혹은 무첨가 막걸리니까 몸에 좋은 것 같으니까 하는 이유를 대면서 마시기는 마시는데, 아직은 그것을 항상 즐기기엔 부담이 되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맛의 막걸리를 주문하기 어려울 때, 서슴지 않고 주문하는 막걸리가 땅 끝 해남의 ‘해창 막걸리’이다. 송명섭 막걸리 같은 무첨가 막걸리의 투박하고 씁쓸한 맛만 살짝 가리는 용도로 아스파탐을 미량 넣어주는데, 그게 혀를 살짝만 어르는 정도로만 첨가가 되어서 마시기 부드럽고 상쾌하다.
송명섭 막걸리를 한 박스 받아서 저장을 잘 해놓고서 매일 한 병씩 마시다보면, 어느 순간 맛의 정점을 지나게 되는데, 해창 막걸리는 그 정점의 맛을 약간의 첨가물을 이용하여 오래 느끼게 해주는 맛 같다.
여러 가지 막걸리들을 한꺼번에 주문하여 마실 때는 각각의 특징적인 막걸리들을 골고루 마시면서 오랫동안 각각의 맛들을 좋다고 느끼면서 마실 수가 있는데, 한 종류의 막걸리만 주문하여 먹는다면, 각각의 맛들이 치우치지 않고 조화로운 것을 찾게 되는데, 해창 막걸리가 나에게는 그런 막걸리이다. 송명섭 막걸리의 기본바탕에 단맛과 신맛이 약간씩만 가미되어, 부드럽고 상쾌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몇 년 동안 끊임없이 막걸리들을 집으로 배달시켜서 마시다보니, 집사람과 장모님의 막걸리 맛에 대한 품평 능력이 고수 수준이 되었는데, 어느 한 가지만 시키려고 하는 때에 무엇을 주문할까라는 질문에, 그 두 사람이 의견일치를 보는 막걸리가 해창 막걸리이다.
해창 막걸리를 생각하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은, 그 양조장 건물과 부속 정원이다. 20세기 초에 일본인이 양조장과 정미소를 차린 곳에 일본식 정원을 멋지게 꾸며놓았는데, 그 나무들과 정원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얼마 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 양조장이 아름답고, 좋아서, 더욱이 해창 막걸리의 맛이 좋아서 몇 년간 찾아가서 즐기던 현재의 대표님 부부에게 옛 주인 할머니께서 인수를 권유했는데, 10년 전 그 인수를 받아들여서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가서 살고 계신 대표님 부부의 모습 또한 선하고 아름답다.
양조장 앞까지 예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와서 포구가 형성되어 있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간척이 많이 되어서 여느 농촌의 모습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해남 여행할 때, 그 정원을 보기 위해서라도 들를만한 곳이다.
선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대표님들의 모습과도 닮은 해창 막걸리는 맛이 강함이 없어서 어쩌면 너무 평범하게 보일수도 있는 막걸리지만, 많은 정성과 애정이 담겨있는 조화로운 막걸리이다. 송명섭 막걸리를 즐기기 아직 어려운 중‧고급 수준에서라면, 충분히 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