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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레미제라블』[논설] 송필경 논설위원
송필경 | 승인 2015.02.24 15:20

 

뉴 『레미제라블』
 : 지식에 속고, 돈에 학대 받고, 권력에 굴종당하는 21세기 ‘비천한 사람들’

낡은 잔재와 경제 불안 그리고 세계정치구조의 변화로 새로운 위기가 발생해 일어난 1848년 혁명은 역사상 전 세계적 혁명의 시초였다. 시대 상황을 일찍 감지한 빅토르 위고는 1831년에 ‘혁명의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고 1848년 혁명을 예언하며, 불후의 대작 ‘레미제라블’을 구상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민주적 권리와 사회 정의를 훼손하는 군주제와 다를 바 없는 낡은 권력이 버젓하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의 수장이 선거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더라도, 수학여행 학생이 대부분인 300여명이 바닷물에 잠겨 목숨을 잃은 참극에 대해 원인 규명을 하지 않아도, 내 노라 하는 지식인들이 청문회에서 파렴치한 범죄 사실이 발가벗겨져도, 통치의 권위가 왕조시대처럼 전혀 끄떡이지 않고 있다.

재벌 중심의 경제 집중화는 사회를 양극화하여 무릎 꿇리는 고귀한 계층과 무릎을 꿇어야 하는 비천한 계층으로 뚜렷하게 분할했다. 조기 은퇴, 높은 청년 실업률, 엉성해지는 복지 정책, 집값 폭등은 서민과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의 목구멍을 죄며 굴욕을 강요하고 있다. 대한항공 회항 사건에서 보듯 ‘갑질’이라는 새로운 용어의 탄생은 야만적인 경제 질서가 이미 뿌리 내렸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패권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하자, 이슬람 세계가 극단적인 테러로 대응하며 전 지구적 문명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패권에 못지않을 중국의 야욕이 가시화하고 있어 세계정치구조의 지각 변동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력 부활을 부추기고 있어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정치지형에 큰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레미제라블>은 ‘가난에 허덕이고 수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미제라블>에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요소를 사회에서 추방함으로써 불행한 사람들에게 빛을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위고는 1831년 혁명과 1848년 혁명의 처참한 실패를 목격했지만, 혁명을 통해 인류의 진보와 이상적 사회 건설은 가능하다고 믿었다. 폭력적 혁명에 숭고한 휴머니즘을 접합하여 1861년 완성한 ‘레미제라블’은 인류에게 인도주의적 혁명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식으로 속이고, 돈으로 학대하고, 권력으로 군림하는’ 우리 사회 기득권의 잔인한 소음을 제거할 새로운 활력이 분출할 조짐은 아직 감감하다. 야당은 무기력을 체질화했고, 선거만 닥치면 신당 창당 같은 정치 대안이 나오기는 하지만 늘 그랬듯이 식상하기만 할 뿐이다. 4·19, 5·18, 6·10 민중항쟁처럼 이제까지 혁명의 불씨를 지피는 일은 언제나 악에 물들지 않은 젊은이의 몫이었으나, 불필요한 짐을 가득 진 오늘의 젊은이 어깨에 더 이상 날개 짓을 기대할 수 없다.

2000년에 6월 항쟁의 합법적 상속자인 민노당이 출범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단숨에 제3당으로 발돋움했으나, 노선 다툼으로 2008년에 분당하여 8년 만에 수명을 다했다. 민노당 잔류파와 유시민의 국참당이 합친 통합진보당은 2012년 총선에서 대승하였음에도 자리 나눠 먹기 다툼에서 또다시 서로 멱살을 잡자 국민의 눈초리는 싸늘했다. 민노당의 몰락은 정치 공작이나 탄압에서 비롯하지 않았다. 고질적인 병폐인 내부 파열로 자초했을 뿐이다.

압축 성장한 한국 경제가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듯이, 진보 정치도 기반을 탄탄히 다지기보다 관념적 노선에 집착하고 의회 권력을 선점하려는 성급함이 단명을 재촉했다. 서구 사회가 의미 있는 진보 정당의 토대를 마련하고 집권하기까지 약 100년이 걸렸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혁명이 있었으나 거의 대부분 실패했다. 진보가 어설프거나 조급했다 싶으면 보수의 거센 반동이 곧 뒤따랐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진보 정치의 처지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평등파니 자주파니 하는 주장은 나름대로 진정성이 있겠으나 이런 갈등을 유권자들은 짜증스런 어리석음으로 보고 있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하나 완성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선거 때만 되면 계파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풍토에서 우리 사회의 건전한 진보 토대가 세워지리라는 가능성은 꿈만 같다. 생산이 증대함에 덩달아 비참한 계층도 증대하는 기괴한 문제는 이제는 보수의 책임이 아니라 합법 공간에서 활동하는 진보가 해결해야할 몫이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물리적 혁명으로 변혁할 사회는 아니다. 지난 3번의 민중항쟁으로 혁명의 역사적 역할은 충분했다. 진보 정당은 1950년대 냉전 시대의 가치에 매몰할 게 아니라, 21세기 전 세계적 신자유주의 양극화 질서가 강요한 비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생존 권리를 확보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지식과 돈과 권력이 강요한 비참함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누릴 권리, 이게 이 시대의 새로운 가치라 한다면 진보 진영은 낡은 계파 이익으로 동지 등에 비수를 꼽고 꼽히는 주도권 다툼으로 패가망신한 사실을 인정하고 근원적 반성을 해야 한다.

변혁 운동에 빅토르 위고가 꿈꾼 인도주의적 향기를 담으려면 윤리적 자세를 갖추고 폭넓은 인문학적 내공을 차근차근 쌓아야 하리라.
 

   
 

 

송필경(논설위원, 범어연세치과)

송필경  sp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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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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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민용 2015-02-27 10:42:13

    시대를 관통하는 좋은 글입니다
    두세번 읽고 마음에 새겨야 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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