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견문록] 중산층 드루 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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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견문록] 중산층 드루 티엔
  • 이상윤
  • 승인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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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 티엔은 스스로를 중산층(middle class)이라 여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사람들도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모호하기 그지 없다. 드루 티엔에게 미국인구에서 중산층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될 것 같냐고 물으니, 글쎄 하면서 "반 조금 넘는 정도?" 하고 대답한다. 중산층이라는 사람들의 소득은 얼마나 될 것으로 생각하냐고 물으니 역시 글쎄 하며, 주먹구구로 "연간 5만에서 10만 불정도?" 한다.

▲ 20년 경력의 50대 정교수 드루 티엔은 스스로를 미들 클래스라 생각하고 있다
앞서 제이콥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고졸출신의 치과 조무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부부 교수인 드루 티엔은 사회적 신분에서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같은 사회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뭘까?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드루 티엔의 연봉은 5만불 정도 된다고 한다. 생각보다 적은 액수다. 물론 미국 평균 가구 수입이 3만 몇천불이니까 평균은 넘지만, 그래도 박사학위를 취득한 20년차 정교수의 연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또 미국이라는 사회의 생활비를 고려했을 때 풍족한 액수라 할 수는 없다.

위생사들의 시간당 임금이 25불에서 30불이니 일주일에 40시간 일한다 치고, 일년 52주로 연봉을 계산하면 6만불이 넘는다. 고졸출신의 30대 위생사보다도 못한 20년차 정교수의 연봉! 이것이 미국이라는 사회를 짐작하게 해주는 또 다른 단서가 아닌가 한다.

드루 티엔은 교수들의 연봉은 전국적으로(nationally!)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전공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공대처럼 프로젝트를 따와 학교에 돈을 벌어주는 과는 내가 알기로 초봉이 최소한 6-7만불에서 시작한다. 의대나 치대도 7만불 이상에서 초봉이 결정되는 것 같다. 인문대 푸대접은 한국에서도 아우성이지만 미국에서는 훨씬 심할 뿐더러 사회적 이슈조차 안되고 있다. 돈이 되야 우대를 받는 미국식 황금만능주의라고나 할까.

이런 상황에서 어떤 미국인이 십수년씩 공부해가며 박사학위를 받고 학교로 들어가겠는가. 더구나 돈 안되는 인문학쪽으로. 이러니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들이나 교수자리에 외국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웃기는 것은 미국 의과대학의 박사과정 학생이나 박사급 연구원이나 교수나 이런 자리는 대학의 명성을 결정하는 연구업적을 직접 내는 곳인데, 이런 곳에는 우수한 능력을 가진 외국인을 비교적 싼 임금으로 많이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의과대학 학생을 모집할 때는 시민권자가 아니면 입학지원자체를 거부하는 의과대학이 많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드루 티엔은 좀 특이한 사람이다. 언젠가 한국인으로 미국에 유학해 학부부터 시작하여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현재 미국대학의 공대교수로 있는, 그래서 미국의 교수사회 메카니즘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한 친구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인들 중에 박사학위를 하고 교수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정말 학문을 좋아하는 소박한 사람이라고.

드루 티엔도 좀 창피하다고 생각했는지 강조하기를 5만불은 9개월치 연봉이니까 실제로는 더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미국에서는 교수에게 9개월치만 임금을 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교수들뿐 아니라 초중등학교에서도 방학 때는 선생님들에게 임금이 없다.

이것도 미국적인 면을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실이다. 나머지 3개월은 방학이고 강의를 하지 않는다고 보고 임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무노동 무임금이라고나 할까.

그러므로 드루 티엔에 따르면 5만불 연봉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5만/12개월 달러가 아니라 5만/9개월 달러니까 실제로는 연봉 7만불 정도의 대우라는 이야기인데 어쨌든 실제로는 5만불을 12개월로 나누어 주기 때문에 그런 계산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물론 드루 티엔이 여름학기에 강의를 하겠다고 나서면 그만큼 돈을 더 받지만 웬만해서는 그렇게까지는 안한다고 한다.

5만불이 9월치 월급이라는 것 외에 드루 티엔의 자랑은 또 있다. 30년을 넘게 근무하면 현봉급의 2/3 수준으로 나오는 연금이다. 이것은 드루 티엔이 주립대학에 근무하기 때문에 얻게 되는 보너스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언제 은퇴(retire)할 것인가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 50대쯤에는 리타이어하고 피곤하게 살아왔던 인생을 정리하고 즐기면서 나머지 인생을 보내는 것을 꿈처럼 생각하지만, 내가 보는 많은 미국인들은 50은 커녕 70 넘어까지 주름진 일손을 놓지 못하고 살고 있다.

미국처럼 사회보장이 안되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데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 수십년 후를 대비해 현재 수입의 일부를 고정적으로 적립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적립한 돈이 없으니 먹고 살기 위해 일할 수 밖에 없고, 그런 노인 인력을 싼값에 고용하는 곳이 있어 일하는 노인네들이 많다. 이런 현실에서 드루 티엔의 안정적인 노후대책은 자랑할 만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상윤(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치주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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