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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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 전양호
  • 승인 2015.05.0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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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 찰리 시스켈, 존 말루프 감독의 「비비어 마이어를 찾아서」

 

주중에 있는 오프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와이프 일하러 가고 홀로된 평일 오전시간에 우리나라 40대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많지는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집에 있는 도우미 이모가 집안일 하는데 걸리적거리지 않게 집에서 나와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더더욱이…

야트막한 동네 뒷산을 헤매기도 하고 우아 한번 떨어보겠다고 미술관, 서점을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일 만만한 건 영화다. 돈도 적게 든다. 평일날 조조가 6000원 여기에 신용카드 포인트를 사용하면 4000원. 돈이 적게 드니 가격대비 만족감의 역치가 확 떨어지고 영화선택의 폭도 그만큼 늘어나는 장점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0원뿐 아니라 2000원의 신용카드 포인트, 그리고 애써 죽이러 온 시간까지 아까워지는 영화가 있긴 하지만…

나같이 계획성 없는 영화 관람객에게는 요즘 같이 어벤져스같은 영화가 영화관을 휩쓸고 있을 때가 고역이다. 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해서 가리는 건 아니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나면(의도한 건 아니지만 개봉 첫날 그것도 조조로 관람) 내 편한 시간에 딱 맞춰 상영하는 영화를 도무지 찾기가 어렵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어벤져스의 홍수 속에 그나마 시간에 맞춰 찾은 어벤져스가 아닌 영화였다.

영화는 2007년 존 말루프라는 남자가 한 경매장에서 우연히 흑백 사진 필름이 가득한 상자를 구입하면서 시작된다. 인화되지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그가 보기에 독특하고 예술적인 가치가 있어보였던 15만장의 필름의 주인,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추적하게 된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에 걸쳐 부잣집 아이들의 유모를 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고, 그 아이들과 길거리의 사람들과 풍경을 구식 롤라이 플렉스 카메라에 담으면서 살아간다.

일반적인 기대와는 다르게 그녀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그런 영화(?)같은 유모는 아니었던 듯하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결코 아름다웠던 인연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괴팍하고 무례했으며 아이들을 함부로 다루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려했던 사람들을 밀어내고 외로운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이 사진에 담아내고 있는 일상의 현실 공간으로 아이들을 데려가기도 한다. 마치 그 아이들에게 ‘봐! 삶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야’ 라고 말하려는 듯이.

 

그녀에게 사진은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것일 뿐 아니라 그녀를 더욱 어둡고 단절된 삶으로 끌고 들어가는 매개체였다.
 
춘추시대 초나라. 거문고의 명수로 이름 높은 백아란 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그의 거문고 연주를 가장 잘 감상하고 정확하게 이해해주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종자기가 죽고 난 후 백아는 자신의 연주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음에 절망하여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9년. 비비안 마이어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못한) 수 십만장의 필름만을 남긴 채 외롭게 죽어간다. 비비안 마이어는 어땠을까?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사진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에 그리고 알려질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상황에 절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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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기 2015-05-05 00:03:54
영화와 직접 관련은 없겠지만... 정약용의 '하피첩'이 떠올려진다. 폐지 수집하는 할머니 손에 들려있다가 발견되었다는 TV프로그램 진품명품의 최고 에피스드던가? (노비문서 사건과 쌍벽을 이루는...ㅎㅎ) 하여튼, 문제는 '발견'이 아니라 멋진 사진이나, 역사적 인물의 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어야 가치가 생긴다는 것.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달려나가거나, 부인마마의 한복치마에 서예 연습을 하려 하는 이를 경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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