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여성의 성적행동을 분석 수량화한 킨제이 보고서는 인간 성기 크기의 통계적 수치나 주당 섹스 회수는 물론 체위의 다양한 방식과 혼외정사, 자위, 매춘, 동성애, 여성의 오르가즘 등 당시 기독교적 보수사회가 죄악으로 치부하던 부분까지,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영역을 단순한 숫자와 명료한 문장으로 정리해내는 과업을 이루어 내 기존 성 담론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영화는 기대(!?)와는 달리 매우 건조하며, 에로틱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과학적 사실과 통계에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가졌던 한 과학자의 전기 영화일 뿐.-모든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그렇듯, 인간의 성적행동의 분류 역시 다분히 정치적이다. 의학과 종교와 체제가 지원하는 정당성을 등에 업고 비정상을 적대적 구도로 몰아간 것이며, 사회가 원하는 ‘정상’이 아니면 사회보호의 미명아래 처리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규정되어온 ‘비정상’의 역사적 수난 옆에는 파시즘과 매카시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근대국가의 사회적 통제와 억압을 위한 도구로서의 성담론이 존재한다.
‘인간의 성은 다원적 문화이며 성적행동에 있어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성적 마이너리티도 자연적 현상의 하나다’는 킨제이의 화두가 세계를 뒤흔든지 반세기가 지났으나 킨제이는 여전히 성개척자에 성해방론자이면서도 부도덕한 청교도의 반항아로 간주된다.
-킨제이박사와 연구원들의 실험정신은 스와핑과 동성애를 몸소 실천하게 만들었으나 윤리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채, 자책과 질투와 분열을 일으킨다. 신석기 혁명 이래 수많은 문화의 교류를 거치며 대부분의 인류가 관습화한 가부장제적 일부일처제는 킨제이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 현대인에게 맞춤형 형태는 아니다.
인정하기 싫다면 ‘사랑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위대한 이데올로기 '사랑' 앞에 도덕적으로 ‘착해져야’ 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시대를 앞서 살았던 50년대 미국사회의 킨제이보다도 한참 보수적인 2005년 대한민국의 한 여성은 욕망의 충족 이후에 돌아오는 감정의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지라 아주 잠시 딜레마에 빠졌다가, 결국 ‘착하게’ 살고자 마음먹는다.
강재선(인천 남동구 유명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