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일을 벌일 천성을 타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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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일을 벌일 천성을 타고나지 못했다”
  • 이인문 기자
  • 승인 2005.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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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GUTTA PERCHA 원료개발자, 에이존덴트코리아 이성식 대표

한 엔지니어의 거북이걸음

에이존덴트코리아 이성식 대표는 장사꾼이 아니다.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인 그는 타고난 엔지니어로 뚜벅뚜벅 오로지 자신의 한 길만 걸어왔을 뿐 어떤 이문을 생각하는 그런 장사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그는 국내 최초로 GUTTA PERCHA 원료의 국산화에 성공해 국내산 GUTTA PERCHA 업체가 현재 세계시장을 석권(60-70%)하고 있게끔 만든 장본인 중의 한 사람임에도 국내 GUTTA PERCHA 시장에서는 그의 회사 제품의 존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매우 조심스럽게 ‘정중동’의 활동만 펼치고 있다.

“저는 천성이 엔지니어일 뿐이예요. 마케팅 능력이 없지요. 그래서 국내시장 진입에는 쉽게 나서질 못하고 있어요. 수금 문제니, 뭐니 해서 골치만 아플 뿐이죠.”

그는 웃는 낯으로 이렇게 조용히 속삭이듯 말을 이어나갔다. 지난 1991년 2월 회사를 설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수출에만 전념해 왔을 뿐 국내시장진출에는 별다른 엄두를 내지 못해 왔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회사를 어떻게 이끌어왔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만 14년이 넘는 세월을 말이다.

“애 엄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죠. 지금은 수원의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있는데, 회사를 차리고 나서 거의 12-3년 동안 집에는 한 푼도 갖다 주지 못했어요.”

2-3년 전 수출시장이 안정화되면서 회사가 흑자로 돌아설 때까지 10년이 넘게 고생고생하며 살아왔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이끌어온 것일까? 국내 최초로 GUTTA PERCHA 원료의 국산화에 성공했음에도 큰돈을 벌어온 것도 아니고, 아니 앞으로도 큰돈을 벌 욕심조차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웃는 얼굴에서는 어떠한 흔들림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잘나가는 공장장에서 벤처사업가로

사실 그는 1989년 GUTTA PERCHA 원료개발에 직접 뛰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아주 잘나가는 중견업체의 신임 받는 공장장으로 나름대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건설화학 계통의 FOSECO란 영국인회사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회사를 차려 독립하겠다는 말에 영국인 지사장은 곧 자기가 일본으로 가게 되니까 공장장으로 일본에 함께 가자면서 그를 적극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굳은 결심을 품고 그 좋은 자리를 제 손으로 그만두고 나와 버렸다. 1976년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이후 구로공단에서 서통전자 등을 거쳐 1978년 지금의 (주)슈어덴트의 전신인 슈어프로덕트에 입사해 생산차장(1980-1986년)으로 근무하다 FOSECO(1986-1991년) 공장장으로 스카웃 되어 갔던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일(사업)을 하고 싶었고, 건설화학 계통인 FOSECO에서는 그럴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아 회사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그가 한 고생은 전혀 언급을 해주지 않아 제대로 알 수가 없지만 “처음에는 부천 원미동에서 아주 작게 월세로 시작했고, 지금 이곳 부천테크노파크에 들어온 것이 3년쯤 전이다”는 그의 아주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능히 짐작이 가고 남는다.

운명의 1989년

그가 “미래를 보장해주겠다”던 FOSECO 지사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회사를 나와 따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89년 아주 뜻밖의 사건으로 그가 몸담았던 슈어프로덕트에서 GUTTA PERCHA 원료 개발에 대한 요청을 받게 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전 세계 GUTTA PERCHA 시장의 80%를 장악하면서 아주 잘 나가고 있던 이 회사의 미국인 사장이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도망을 가버리고 만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과 9월의 노동자 대투쟁 이후 드높아진 노동자들의 권리의식 앞에 그 미국인 사장이 위장폐업으로 맞섰던 것일까? 당시의 미국인 사장은 지금도 멕시코에 똑같은 GUTTA PERCHA 공장을 차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활발히 벌여나가고 있다 한다.

어쨌든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되어버린 360명의 종업원들의 대표이자 사장으로 취임하게 된 당시 슈어프로덕트의 신형환 사장은 그에게 간절히 원료개발에 대한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이것을 냉정히 뿌리칠 수가 없어 FOSECO의 공장장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원료개발에 몰두하길 약 2년 만에 드디어 원료개발(국산화)에 그는 성공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잘나가던 공장장 생활을 접고 자기 사업이라는 험난한 고생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욕심은 없었다, 내게 주어진 길만을 갈 뿐

“1991년 돈이 없어 아는 사람의 소개로 베트남에 원료생산 공장을 차리고 부천에 조그만 월세 포장 공장을 차려서 슈어프로덕트에 원료를 공급하고 또 자체 제품의 해외 수출을 모색하면서 그냥 시작한 거죠.”

마케팅 능력이 없어 활발한 영업활동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는 그는, 국내 재료상들에게 몇 번 돈을 떼이고 나서부터는 아예 수출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알음알음으로 자신의 회사 제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에만 주고 있을 뿐 국내시장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또한 해외 수출의 경우에도 4-5년 전 돈을 떼인 후 코트라를 통해 겨우 수금에 성공한 이후부터는 아예 선금을 받고 나서 제품생산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모두 전환해 버렸다고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1992년부터 무작정 해외 치과전시회에 나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어요. 그랬더니 조금씩 안면이 익으면서 또 제품도 괜찮고 하니까, 그냥 오더가 오더라고요.”

정말 그의 말처럼 그는 천성 엔지니어일 뿐 마케팅 능력이라곤 전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그의 회사 제품이 아주 품질이 뛰어나다는 설명인 것일까? 그는 이러한 ‘거북이걸음’으로 현재 러시아, 일본, 독일 등등 전 세계 70개국에 연간 70만불, 약 50만 박스(국내의 경우 연간 약 5만박스. 2004년도 기준. 올해는 수출 100만불 목표)의 수출실적을 올리고 있다.

처음 회사 설립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수출물량이 꾸준히 늘어나 지금은 중국에도 원료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2-3년 전부터는 매우 안정적으로 고정 고객들에게서 꾸준한 물량 주문이 미처 생산이 못 따라갈 정도로 들어오고 있다는 설명인 것이다.

서로 도우며 사는 게 중요

“사람 욕심이란 게 끝이 없지요. 하지만 저는 서로 공존하면서 돕고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들의 행동과 말 속에는 항상 비수가 들어있더라고요.”

그는 자신이 마케팅 능력도 없고, 또 자금력도 충분치 못해 항상 일을 크게 벌여오지 못했다고 자인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이렇게 사는 방법, 아니 이렇게 사업하는 방법도 또한 있는 법이거늘.

현재 국내 GUTTA PERCHA 생산 업체로는 그의 에이존덴트코리아 말고도 다이아몬드치재(주)와 (주)메타바이오메드, (주)슈덴교역, (주)슈어덴트 등이 있다고 한다. 모두 비슷한 규모로 오석송 대표의 메타바이오메드가 활발한 마케팅력을 바탕으로 조금 앞서가고 있을까, 전 세계 GUTTA PERCHA 시장의 60-70%를 이들 국내 업체들이 분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 5개 업체가 모두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옛날의 슈어프로덕트와 직,간접적인 인연으로 얽혀있는 회사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전 세계 GUTTA PERCHA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던 그 미국인 사장의 갑작스런 줄행랑으로 국내 GUTTA PERCHA 업체들의 등장과 함께 세계시장에 대한 잠식이 시작되었다는 전언인 것이다.

“올해 중으로 G/P TRIMMER 등 GUTTA PERCHA와 관련된 새로운 아이템의 제품들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현재 시제품들에 대한 반응이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오고 있는데 연말에 CE인증을 받고 공식 출시가 되면 회사가 더 발전할 수도 있겠죠.”

아직은 비밀이라며 G/P TRIMMER 외 신제품에 대한 공개를 무척이나 꺼리고 있는 그의 ‘거북이걸음’에 커다란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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