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전건치, 지역민과 함께 달려온 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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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전건치, 지역민과 함께 달려온 26년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5.08.16 09: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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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건치 광주‧전남 지부 기획 ①] 광전건치 역사 및 성과 정리…지역 보건의료단체로서 활동 중심으로

1987년 6월 항쟁의 승리를 기반으로 ‘올바른 민중사회 건설’이라는 목표아래 치과의사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9년 4월 26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창립됐다.

또 1987항쟁 이후로 현재까지 보건의료운동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가 함께 생겨났고 지금까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건치와 연대하며 활동해 오고 있다.

본지는 건치 창립 26주년을 맞아 지금까지의 건치 지부 역사와 활동을 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해 보기 위해 ‘지부 기획’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로 건치 광주‧전남지부(이하 광전건치)가 선정됐다.

건치가 1989년 4월 26일 창립되고, 이어 지부들이 결성되기 시작했다. 광전건치는 5월부터 준비위원회를 발족해 조직 개편, 회칙 제정 등을 거쳐 8월 5일 광전건치를 창립했다.

건치 6개 지부 중 가장 마지막에 창립됐지만, 현재 건치 지부 중 가장 활발한 활동, 월등한 회원 수, 끈끈한 가족애(?)와 동지애(?)를 과시하는 지부로 성장했다.

초대 집행부는 김무영 회장을 중심으로 이계원 홍보편집부장, 장용성 사업국장, 조세용 의료보장분과장, 정 담 지역진료국장, 송광은 발산지료부장, 정은주 학동진료부, 최숙희 교육연구부장, 정은주 총무부장, 김흥준 구강보건분과장, 반핵반공해분과 최철용, 김재형 무등 진료부장, 김형석 한빛 진료부장 등의 구성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이금호‧김용주 공동대표를 비롯한 102명의 회원이 광전건치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본지는 광전건치가 보건의료단체로서 지역사회에 뿌리내려 온 과정과 민주화 단체로서 사회의 큰 틀 안에서 어떤 정체성을 갖고, 의료인이면서 한명의 시민으로서, 단체로서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아울러 지역사회와 오랫동안 연대해 온 광전건치에 대해 외부 단체에서의 시선, 광전건치 회원들이 바라는 미래 상 및 비전에 대한 기사가 연재될 예정이다.

 

태동기 : 열악한 의료현실에 뿌리내린 초창기 지역사업

본 건치 광전지부는 회원간의 민주적 활동을 통하여, 사회현실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보건의료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여 올바른 보건의료체계의 정립 및 발전을 도모하고, 사회 각 부문과 공동 협력하여 사회의 발전과 민주화에 기여하는 제반활동을 수행함으로써, 올바른 의료인상의 구현을 목적으로 한다. -『광전건치 지부 창립회지 중(89년 8월 5일)』

 

▲ 1989년 광전건치 초창기 모습

광전건치는 설립 초기 단계에서부터 지역 진료 부분을 주요 사업으로 상정, 진행해 왔다. 당시 광주는 의료인에게 부과된 과제가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타 지부에 비해 지역주민과의 연계 사업이 일찍부터 모색됐다.

이러한 지역특수성을 감안해 광전건치는 지역대중과 함께하는 최소한의 실천적 단위로 ‘지역진료국’을 조직구조 속에 체계화 시켰다.

광주지역 의료인들은 본격적으로 단체가 설립되기 전인 1985년도부터 소진료소 활동을 시작했으며, 빈민부분에 학동‧발산‧한빛이, 노동부분에는 무등, 농민부분에는 나주 진료 팀 등 5개 진료소가 지역청년운동단체와 함께 운영해 왔다.

그 중에 몇 개의 진료소는 지역단체의 요구에 의해 탄생하기도 했다. 광전 지역 소진료소 활동은 지역 속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단체와 지역에서의 요구가 결합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같은 맥락으로 1989년 5월 13일 전남치대 졸업생인 정은주, 조부덕 회원이 공동으로 광주시 소태동에 ‘광주푸른치과’를 개원했다. 이곳에 딸린 작은 숙직실은 광전건치 사무실로도 활용됐다.

광주푸른치과는 이미 건치 중앙에서 구로‧가리봉동 일대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민중의원인 푸른치과를 모델로 해 설립한 것이다.

“…사업방향은 개원당시 빈민지역 운동과 의료운동을 결합한 활동을 구상한 것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빈민지역운동의 구체적 방향으로 소진료소 활동의 활성화와 지역조직인 남광주지역 민주청년회와의 연대활동과 의료운동을 풀어나가기 위한 방향으로는 광주지역 의료소외 계층을 위한 ‘의료체계’의 적극적 홍보와 실현이 기본적 사업…(중략) 민중 자신의 건강을 민중 스스로 담보해 낼 수 있는 의료체계, 이를 가능하게 하는 민중적 사회체계의 실현을 위해…(생략)” -건치 회보 『건강한 사회 1989년 8월 25일 3호』 광주 푸른치과 소식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한 보건의료운동과 함께 광전건치는 ▲故이철규열사 사인진상규명 보건의료인 공동대책위, ▲산업안전법 개정에 대한 입장 표명, ▲한반도 반핵과 군축을 위한 보건의료인 대회 공동 주최 등 사회적 이슈에 반응하며, 타 보건의료인‧시민 단체와 연대 활동을 펼쳐왔다.

 

발전기 : 당위성만으론 어려웠던…수돗물 불소화 사업

▲ 1993년, 광주 수불사업 거리 선전전

1990년 초반부터 진행된 건치의 ‘상수도 불소화 사업(이하 수불사업)’ 촉구에 동참, 이를 위한 서명 및 가두 캠페인, 촉구대회 등을 펼쳤고, 1995년은 특히 광전건치에서 수불사업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해였다.

그 내용으로는 광주시치과의사협회(이하 광주치협)로의 수불사업 확대, 건치 산하 수불사업 특별위원회 결성, 광주광역시 의회 정기회기에 정영로 의원의 시정질의를 거쳐 1996년 제1회 추경예산에 수돗물 불소화 사업 시범 사업비 2억 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2000년에는, 국내에서 수불사업이 실시된지 20주년이 되는 2001년을 준비하며 ‘수돗물 불소화 사업 자료집’ 발간, 광주치협 및 학계와 수불사업 범 치과계 추진위원회 구성, 시의회에 청원서 제출, 어린이날 홍보, 수불사업 20주년 기념 광주전남 대회 등의 노력을 거쳐 광주 상수도사업본부는 1개 정수장 수불사업 실시를 위한 시범사업비로 약 2억 1천만 원의 예산을 추경, 반영했다.

그러나 광주지역 녹색연합이 '수돗물 불소화 반대를 위한 시‧도민 연대'를 결성, 호남일보를 통해 '불소의 위험성'등 일반 시민들에 겁주기 식 거짓 주장 유포, 반대여론 선전전 등을 벌였다. 급기야 104회 시의회 임시회에서 수불사업 시법사업비용 전액이 삭감되는 등 한계에 부딪혔다.

당시 상황에 대해 광전건치 20주년 기념 사업단은 “건치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과 실질적인 수혜자이면서 이사업의 진정한 주체인 광주시민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결 고리를 갖게 되는 것이 앞으로 이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중요 한 과제라고 생각 한다"며 수불사업 추진 결과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새롭게 준비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밝혔다.

 

안정기 : 치과의사로서 ‘재능’ 지역사회에 ‘기부’

▲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영호남 화합과 취약계층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틀니 사업

광전건치 초창기 사업은 사회 참여적 성격이 짙었다면 1995년 이후부터는 ‘국민구강보건’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사업을 진행했으며, 지역 단체들과의 연대 사업을 심도 있게 고민하는 시기였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대경건치와 연합해 취약계층 노인들을 대상으로 '영호남 화합을 위한 무료 틀니사업'을 진행했다. 광주지역과 대구지역을 번갈아 가면서 시행된 이 사업은 매해 평균 20여 명의 노인들에게 무료틀니를 시술했으며, 이후 이 사업은 '장애인 이(齒)해 넣기 사업'이란 이름으로 계승됐다.

광전건치는 수불사업이 어려워진 원인에 대해 수불사업 자체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대중-지역민과 함께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파악하고, 장애인 진료 시작과 더불어 2003년에는 ‘장애우 진료와 지역 사업’이란 주제로 구강보건 포럼을 개최했다.

“장애우 진료사업이 우리 건치만의 사업이 아닌 지역내에서의 연대를 통한 질적 양적 발전을 끊임없이 이뤄내야 한다는 것…(중략)…지역에서 치과의사로서 사회에 다시 우리의 물적, 정신적 재산을 환원한다는 의미에서의 건치 지역운동의 필요성…(중략)…인식의 공유를 바탕으로 지역사업의 상을 마련하고 실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 -2003년 건치 구강보건 포럼 ‘장애우 진료와 지역사업’ 중 발췌

광전건치 내부에서 성찰적 역량 강화, 토론 등의 바탕위에 2000년에는 장애인진료로 광산구 보건소‧선광학교 진료를 시작했으며, 2005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 광주 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 치과진료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꾸준한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활동은 2006년에는 광전건치의 주도로 광주광역시치과의사회와 함께 ‘광주 장애인 치과병원’ 건립을 추진으로, 광주 전남 지역내 건치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이러한 건치의 치과의사 대중 사업에 대해서, 광전건치 20주년 기념 사업단은 아래와 같이 평했다.

“2003년은 2002년에 치열하게 논의하고 계획했던 건치 대중사업들이 성과를 이뤄낸 한해였다고 평가된다. 임상강좌의 대성공 문화강좌의 성공적 출발, 장애인 진료사업의 질적 도약, 구강보건정책 이해를 위한 다양한 학술활동…(중략)…재정적 안정 또한 커다란 성과…(중략)… 조직골간을 튼튼히 한데로부터 새로운 건치의 상을 만들기 위한 건치회원들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결과…(중략)…제2의 전성기를 본격적으로 연해”

2005년 광전건치는 공동대표제를 토입하면서 행사참여의 폭을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2007년 지역 아동센터와 연계해 ‘아동치과주치의제’ 시작, 한미FTA 반대 투쟁, 의료법 개악 저지를 위한 투쟁, 2011년 네트워크 치과 반대, 의료영리화 저지 투쟁 등 지역사회에서의 활동과 정치지형의 변화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007년, 아름다운공동체광주시민센터와 아동들의 건강 검진 및 치료를 목적으로 자매결연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지역에서의 ‘아동치과주치의제’를 시작했다.

2009년에는 건치 서울‧경기 지부가 제안한 아동치과주치의 브랜드 명인 ‘틔움과 키움’을 함께 쓰기로 합의, 이후 틔움과 키움 사업으로 확대했다.

특히 틔움과 키움 사업은 2010년에는 양적 성장이 도드라졌는데, 그 전까지 6개 지역아동센터와 연계해왔던 것에서 35개 치과와 37개 지역아동센터로 확대 시행하게 되면서 지역사업으로 정착함과 동시에 회원 재생산의 통로로 자리매김 하게 됐다.

또한 광주지역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틔움과 키움 공동사무실을 개소, 공간적 연대의 틀을 마련했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의료영리화 저지’를 기본 바탕으로 광전건치, 민변, 인의협, 건약 등과 ‘보건의료단체 협의회’를 구성, ▲무상의료 운동 ▲광주시 보건의료 정책의 공공성 강화 및 민영화 대응 ▲보건의료학교 ▲의료관광 및 영리병원 도입 반대 투쟁 등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또한 가장 최근의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유가족 동조 단식, 시국선언, 촛불집회 등 활발한 사회 참여를 해나가고 있다.

이외에도  광전건치 창립 초기부터 회원 재생산 및 역량강화를 위한 치과의사 대중사업, 임상강좌, 가족 야유회, 전남대와 조선대 본과 3,4학년을 중심으로 한 ‘여름한마당’ 등의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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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인 2015-08-18 11:55:45
지부소식 좋네요. 1년에 한번 얼굴 보기 바쁜데, 이렇게라도 소식 알려주셔서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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