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선 그 마음은 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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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선 그 마음은 죄가 아니다
  • 김랑희
  • 승인 2015.08.26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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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희 인권활동가, '불온하고 위험한 인권이야기'

여러 번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은 일이 있다.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일, 법원에서 재판받는 일은 언제나 긴장된다. 내가 죄가 있어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범죄자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마치 나 홀로 100명쯤 되는 힘 쎈 사람들과 싸우는 느낌이랄까.

내가 경찰서를 가야 하는 일은 집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집회에 참석하고 몇 달이 지나면 집으로 출석요구서가 온다. 그때부터 나를 범죄자로 만들려고 하는 공권력에 대한 분노가 솟구치면서 주먹을 꽉 쥐고 두 눈을 부릅뜨고 경찰서에 간다. 경찰서 문을 열면서 나는 절대 기죽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하고 수사관과 마주 앉아 내 나름의 전투를 치른다. 최소한의 인적사항 외에는 진술거부(묵비권)를 하면서 자꾸 말하라는 꼬임에 안 넘어가기, 나한테서 뭘 알아내고 싶은가 파악하기, 내 사진은 어디에서 찍은 것인가 추정해보기, 증거를 얼마나 가졌는지 살펴보기 등. 나를 조사하는 수사관은 어떤 마음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그마한 틈도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다.

나는 수사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시 몇 달이 지나면 벌금통지서를 받는다. 고작 1분도 안 되는 사이 찍은 사진 2~3장으로 나는 일반교통방해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되었고 법원은 200만 원~300만 원의 벌금을 내라는 약식명령을 보낸다. 어마무시한 벌금액수에 다시 부들부들 분노하며 이번엔 법원으로 간다. 정식재판청구를 해서 재판으로 싸워보자는 마음으로 또 전투를 준비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4건의 재판을 하고 있고 작년에 세월호 집회와 관련해 조사를 한차례 받은 건에 대해서 언제 벌금통지서를 보내려나 하며 우체통을 들여다본다.

재판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판결을 받는 그 순간까지 늘 신경은 곤두서고 때때로 감정이 솟구친다. 재판 날짜에 맞춰 일정도 조정해야 하고,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지 내용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 많은 정성과 감정이 소요되는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단지 벌금이 부담스러워서만은 아니다.(오히려 벌금액수가 너무 많아서 화가 나고 투지가 타오른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언제 찍혔는지도 모르는 내 사진을 확인하는 그 과정에서 내가 왜 그 집회를 갔어야만 했는지,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왜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오히려 경찰이 어떻게 공권력을 남용하고 집회를 방해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희망버스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약식명령을 받은 것에 대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는데 얼마 전에 1심 재판이 끝났다. 나는 인권침해감시단으로 참여해 경찰이 집회에서 공권력을 남용하고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현장에서 항의했고, 이후에 보고서를 작성했다. 검사는 내가 희망버스 참여를 독려했고, 불법집회에 참여했으며 인권침해 감시활동은 공인된 활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사의 태도에 화가 났다. 나를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고, 통화기록을 뒤지고, 인권활동을 폄하하는 것도 화가 났지만, 그 자리에 함께 섰던 수많은 사람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오직 거리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행위를 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랜 시간 홀로 크레인에서 자본의 횡포에 맞서 싸우고 있는 김진숙 씨를 응원하려고, 닿지 않는 손을 뻗어 힘차게 흔들어주려고 크레인을 향해 걸어간 사람들의 마음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 사람들이 마주친 것이 김진숙 씨의 모습이 아니라 도로를 막아선 차벽과 최루액을 쏘는 경찰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만들고 싶었던 사람들이 경찰에 가로막혀 눈물을 참으며 돌아와야 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차분히 얘기하고 싶었던 최후진술은 격양되고 말았다. 재판 내내 고심하던 판사는 내게 무죄를 판결했지만, 예상대로 검사는 항소했다.

집회시위는 기본권이라고 헌법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내가 참석했던 집회에서 기본권이라고 존중받아본 적도 없고,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시민의 권리라고 권장 받아 본 적도 없다. 오히려 늘 위험한 사람이나 불온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집회에 나가면 경찰에 연행되거나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될 거라는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집회에 나가고 경찰과 싸우고 또 법정에서 따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은 행동이고, 나의 권리이고, 나와 함께 거리에 선 사람들의 힘으로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정의를 믿고, 인간으로 존중받는 삶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 때 거리에서 만난다. 광우병 소고기처럼 나와 직결된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꼭 나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거리에 나온다. 내가 해고당하지 않았지만, 내가 터전을 뺏기지 않았지만, 내가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리고 손을 잡고 거리에 선다. 쌍용차 해고자들과 밀양의 할매들, 그리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거리에 선 것은 우리 사회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반성과 슬픔, 곁을 지키고 싶은 마음, 외면할 수 없는 내면의 흔들림이 사람들을 거리로 이끈다. 그렇게 거리에 섰던 마음들을 범죄로 만들고 벌금폭탄을 퍼붓고 있다.

세월호 참사 500일이 다가온다. 그동안 우리는 제대로 애도할 수도 없었다.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넘어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진실을 규명하는 요구와 다시는 참사를 반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행동은 늘 경찰에 가로막혔다.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목소리는 원하는 곳에 닿지 못하도록 봉쇄되었다. 작년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관련한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 539명이 연행되었고 그 중 526명이 기소의견으로 송치되었다. 연행되지 않았지만 소환조사를 받은 사람들의 숫자까지 합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기소되고 벌금을 받게 될 것이다. 스스로 참사의 목격자로, 사회구성원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라도 믿었고 남겨진 사람의 몫이라 여겼던 행동들이 범죄가 되어 경찰서로 불려가고 몇 백 만원의 벌금 통지를 받게 되었다. 평화적 집회를 보장하는 권리가 집시법과 일반교통방해에 가로막히면서, 애도의 공간은 사라지고 애도의 권리도 실종되었다.

의견을 표현하며 슬픔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권리, 진실을 찾아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정치적 항의를 하는 권리,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고 함께 삶을 살고자 연대하는 권리. 이런 권리들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애도의 행동을 멈출 수 없다. 아직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고 왜 참사가 일어났는지 답을 얻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500일을 앞두고 다시 신발끈을 꽉 맨다. 애도의 권리를 가로막는 권력에 불복종하며 애도를 실천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김랑희(인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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