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 우주전쟁? 오, 스티븐 스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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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편] 우주전쟁? 오, 스티븐 스틸버그!
  • 이우리
  • 승인 2005.07.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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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천재여, ‘인디애나 존스’나 만들지어다

우주전쟁, 일요일 아침의 선택

황금 같은 일요일 오전. 약속이 펑크 나고, 갑자기 두세 시간이 비어버렸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유명한 개봉관은 아니지만 10M 안쪽에 조그만 영화관이 있고, 커피는 이미 자판기 커피를 빼서 마셔버렸고, 또 아침은 이미 먹고 나왔다면...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았다. 마누라가 좋아하는 톰 크루즈 주연,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의 ‘우주전쟁’. 지난 7일 개봉을 했고 ‘우주전쟁’이라는 제목이 나를 끌리게 만들었던 영화.

하지만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의 작품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조조할인 표를 달랑 1장 끊으면서도 내 마음의 한 구석을 찜찜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더 맘에 드는 영화를 찾아 자리를 옮기기에는 곤히 쉬고 있어야 할 일요일 아침의 심신이 피곤하고, 그렇다고 좋은 휴일 날 아침부터 칙칙한 ‘분홍신’을 보며 마음을 졸이고 싶은 마음은 꿈에도 없고,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꼭 한번 영화관에서 보았던 ‘쉰들러리스트’에서 나는 다른 사람과 달리 실망만 느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지어낸 감동’만 자아내는 수준의 감독, 그에게서 색다른 ‘감동’이나 더 깊은 ‘사고’를 영화 속에서 찾아내기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차라리 그의 영화는 ‘인디애나 존스’ 같은 오락영화가 더 좋다. 아니, 하나의 예외가 있기는 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을 다시 보게 해준 영화. 하지만 내가 ‘우주전쟁’에서 기대했던 것은 ‘마이너리티 리보트’가 아니라 ‘인디애나 존스’였다. '우주전쟁'이라면,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닌가?

찜찜했던 한겨레의 영화평

영화관에 들어서면서 얼핏 내 머리를 지나쳤던 것은 며칠 전 한겨레 신문에 실렸던 영화평이었다. 화장실에 앉아 휙 훑어 나가다 언뜻 눈에 들어온. “우주전쟁에 전쟁은 없다, 다만 가족만 있을 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외계인과의 대결도 관심 없다. 오직 사랑하는 내 가족만 지켜내야 한다”는 등등의...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꼭 그 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니, 영화를 만들다 예산이 똑 떨어져 버렸을까? 헐리우드의 유일무이한 생각있는 배우라는 팀 로빈스까지 악착같이 죽여버리면서, 그렇게 자신의 가족만 무사히 지켜내기만 하면 다 인가?

▲ 팀 로빈스와 톰 크루즈
정말 허무했다. 아니, 처음부터 영화는 그런 조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외계인의 침략으로 모든 전기가 다 나가버린 도시 속에서 ‘도대체 저들이 누구이고, 또 외계인이라면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까?’란 궁금증을 아주 우연한 계기로 설명해나가는 품새하며... 어쨌든 좋다. 오락영화에서 그런 억지는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으니까... 스펙타클, 그것 하나면 족한 것 아닌가? 그런데...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

톰 크루즈는 영화 시작서부터 끝까지 이혼해 엄마와 살고 있던, 그러다 주말을 맞아 자신을 보러온 아들과 딸, 두 아이만 지켜내자고 아둥바둥이다. 같이 살자고 자동차로 몰려드는 군중들을 차로 밀어버리고, 맞서 싸우자는 10대 후반의 큰 아들에게도 ‘안된다’고 소리 지르고, 급기야는 외계인과 맞서려는 시늉을 하다 미쳐버린 팀 로빈스까지 소리를 질러 외계인에게 들키게 만든다는 이유 하나로 무참히 처형해버리고 만다. 물론 열 살 쯤 되는 딸아이의 눈은 이를 보지 못하게 가려버렸다.

허나 그런다고 외계인의 침략 속에서 온 지구가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들 가족만 살아남을 수가 있단 말인가? 큰 아들 녀석은 결국 외계인과 맞서겠다고 가버리고, 이제는 가련한 딸 아이 하나만이라도 지켜내고자 아이들 엄마가 살고 있는 보스톤으로 무작정 살길을 찾아 헤매는 톰 크루즈. 결국 그에게도 시련은 왔다. 딸아이가 그만 외계인이 조정하고 있는 살인로봇에게 붙잡혀가고 만 것. 톰 크루즈는 그제야 고작 수류탄 몇 발을 까들고, 외계인과 맞서다 딸아이처럼 잡혀 올라가고야 만다.

오, 이런! 위기일발... 로봇 속으로 잡혀 올라간 톰 크루즈의 눈에 이미 떼거지로 잡혀 올라온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딸아이의 모습도. 악착같이 딸아이 곁으로 다가간 톰 크루즈. 전자우리 속에 갇힌 사람들은 하나씩, 하나씩 그 괴물들에게 잡아먹히고 있다. 이 순간에도 톰 크루즈의 관심은 오직 하나, 자신의 소중한 딸아이만의 목숨이다. 드디어 로봇이 딸아이를 잡아먹으려는 순간, 톰 크루즈는 필사적으로 딸아이를 제 몸으로 가로막고 나서고... 결국은 그가 대신 끌려 올라간다. 영화 속의 주인공답게 그가 갖고 올라온 수류탄 몇 발을 들고서...

드디어 기적이 일어난다. 곁에 있던 사람이 톰 크루즈의 손에 들린 수류탄을 보고는 크게 소리를 외치며, 필사적으로 딸려 올라가는 톰 크루즈의 몸을 붙잡고 늘어진다. 그때까지 공포에 질려 우르르 도망만 다니던 사람들도 어느새 기운을 차려 달려들다. 톰 크루즈의 몸을 그 괴물이 삼켜버리려는 순간, 사람들의 손길에 톰 크루즈의 몸이 다시 딸려 나온다. 그리고 바닥으로 툭 떨어진 톰 크루즈의 입 안에서 나온 뇌관 고리... 순간, 로봇이 터지면서 그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모두들 로봇 밖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물론 톰 크루즈와 그의 딸아이도 함께... 그게 끝이다. 이어서 톰 크루즈는 딸아이를 무사히 보스톤에 있는 엄마, 그의 아내에게 데려다주고, 그 안에서는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던 큰 아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그러면...

▲ 스티븐 스틸버그와 톰 크루즈
지구는 누가 지키나?

막이 내리면서 시작되는 나레이터. “그들이 처음 지구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그들은 죽을 운명이었다. 그들을 죽인 것은 인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생물들이었다. 인류의 생존은 이러한 적응의 결과물들이었다. 인간의 죽음은 어느 것 하나 쓸데없는 죽음이 없다.“ 오, 지랄 같은 스티븐 스틸버그. 그 무시무시한 외계인의 침략 속에서도 소중한 내 가족만 악착같이 지켜내면 된다니...

그렇다. 지구는 우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지켜 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 그 지긋지긋한 자유주의자들의 경제 논리를 이렇게 허무하게 스티븐 스틸버그의 오락영화 속에서도 확인해야만 하다니... 스티븐 스틸버그! 너, 위대한 천재여! ‘인디애나 존스’나 만들지어다. 나는 '독수리 5형제'나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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