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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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양호
  • 승인 2015.09.2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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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 이준익 감독의 사도

영조는 무수리의 아들이다. 어머니인 숙빈 최씨는 임금의 생모임에도 불구하고 그 출신의 기록이 명확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임금의 어미로써는 어울리지 않는 천한 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금의 승은으로 하룻밤 새에 신분이 뒤바뀌고, 생물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장자계승의 전통이 이어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조선왕조였다. 하지만, 당시는 어느 때보다 당쟁이 치열한 시기였다. 영조의 아버지인 숙종은 환국을 밥 먹듯이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권력을 잃는다는 것은 곧 목숨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던 시대였고, 각 당파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왕의 핏줄을 내세워 최후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던 시대였다.

영조는 노론이 지지하는 왕자였고, 그의 배다른 형님인 경종은 오랜 기간 소론의 보호를 받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약 4년간의 경종 재임기간은 영조에게 치열한 생존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그의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약점이자 콤플렉스였다.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아 왕위에 오른 영조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했고 성실했으며 군주로서의 자질 또한 뛰어났다. 반면에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수 차례의 선위 소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시험하고 과시할 정도로 자존감 강한 권위적인 왕이었다. 어머니의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치열한 시간들이 그를 그렇게 담금질했을 것이다.

그런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아들이기 이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될 후계자이자 잠재적인 경쟁자였다. 자신이 닦아놓은 길을 똑바로 걸어가기만 해도 되는데,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시간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만 곁눈질을 하는 사도가 후계자로서 성에 차지도 않았을 것이고, 경쟁자로서 용납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선의 대표적 개혁군주로 평가받고 있는 사도의 아들 정조. 하지만 재임기간 내내 사도세자의 추숭 문제에 매달리고 유학군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는 ‘정학이 바로 서면 서학은 곧 사라질 것이다.’ 라며 마침 퍼지기 시작한 천주교에 대한 탄압에 힘을 쏟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비극과 트라우마가 없었다면 좀 더 개혁적인 그리고 좀 더 진보적인 그런 조선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는 요즘의 사극답지 않게 역사적 사실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따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다는 어느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서사 덕분이겠지만, 묵묵히 무게감 있게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을 담아낸 이준익 감독의 힘이기도 하다. 결말의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대한 실망감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아들의 죽음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영특하고 자존감 강한 영조이기에 충분히 합리적인 설명이기도 하다.

심지어 아역과 개조차 연기를 잘한다는 누군가의 지적처럼 송강호와 유아인 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의 연기 역시 훌륭했다. 송강호와 유아인, 소지섭의 유전학적인 불일치만 아니라면 충분히 몰입 가능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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