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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억하고 후회해야 할 인혁당 사건인혁당 사건 재심을 촉구하며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5.07.25 00:00

베트남에서 국민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탄타오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에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기억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돌이켜 후회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잘못을 기억하지 않고 그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인간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참전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기억을 왜곡하고 잘못을 미화하는 후소사 일본역사교과서가 천박하다고 분노할 자격을 우리는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박정희 유신정권에서 가장 뼈아픈 반성을 촉구하는 기억을 꼽으라면 이른바 인혁당 사건이다. 1971년 부정선거로 겨우 당선한 박정희는 영구집권하기 위해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해 대통령 선거 없는 헌법을 만들었다.

이에 1973년 2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은 야당을 더욱 지원함으로써 유신에 대해 불만을 분출하였다. 1974년 야당과 지식인들이 유신헌법을 개정하려는 '개헌서명운동'을 벌이자 30만 명이 서명하였다. 그러자 박정희는 개헌 논의를 금지시키고 비상군법회의에서 위반자를 처벌하는 초법적인 '긴급조치'를 발동했다.

더불어 유신 반대투쟁의 예봉을 꺾기 위해 "북한의 지령에 따라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려는 반국가단체"를 조작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당시 투쟁을 주도하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을 배후조종한 대규모 지하조직이 있다고 중앙정보부가 덮어씌운 것이 인혁당 사건이다.

1974년 4월 가장 양심적인 대구·경북지역 지식인 23명은 중앙정보부가 있었던 남산에 끌려가 망나니들에게 끔찍한 공포를 겪고 나서 재판을 받았다. 모진 뭇매로 터진 창자를 움켜쥐고 재판장에게 혹독한 고문을 하소연한 이도 있다.

또한 그들은 왜 그 자리에 서게 됐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절규하며 법정진술 했다. 가족의 면회권을 박탈하고, 공개재판의 원칙을 무시하고, 변론행위를 한 변호사마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한 재판에서 무려 8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공판조서를 허위작성한 군사법원 재판부의 뜻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대법원은 피고인의 상고를 이유 없다고 기각하고 사형을 확정했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판결이 확정된지 20시간만에 8명을 형장의 이슬로 보냈다.

1975년 4월 9일 이 날을 스위스에 본부가 있는 국제법학자협회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했다. 일제시대 악질경찰이 저질렀던 노골적인 교살을 해방 30년 뒤에도 유령처럼 되살리니 유신정권은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언이 조작 당하고 시체유기와 장례방해를 받은 유족들은 '간첩의 아내',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미친 사냥개 같은 망나니들에게 위협과 모욕을 당하면서 유족들이 벌인 진실을 향한 투쟁은 거대한 바람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 신성한 촛불 같았다.

마침내 사건 30년만인 지난 해 국가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인혁당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이었다"고 공식 발표하자 가장 극우세력인 조선일보마저 '사법살인'이었다고 동조 논평을 냈다.

이제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것이고 사법살인이라는 진실은 매우 상식적이고 소박하다. 그러나 진실은 정의의 뒷받침이 없으면 불구가 된다. 인혁당 열사와 유족들은 법이 강요한 피눈물나는 희생을 겪었다. "언젠간 모든 일이 밝혀질 것이다" 는 열사의 유언을, 유족의 희생 위에 성장한 민청학련 세대를 비롯한 후배 민주화 세대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중 많은 이들이 지금 권력의 정점에 있다. 이제는 바로 당신들이 신성한 횃불을 밝힐 차례이다. 그것은 법원으로 하여금 인혁당 사건을 재심하게 하여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정의의 절차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유신정권은 자신의 가혹한 조치를 '한국식 민주주의'라 정당화했는데, 법원도 인혁당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확정판결'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재심을 비켜서는 안 된다.

지금의 법원은 과거의 폭압적 권력 앞에서 어쩔 수 없었음을 고백하고, 잘못한 재판을 이성과 진실 앞에 무릎을 꿇린다면 정의로운 사람들은 법의 존엄성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살아 남은 우리는 재심을 통해 역사를 바르게 기억하고 돌이켜 후회 할 것이다.

송필경(대구 범어연세치과)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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