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절망 속 고개 든 ‘저력의 울산건치’
상태바
IMF 절망 속 고개 든 ‘저력의 울산건치’
  • 윤은미 기자
  • 승인 2015.10.12 1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집 건치 울산지부 기획 ①] 단결력과 실천력으로 뭉친 울산건치를 돌아본다

 

6월항쟁의 뜻을 이어 1989년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창립된지 10여 년만인 1998년, 척박한 울산의 치과의료계에도 한가닥 희망줄을 만들 울산지부(이하 울산건치)가 드디어 일어섰다.

IMF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당시, 금융위기로 18%까지 치솟던 고금리 현상 등 경제적 공황상태의 여파는 산업화 도시였던 울산 역시 피해가지 않았다. 당시 30대 전후였던 울산건치 회원 다수 역시 개원에 대한 부담을 이고 살아가던 어려운 그시절, 당초 5명의 회원들이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이 김대영 선생님 치과에서 토론하고 공부하며 무거운 역할에 대한 고민을 키워갔다.

그 첫 번째 결실로 울산건치는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이하 수불사업)을 추진했고, 당시 각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의 전폭적인 지지는 물론, 울산시 보건당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얻어내면서 전국 최대 규모의 수불사업 진행을 이끌어 내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수불사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논의와 열정만으로도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일어난 울산건치의 태동기는 지금까지도 지역사회에서 수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근간이 돼 왔다.

태연재활원 무료진료사업, 어울림복지재단 창립, 동구보건소 무료진료사업, 남구보건소 장애인진료사업, 이주노동자 무료진료사업, 공부방 무료진료사업(틔움과키움), 그리고 울산지역 시민사회단체와의 협력사업 등이 바로 울산건치가 희망과 열정만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다.

본지는 치과계를 넘어 울산지역 전체의 소외계층과 고민을 함께 해 온 울산건치의 지난 17년 행적을 돌아보고, 지역사회에서 울산건치가 이끌고 있는 역할과 기대, 그리고 향후 10년의 비전을 들어보기 위해 세 번째 지부기획으로 울산건치를 조명한다.

편집자

“울산지부를 보면 놀라면서도 고마운 것이,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고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중앙운영위를 갈 때면 예상치도 못한 회원들이 울산을 대표해 회의에 참여하곤 했습니다. 그 끈끈한 유대감과 참여가 오늘의 울산지부를 이끌어온 원동력이 아닌가 합니다. 선배들이 솔선해서 모범을 보이고 후배들은 또 다른 도약을 보여주며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보기 좋은 그림입니다”

- 건치 부산경남지부 드림 -

 

건치 ‘정체성 찾기’ 고민 속 탄생

암울한 전두환 정권 시절에 지식인으로서는 최초로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선언하며 지식인 선언의 첫 장을 열면서 울산건치의 전신인 부경건치의 행보가 시작됐다. 이 선언이 기폭제가 돼 전국 치과의사들이 잇따라 동참하면서 만들어진 ‘건치’.

그러나 사회 각계의 노력으로 민주화가 차근히 이뤄져 가면서 학생운동, 노동운동, 정치운동 등으로 세력을 확장해 온 건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이미 시작됐고, 그 고민의 일환으로 ‘치과의사’라는 전문직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으면서 건치가 고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생명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울산건치의 탄생 배경 역시 이런 문제의식이 팽배해있던 1998년 당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당시 울산건치는 이런 정책 목표를 위한 첫 사업으로 수불사업을 추진해 성공을 거뒀으며,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울산 지역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회원 모집에 나섰다. 당시 울산지역 치과의사 약 15%에 달하는 인원이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울산건치는 든든한 첫 걸음을 내었다.

“울산건치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활동의 현장이었다”

- 울산건치 안재현 전 회장 -

 지역사회 그늘마다 ‘건치’가 있었다

이후 울산건치는 태연재활원 진료팀을 꾸리면서부터 실질적인 조직화를 시작했다. 1999년에는 동구 보건소 영세민 및 장애인 진료를 시작하면서 관내 노인, 영세민, 소년소녀가장 등을 대상으로 매주 일요일 진료를 실시해, 2006년 관할 보건소에 치과의사가 배치될 때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2000년에는 남구보건소 장애인 진료를 시작했는데, 이 또한 울산시치과의사회의 주최로 진행됐으나 실상은 울산건치가 주축을 맡았다.

2006년에는 장애아동 50여명이 생활하는 메아리학교에서 진료소를 시작했다. 10회 이상에 걸쳐 진료가 끝날 수 있다는 말에 대부분의 회원이 불가능을 짐작하기도 했지만, 역시 반대하는 회원은 없었고 사업이 시작됐다. 이러한 소진료 사업 역시 울산건치에서 시작돼 지역치과의사의 참여로 지속되는 성과를 낳았다.

2007년 봄에는 1218이주노동자지원센터와의 협력사업으로 이주노동자진료센터가 시작됐다. 울산건치 회원 20여명이 동참한 이주노동자진료센터에는 관내 대학 치위생과의 인력 지원을 받으며 지속돼왔으며, 울산건치는 이주노동자들이 차별 없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목소리를 보태왔다.

“노동운동밖에 존재하지 않은 척박한 울산 땅에서 건치 선생님들은 보건의료, 사회복지, 환경 등 여러 문제에 대해 몸과 마음으로, 그리고 든든한 재정 지원으로 바쁘게 살아오셨습니다”

-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김현주 전 회장 -

 

지역사회와 건치의 연결고리 ‘1인2운동’

울산건치는 이처럼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저소득층 등 지역 소외계층에 대한 치과진료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와중에도 회원들은 사회민주화에 대한 지원과 연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울산시민연대의 전신 중 하나였던 참여자치연대의 창립 역시 건치 멤버와 시민활동가가 주축이 돼 만들었으며, 이는 울산 시민운동의 줄기를 만드는 시작이기도 했다.

또 소외받는 장애인들과의 연대를 위해 건치의 일부 멤버들이 어울림 재단을 만들면서 건치의 사회적 참여는 그 폭을 더해 갔고, 울산경실련과 환경운동연합에 각 회원들이 참여해 튼튼한 버팀목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울산건치는 대외사업부를 통해 지역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건강연대와 함께 울산지역의 공공병원 설립을 촉구하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등의 상시 농성을 지원하는가 하면, 쌍용차 해고노동자 사태, 강정마을, 용산참사 대책위원회 등의 사회 현안에 있어 전국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울산지역에서 진행됐던 각종 연대사업에 지역보건의료단체의 일원으로 울산건치의 이름이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울산시민연대 김태근 전 공동사무처장 -

지역 치과계의 ‘킹메이커’ 울산건치

울산건치의 이러한 활동 역량은 지역치과의사회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며 인정을 받고 있다. 이를 통해 각종 진료소 활동에 있어 지역치과의사회와 적극적인 공조를 이뤄내기도 하고, 아동주치의제 사업인 틔움과키움, 현재 답보상태에 있는 수불사업의 추진 등에 중지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울산시치과의사회의 직선제 실시 이후, 박태근‧남상범 회원이 전현직 울산지부 회장을 맡으며 울산건치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다.

이제 울산건치는 의료영리화, 협회장 선거제도, 전문의제도 등 치과계의 굵직한 현안에 대해서도, 가치와 명분을 제시하며 곧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저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 태동한 울산건치가 가치 실현과 행보가 기대되는 건치지부로 떠오르고 있다.

“같은 직업 동료를 내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세련된 계획 없이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나의 처지보다 그들의 처지를 듣고 나서 소통해야 하는 것…(중략) 힘든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치를 결성하고 모범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울산건치 회원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양지와 그늘이 되는 건치를 위해 세련된 각오를 함께 다져봅시다”

- 건치 송필경 전 공동대표 -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