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논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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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논란 유감
  • 김형성
  • 승인 2015.10.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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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김형성 논설위원

정부는 12일 일방적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했다. 최근까지는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교과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던 것을 2017년부터는 국정 교과서 하나로 통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행태를 보아서 그들에게 ‘올바른 국정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실릴지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누가’ 국정교과서를 만드는가가 아니라 왜 다시 ‘국정’ 교과서를 만들려는 것인가이어야 한다.

70, 8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 역사 교과서는 당연히 국정교과서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당시 대학입시 역사 문제는 연대기와 이름, 사건을 나열하는 암기 경진대회였지 역사관 따위는 무관한 시험이었다. 굳이 역사관을 물을 필요도 없이 이미 ‘국민교육헌장’과 애국가를 4절까지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외우는 학생들에게 민족중흥의 역사가 무엇인가를 되물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재수까지 하느라 두 번이나 교과서를 달달 외우면서도 근현대사 부분은 밑줄 하나 없이 깨끗했다. 절대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역사교과서가 국정교과서는 아니었다. 그것은 유신의 산물이었다. 국가기록원에 의하면 “1974년 제3차 교육과정의 배경에는 <국민교육헌장> 반포와 유신헌법 제정이라는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전까지는 중등과정 역사관련 모든 과목은 검정교과서였다.

74년 중고등 국사, 세계사가 국정으로 묶인 이후 다시 역사관련 전 과목이 검정으로 풀리는 2007년까지 우리 역사교과서는 ‘국정’이라는 ‘죽은 역사책’의 그늘아래 있어야 했다. 국정교과서가 죽은 책인 것은 당연하다. 단 한 줄의 역사기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에서 해석하는 의미를 부여받지 않는 것이 없다.

또한, 당연히 거기에는 현재적 의미의 해석과 토론의 공간이 열리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역사를 딛고 인류가 진보의 걸음을 내딛어온 방식이다. 국정교과서란 단지 ‘말도 안 되는 역사적 기록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이 못마땅하거나 걱정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하나뿐인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진보이든 보수이든 그 자체로 역사에 대한 몰이해이며 파렴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답답한 것은 차라리 이번 기회가 국정-검정 교과서 논쟁, 근현대 역사관에 대한 대립의 문제, 남과 북의 역사기록의 문제를 토론하는 장이 되기는커녕 빨갱이-종북-좌빨로 이어진 색깔론의 교과서 버전 그 이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맘대로 해고와 전 국민의 영원한 비정규직화를 선언한 노동개악의 한 복판에 국정교과서 논란이라는 폭탄 하나를 던져 놓고 유유히 외유를 가버리는 대통령의 뒷통수를 바라보며 우리 언론과 민주주의는 그렇게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와 자본의 선전대 역할로 전락한 언론과 함께 후퇴하는 민주주의 아래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생략된 자리에 관료들의 궤변만 남는다. 2007년 검정제를 도입한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 사회의 변화, 학문의 발전’을 기대한다고 했었지만, 지난 12일에는 ‘집필진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인사로 구성되지 못해 검정제의 큰 취지인 다양성을 살리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다양성을 살리지 못해 통합 국정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말인가? 차라리 ‘교학사 교과서’ 파동으로 극우 교과서가 설자리가 좁아졌음을 토로했다면 솔직하게 관료적 입장에서 극우교과서의 생존보장 논쟁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았겠나.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40년 역사퇴행을 시도하는 박근혜 정부의 상징적인 행태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친일과 독재미화를 정당화하려는 극우들의 역사탈취 욕망이 아니라 다시 국정과 국민통합으로 분열된 국론을 ‘올바로’ 세우겠다는 주장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뤄야할 다양성에 대해 명예훼손을 저지른 일이다.

우리는 저들이 ‘국정 교과서’를 망치는 것에 분노하지 말고 국민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일에 분노할 일이다. 국민통합이라는 이름아래 일자리를 나누라는 90%의 당신과 나는 저들이 말하는 국민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리트머스 종이는 바로 교과서가 아니라 ‘쉬운 해고, 전 국민의 비정규직화’ 노동개악이기 때문이다. 

 

 

김형성(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사업국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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