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증오와 불신을 넘어서는 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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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증오와 불신을 넘어서는 광복
  • 한동헌
  • 승인 2005.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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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의 원료인 우뭇가사리. 아가인상재는 가장 오래된 탄성인상재이다
광복 60주년이라고 여러 행사가 열렸다. 광복 60주년은 2차대전 종전 60주년이기도 해 지구 한편에선 승전 기념식이 열리고 다른 한 편에선 광복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전쟁이란 우리 인간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인데 2차대전은 우리가 쓰는 치과용 재료와 장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바로 알지네이트와 파노라마 방사선장비의 등장이 그것이다.

알지네이트가 개발되기 전, 인상재로 쓰이던 아가의 원료는 우무에서 만든 한천이다. 한천인상재는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탄성인상재다. 아가의 주성분은 물론 한천이지만,양적으로는 15%에 지나지 않으며 80%이상은 수분이 차지하고 있다.

바다에서 우뭇가사리를 고아 만든 우무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생산되던 해산물이었다.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예전에 여름철의 바닷가나 재래시장에 가면 행상들이 콩가루를 탄 얼음물에 우무를 넣은 '콩국'을 넣은 동이를 이고 거리를 누비면서 "콩국 사이소!"라고 외치는 모습은 부산 같은 해안지방의 여름철 풍속도였다.

일본에서는 이미 1,300여년 전 우무로 한천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고 2차대전 전까지 아가의 원료인 한천은 일본의 주요한 생산품이었다. 그러나 2차대전이 터지고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은 일본과 전쟁을 벌이면서 아가를 대체할 새로운 인상재료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석고가 주성분인 알지네이트였다. 현재 널리 사용하는 알지네이트는 2차대전의 부산물(?)인 것이다.

한편 2차대전 당시 비행기와 잠수함에 탑승하는 군인은 급격한 기압의 변화에 따른 치통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따라서 공군과 해군은 치통으로 인한 작전 수행의 차질을 없애기 위해 다수 군인의 구강검진을 신속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해 현재 보는 것과 비슷한 파노라마 방사선 촬영장비가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전쟁이 이러한 발명품만의 전시장일 수는 없는 것. 전쟁은 그동안 준비, 개발한 신무기의 전시장이었다. 지난 걸프전이 그랬고 2차대전 역시 돌격소총, 항공모함, 탱크전 등의 새로운 무기와 전략이 등장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원자폭탄의 등장과 투하를 2차대전의 가장 놀랍고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히로시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로 2차대전은 종결되었지만 그에 따른 인명 피해는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원자 폭탄의 투하로 히로시마에서는 34만 3000명의 인구 중 약 7만 명이 사망, 13만 명이 부상, 완전히 연소·파괴된 가옥 6만 2000호, 반소 또는 반파가옥 1만 호, 이재민 10만 명을 냈고, 나가사키에서는 사망 2만 명, 부상 5만 명, 완전연소 또는 파괴가옥 2만 호, 반소 또는 반파가옥 2만 5000호, 이재민 10만 명을 냈다. 또한 생존자들 가운데 방사능에 노출된 수 십 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빠르면 몇 주일만에 또는 몇 달 만에 그리고 길게는 여러 해에 걸쳐 고통속에 죽어갔다.

한편에서 광복 60주년, 승전 60주년 기념식이 개최되고 있는 동안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두 곳에서는 원폭 투하 60주년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기념식에 모인 사람들은 그 당시 원폭 투하로 숨져간 수만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세계의 핵보유국가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원폭 투하의 비극이 일본만의 것은 아니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약 42만명이 피폭을 당했으며, 이 가운데 약 16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가사키에서도 약 27만명이 피폭을 당했고, 이 가운데 약 7만4천명이 피폭사했다. 이들 원폭 피해자들 가운데는 히로시마에서 약 5만명(피폭사 3만명), 나가사키에서 약 2만명(피폭사 약 1만명)의 재일 한국인이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일본의 피억압 민족이라는 점과 원폭 피해라는 두 가지 짐을 짊어졌던 것이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 더구나 전쟁 당사자 내부의 가장 억압받는 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테러라는 이름으로 선진제국의 무차별 대중이 희생되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무고한 인민이 선진제국 군대의 폭탄과 총알에 죽어 나가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8월14일, 815축전 북측 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방문, 현충탑을 참배한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에는 이번 참배를 계기로 남북간의 대결구도를 허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뒤이었을 것이다. 증오와 불신의 벽을 넘어서는 세계의 광복이 되기를 기원한다.

한동헌(서울치대병원 구강악악면방사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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