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치의학 120년] 알렌, 조선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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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치의학 120년] 알렌, 조선에 오다
  • 이주연
  • 승인 2005.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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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보인다』②

▲ 우리나라에 입국한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 알렌
개항(1876-)은 조선이 중국 중심의 중세적 질서에서 벗어나 근대 자본주의적 세계질서 속에 편입되는 시발점이었다.

일본을 위시한 서양 제국들의 식민지 시장개척에 맞서 조선 정부도 근대적 개혁을 서둘러야 할 처지가 됐고, 고종은 교서(1882.8.)를 통해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을 표명했다. '동도서기론'은 조선왕조의 봉건적 통치체제나 이념은 고수하되, 농·공·상·의료 등 실용적인 분야에서는 서구의 근대문물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 중 서양의학 수용은 경제적 생산력 향상이라는 부국의 과제 뿐 아니라 부상병 치료를 통해 강병을 성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둘러야 했으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미국인 선교의사 알렌(Horace N.Allen, 1858-1932)이 제물포항에 도착(1884.9.14)했다.

그 동안 구강질환의 치료를 한의학적 처방에 의존하던 조선인들이 처음으로 틀니를 보게되는 장면도 알렌에게서 시작된다.

당나귀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알렌과 동행한 외국인 선장이 주막에서 틀니를 빼어들자, 구경하던 조선인들이 기겁을 하며 도망갔다(1884.9.15).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던 조선인들에게 틀니의 출현은 이빨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아프지 않고 빠르게 이를 빼는 기술을 지닌 알렌 앞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알렌이 서울에 도착해 미국 공사관 부속의사로 일한 지 두 달이 좀 못돼 갑신정변(1884.12.4)이 일어났다.

우정국 개설 축하만찬이 열리던 자리에서 민비의 조카 민영익이 개화파에 의해 전신에 자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 것이다.

▲ 민영익
알렌은 열 네 명의 한의사 앞에서 민영익의 자상을 27군데나 명주실로 꿰맸다. 머리, 얼굴, 목, 팔, 다리로 이어지는 상처를 소독해 붕대로 감싸고 약과 블랜디를 마시게 했다. 이러한 외과적 시술은 성공을 거둬 민영익은 3개월 후에 완쾌되었다.

이 사건은 고종을 비롯한 조선의 지배층에게 서양의학의 효용성을 입증시키고, 조선의 서양의학 수용을 현실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알렌은 조선 정부에 서양식 병원 건설 안을 제출했다(1885.1.22).

조선 정부에서 병원건물과 경상비를 지급하면, 자신과 다른 의사가 무료로 근무하겠고 조선 젊은이들에게 서양의 의학과 보건학을 가르치겠다고 하였다. 조선 정부가 이를 수용하여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곧 제중원으로 개칭됨)이 개원하게 된 것이다(1885.4.10).

제중원 1차년도 보고서(1885.4-1886.4, 알렌, 헤론)에는 구강질환 처치에 관한 통계가 기록되어 있다.

충치 60례, 구내염 55례, 치통 15례, 구개종양 1례, 하마종 1례, 하악골 괴사치료 6례, 구개열 1례, 순열 30례, 구강폐색 3례, 볼농양 3례, 치아농양 5례, 입술궤양 2례, 발치15례이다.

이 시기 다른 선교의사인 스크랜톤(Willian Benton Scranton), 헤론(John W. Heron), 로제타 홀(Rosetta Hall)도 발치와 언청이 수술 등의 구강외과 치료를 한 기록이 남아있다.

제중원의 환자치료가 만족할만하게 진행되자 알렌과 헤론은 제중원 부설 의학당 개설(1886.3)을 추진했다. 1901년 제중원 의료활동보고서에는 의학당 학생들이 274개의 치아를 발치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것은 비록 의사들에 의한 것이었지만 조선에 서구식 근대 치의학 교육이 시작된 효시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개항 후 최초의 서구식 구강진료와 교육은 서양인 선교의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외과학의 일부가 아닌 치의학 고유 영역에 대한 전문적인 처치가 도입된 것은 일본을 통해 치과의사들이 내조하면서(1893) 부터이다.

이주연(서울 세브란스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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