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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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존경
  • 송필경
  • 승인 2015.11.24 10:5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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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송필경 논설위원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지난 22일 새벽에 88세 나이로 서거하셨다. 우리 현대 정치인 가운데 이 분처럼 경력이 화려하고 정치 유산의 공과(功過)가 뚜렷한 분은 없을게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저항 불가능하게 보였던 강력한 통치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1980년대 전두환 군부 체제에 그처럼 저돌적으로 맞선 정치인은 없었다.

25세에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고, 9선 의원으로 역대 최다선을 기록했다. 야당 요직과 총재를 수행했고 1993년 66세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의 약 45년간의 정치 경력은 남한 정치사를 압축한 상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라이벌 의식으로 겨룬 열정적 정치 행보는 박정희 정권에 강력한 도전이 되었다. 1970년대 유신 정권은 야당을 모질게 탄압했지만, 김영삼은 거침없이 맞섰다. 1979년 YH 사건 때 어린 여공의 노동 투쟁을 감싸자 유신 정권은 그를 의원 제명 시켰다.

이에 그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폭력 저항이었던 부마사태가 일어났고, 김재규 정보부장은 이를 민심의 반란으로 보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 10.26 사건의 가장 짧은 도화선은 김영삼의 저항이었고 난공불락 같았던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다.

1980년 민주화 열망을 짓밟은 전두환 군부 정권은 김대중을 구속해 사형선고를 내리고 김영삼을 가택연금 했다. 김영삼은 그답게 목숨을 건 23일간 단식 투쟁을 하여 국내외 여론을 크게 환기시켰다. 이를 계기로 옛 민주인사를 결집시켜 전두환 체제에 과감히 투쟁했다. 김영삼의 이런 저력은 전두환 군부 정권을 끝낸 1987년 6월 항쟁의 큰 원동력이었다.

여기까지 정치인 김영삼의 공(功)은 여야를 막론하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1987년 대선에서 ‘양김 분열’로 지역감정을 부추긴 것은 김대중과 똑같이 나누어야 할 역사적 죄과(罪過)였다.

그리고 3당 합당, 문민정부 탄생, 금융실명제 시행, 하나회 척결, 전두환·노태우 구속, IMF 국가부도 초래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처지에 따라 ‘공과 과’를 극단적으로 해석할 것이다.

존중(尊重)과 존경(尊敬)은 엇비슷하지만 내 나름대로 해석하면 존중은 과거나 현재의 어떤 행위를 받드는 것이고, 존경은 존중한 일을 지속한 사람을 받드는 감정이라 본다.

예를 들어 1905년 을사늑약 때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의 행위는 존중하더라도, 일본 강점 이후 친일행위한 장지연을 존경할 수는 없다. 우리 역사에서 존중과 존경이 일치하는 분을 꼽으라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시다.

우리 정치사에서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리라. 어쨌든 내가 매우 존중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연세범어치과 원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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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존경 2015-11-24 12:00:29
평생 귀감이 되시는 송필경선배님을 존경합니다

김철신 2015-11-25 16:16:45
제 생각에도 송선생님께 적당한 표현은 존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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