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위생사의 미래, 이것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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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의 미래, 이것부터 시작하자
  • 정원균
  • 승인 2016.01.1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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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정원균 논설위원

지난 2015년은 이 땅에서 치과위생사 교육의 역사가 시작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에 한국 치위생계는 반세기의 자취를 돌아보며 그 성과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치위생학 교육에 늦깎이로 입문한 필자로서도 한국의 치위생계가 헤쳐 온 역경의 세월을 헤아리면 가슴 찡한 감회가 적지 않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라고 하듯이, 한 시대를 갈무리하는 일은 다가올 내일을 예비하는 새 출발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치위생계는 그간의 역사를 딛고 미래의 100년으로 나아갈 출발선에 서 있다. 치과위생사의 미래, 그 첫걸음은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필자의 소견으로 그 행보는 ‘치과위생사의 직업적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현실의 업무를 법제화하는 일에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비단 치과위생사 직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치계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공동의 목표이기도 하다.

필자는 치위생계에서 십수 년째 녹을 먹고 있는 탓으로 선후배 개원 치과의사로부터 치과위생사에 대한 원망을 듣는 일이 있다. 치과위생사 구하기가 왜 이리 어려우냐는 푸념을 들으면 필자를 나무라는 듯 같아 민망하기 그지없다.

한국의 치위생계는 1965년 이래 50년간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특히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치위생학 교육기관이 급증하여 올해를 기준으로 전국 82개교에서 치과위생사를 양성하고 있고, 그 연간 입학정원이 무려 5천 명을 상회한다.

이 추세로 가면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치과위생사는 10만 명에 육박한다. 매년 배출되는 치과위생사의 수는 전체 보건의료인 중에서 간호사, 의사, 약사 다음으로 많으며, 8개 의료기사 직종에서는 압도적으로 가장 많다. 이러다 보니 치과위생사의 배출이 수요를 초과했다는 연구가 나오고, 무분별한 치위생(학)과 증설로 교육의 질이 낙후되었다는 볼 맨 소리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치과위생사가 다 어디에 있기에 치과위생사 구인이 하늘의 별따기란 말인가. 이는 치과위생사의 직업 수명이 짧은 것이 현상적인 원인으로 보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치과위생사의 업무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아 평생 직업에 이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법령에서 규정한 치과위생사의 업무 범위를 잘 아는 치과의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치과위생사는 의료기사로 구분되어「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시행령」에서 그 업무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이 시행령이 일부 개정된 2011년 11월 16일 이전까지 수십 년 동안은 치과위생사의 업무를 ‘구강질환의 예방과 위생에 관한 업무’와 ‘진단용 구내방사선사진 촬영 업무’로만 규정하고 있을 뿐, 놀랍게도 업무 비중이 가장 높은 ‘치과진료 보조’에 대한 법적 근거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2011년에 치과위생사의 업무에 관련하여 개정된 이 내용마저 유예기간과 계도기간 등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2015년 3월 이후에나 시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행령조차 치과위생사의 치과진료 보조에 관련하여 특정하고 있는 업무가 5개 항목(임시충전, 임시 부착물 장착, 부착물 제거, 치아 본뜨기, 교정용 호선의 장착·제거)에 불과하여 근본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치과의료 현장에서 치과위생사가 수행 중인 많은 임상적 역할에 비해 터무니없이 왜소할 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발행한 ‘치과위생사 직무기술서’에 비추어도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지금도 ‘치과진료 보조’로 명시한 업무는 어느 법 조항에도 언급된 바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직종 가운데 치과진료 보조를 전담하는 직역은 원칙적으로 없는 셈이다. 현행법에서 ‘진료보조’를 직역의 업무로 규정한 직종은 오직 간호사뿐이어서 ‘치과진료 보조’는 ‘진료보조’의 하위개념으로 보고 있다.

이에 현행 의료법에 간호사는 치과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를 할 수 있고(의료법 제2조), 간호조무사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하여 치과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의 보조를 수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의료법 제80조의2).

치과의료의 문외한이 ‘진료보조’라는 명분으로 수행할 수 있는 ‘치과진료 보조’를, 대학에서 수년간 전공학문을 수학하여 국가면허를 취득한 치과위생사는 제한적으로밖에 할 수 없다니... 이것이 치과위생사와 관련된 우리나라 법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치과의료 현장에서 치과진료 보조 업무와 관련하여 치과위생사의 존재감과 자존감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작년 10월에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감정노동의 강도가 높은 직업 가운데 치과위생사가 상위 14위로, 보건의료계 직종 중 가장 높다. 치과위생사가 겪는 감정노동의 근저에는 이런 불합리한 업무의 제한으로 인한 갈등이 숨어 있는 것이다.

현행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은 그 입법 취지 때문에 치과위생사의 업무 범위를 제대로 규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따라서 치과위생사 직역은 간호사의 경우처럼 의료법의 테두리에서 그 업무를 현실화해야 할 수도 있다. 법리 해석은 전문가의 몫이지만 치과진료 보조 업무의 주체가 치과위생사라는 사실은 차라리 상식일 것이다.

이는 미국처럼 치과조무사라는 직역이 법과 제도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앞서 언급한 현행 법률의 불합리가 치과위생사의 치과의원 구직을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우, ‘치과위생사법’(법률 제83호, 2014년 6월 25일 개정)에서 치과위생사의 업무 범위를 ‘치과예방처치, 치과진료 보조, 치과보건지도’의 세 가지로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치과위생사 구인란은 치과위생사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이며, 이는 치위생(학)과의 양적 증설로 더는 해결할 수 없다. 치과위생사의 미래뿐 아니라 치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치과진료 보조’에 관련된 부적절한 법 조항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창립과 초창기 활동에 참여한 바 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건강한 치과진료실의 환경을 만드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지면을 빌려 바라건대, 치과의사의 운명적 파트너인 치과위생사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평생 직업으로 노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건치가 내야 할 건강한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연세대학교 치위생학과,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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