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어롱 달을 바라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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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어롱 달을 바라보노라'
  • 송학선
  • 승인 2016.01.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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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밝 송학선의 한시산책 8] 옥계원玉階怨 섬돌 한탄 / 이백李白(당唐701~762)
ⓒ 송학선

‘아롱어롱 달을 바라보노라’

오언당음五言唐音에서 성당盛唐으로 넘어가 이백의 시를 풀다가 궁궐의 여인이 임금의 총애를 바라고 대궐 안 섬돌에 우두커니 서서 밤 깊은 줄 모르는 채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이슬이 내려 비단 버선을 적신다는 ‘옥계원玉階怨’이란 시를 만났습니다.

옥계원玉階怨 섬돌 한탄 / 이백李白(당唐701~762)

옥계생백로玉階生白露 옥 계단에 흰 이슬 생겨나

야구침나말夜久侵羅襪 밤은 오래라 비단 버선 적셔온다

각하수정렴却下水晶簾 물러나 수정 발 내리고

령롱망추월玲瓏望秋月 아롱어롱 가을 달을 바라보노라

궁인宮人이 망행望幸하야 저립옥계佇立玉階하야 불각야심이백로생의不覺夜深而白露生矣라 생자유의生字有意라 인나말지로침이지시야구因羅襪之露侵而知是夜久하야 우시옥계于是玉階에 불능저립의不能佇立矣라 각편입실이겁한기지침인고却便入室而㥘寒氣之侵人故로 파렴방하把簾放下하고 지욕취수只欲就睡라가 각우불인편수却又不忍便睡하야 의착렴아倚着簾兒하고 종렴극중從簾隙中하야 망영롱지월칙망행지정望玲瓏之月則望幸之情이 유부절야猶不絶也라 수불언원이자자시원雖不言怨而字字是怨이라

궁궐의 여인이 임금의 총애를 바래서 대궐 안 섬돌에 우두커니 서서 밤 깊은 줄 모르는데 흰 이슬이 생겼다 하니 ‘生’ 자가 의미가 있음이라. 비단 버선에 이슬이 스며들어 밤이 오랜 줄 알아 섬돌에 우두커니 서 있을 수 없어 물러나 방에 들었으나 찬 기운이 사람에게 스민 게 겁이 난 까닭으로 발을 잡아 늘어뜨리고 다만 잠을 이루려고 하다가 편히 잠자는 것을 물리치고 참지 못하여 발에 기대어 발 사이를 좇아 영롱한 달을 바라보니 총애를 바라는 정이 오히려 끊이지 않음이라. 비록 원망을 말하지 않으나 글자 글자마다 곧 원망이라.

옥계玉階 ; 대궐 안 섬돌

궁인宮人 ; 나인

행幸 ; 총야寵也, 임금의 은혜.

저립佇立 ; 우두커니 섬

여기에서 영롱玲瓏은 원래 아롱아롱한 옥 소리일 텐데요, 빛이 구슬처럼 맑고 아름답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눈에 눈물 고인 채 달을 바라보는 것이라 풀었습니다.

김소월金素月의 ‘원앙침鴛鴦枕’도 읽어 보겠습니다.

바드득 이를 갈고

죽어 볼까요

창窓 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눈물은 새우잠의

팔굽 베개요

봄 꿩은 잠이 없어

밤에 와 운다.

두동달이 베개는

어디 갔는고

언제는 둘이 자던 베개 머리에

‘죽자 사자’ 언약도 하여 보았지

봄 메의 멧기슭에

우는 접동도

내 사랑 내 사랑

좋이 울것다.

두동달이 베개는

어디 갔는고

창窓 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역시 아롱아롱 비치는 달은 눈에 눈물이 고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영훈 작사 작곡에 이문세가 부른 옛사랑이란 노래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흰 눈이 내리면 들판을 서성이다 /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 가고 /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

바람이 솟구쳐 눈이 하늘로 올라 갈 수도 있지요. 그러나 저는 역시 행간에 눈물이 감추어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삼키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겁니다.

몇 년 전이 되었습니다만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며 즐겁게 세상사 요점정리 하는 ‘어른의 학교’에서 과인過人 이윤기李潤基 선생은 유랑극단 춤꾼 소녀의 비애를 그린 ‘북채로 얻어맞고 하늘을 보니 나처럼 울고 있는 듯한 낮달…’, 이렇게 넘어가는 한국계 엔카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듣다가는 아내를 안고 그만 펑펑 울어버렸다는 이야기를 가끔 했습니다. 역시 눈물을 삼키기 위해 하늘을 보니 마침 낮달이 어룽어룽 나처럼 울고 있다 생각 했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소리 내어 펑펑 우는 것 보다 울음을 삼키는 모습이 더 가슴을 짠하게 흔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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