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World Social Forum 2004’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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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기] ‘World Social Forum 2004’를 다녀와서
  • 강민홍 기자
  • 승인 2004.0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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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World is Possible!?


나마스테 뭄바이!
이름만 들어도 성스런 기운이 느껴질 듯한 신비의 땅, 1천 7백만 인구가 밀집된 가장 서구화된 상공업 도시 인도 뭄바이! 자본주의적 세계화를 반대하는 전세계 진보적 사회운동가들의 풍부한 식견과 인도의 신비스런 문화를 접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뭄바이로 향하는 길은 온통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설레임은 비행기가 착륙한 순간 “내가 이 곳에 왜 왔는갚를 되묻는 채찍질로 되돌아온다.

우리의 여름을 방불케 하는 후덥지근한 날씨, 곳곳에 널부러진 쓰레기 더미와 지독한 악취, 사방에서 달려드는 모기떼와 까악까악 울어대며 하늘을 맴도는 까마귀떼. 건기라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먼지로 가득한 탁한 공기.

호텔에서 행사장으로 가는 길엔 찢어진 비닐로 엮은 누더기 천막들과 우리나라 7, 80년대 무허가 주택을 연상케 하는 판자촌이 즐비하다. 판자촌 곳곳에 널부러진 쓰레기 조각더미 위에는 무수한 개와 까마귀가 뒤덮어 먹이를 찾고 있고, 바로 그 옆에 한 여자아이가 옷을 벗고 앉아 방뇨를 하고 있다. 때론 쓰레기 더미 옆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가족들을 보곤 한다.

그나마 누더기 천막조차 없어 길거리에 나앉아 아무데서나 자고 있는 노숙자 가족들이 눈에 밟힌다. 그들은 뭄바이 어느 곳을 가나 끈질지게 달라붙어 구걸을 해댄다.
며칠 후 안 사실이지만, 위에 열거한 비참한 장면들이 인도의 전부는 아니다. 풍부한 천연자원, 핵무기를 보유한 군사강국, IT 강국으로 불릴만큼 발달된 산업기술을 가진 ‘강대국’ 인도에는 호화스런 주택에서 생활하는 부유층이 있고, 전반적인 삶의 질 또한 우리와 비슷하다.

하자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만들어놓은 질서에 카스트 제도 등 인도 특유의 착취구조까지 더해져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도인들이 현 인류사회가 이룩해놓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빈곤과 기아, 질병, 계급·여성 착취에 묶여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인도만의 고통이랴? 오로지 ‘이윤 창출’을 위해 전세계를 누비며 모든 것을 파괴해가는 다국적 자본과 제국주의, 그들이 만들어가는 자본주의적 세계화 앞에 전세계 어떤 민중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게다. 그 세계화 앞에 우리의 삶은 비참함을 뛰어넘어 점차 ‘짐승만도 못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질 게다.

며칠을 아니 몇 달을 목욕을 안했는지 온통 땟 국물로 뒤덮인 한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인사한다.
“나마스테!”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단상
책상 위엔 어린 아이의 ‘오줌’이 담긴 유리컵이 놓여있다. 그 컵을 가르키며 연자는 말한다.
“전세계 인구의 50% 이상이 이 만큼 믿을 수 있는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이하 WSF) 둘째날인 17일 오전 ‘재판에 선 물’이란 주제로 열린 컨퍼런스에서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다. 전세계 50% 이상의 인구가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에 흠짓 놀랐다.

그나마 한편으론 ‘우리나라에선 물 걱정을 할 정도가 아니기에 다행이다’라 생각하다, 서울시가 정수장 민간인 위탁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나 다시 소스라쳤다. 이 추세로 간다면 우리도 물이 이윤 창출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고, 나중엔 돈 없으면 물조차 제대로 마실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겠구나.

이미 Capitalism적 세계화는 우리 삶의 대부분을 파괴했다. 막대한 이윤을 챙겨간 거대 곡물 회사 카킬의 횡포로 전 세계 무수한 농민이 몰락했고, 환경을 무시한 이윤 제일주의 탓에 지구 포유동물 1/4 이상이 멸종 위협을 받고 있으며, 대기권의 이산화탄소는 기록적 수준에 달해있다. 그 뿐인가? AIDS 같은 질병에 걸려도 Trips 협정으로 제3세계 무수한 사람들이 의약품을 구하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얼마전 글리벡을 먹게 해달라는 우리나라 백혈병 환자들의 울부짖음을 통해 보아오지 않았던가?

식량, 의약품에 이어 성(Sex), 물, 공기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닥치는 대로 이윤 창출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흐름을 과연 우리는 막아낼 수 있을까, 과연 WSF 2004에서 대안이 제시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윤이 아니라 환경과 삶을 우선시하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세계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행사 기간 내내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Another World is Possible!
“세계화에 대안은 있는가?“
이 질문은 99년 12월 세계무역기구(WTO) 제3차 각료회의 결렬을 이끌어낸 ‘시애틀 투쟁’의 성과로 2001년 1월 결성된 WSF에게 주어진 난제이다. 때문에 이번 WSF에도 ▲세계사회포럼과 미래 ▲정당과 사회운동 ▲세계화와 대안들 ▲세계화와 전쟁 ▲적의 심장에서 반전운동하기 ▲아시아의 반지구적 제국주의 운동 등 이 숙제를 풀기 위한 다양한 주제들이 컨퍼런스로 마련됐다. 18일 열린 ‘운동의 미래 : 얼마만큼 급진적이어야 하나?’ 워크샵에서 대안을 둘러싼 3가지 다른 해법과 논쟁을 들으며, 그 작업은 아직도 ‘진행형’임을 알게 됐다.

아쉬웠던 건, 그들의 주장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이중 삼중으로 핍박받는 제3세계 민중들의 현실을 제대로 꿰뚫지 못한 채 자신들이 처한 상황 즉, 서구 유럽 중심의 사고에 맞게 펼쳐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사실 그들이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제국주의를 뛰어넘은 제국화’라는 개념들은 생소를 뛰어넘어 우리 현실에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함께 갔던 박한종 선생(박한종 치과)이 “WSF를 아시아인 인도에서 개최하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살짝 귀뜸해 준다. 그들이 보지 못한 소위 못사는 나라들의 민중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를 그들이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들의 주관적 관념을 뛰어넘은 전세계적 차원의 아래로부터의 세계화가 가능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 WSF에서 분명 성과는 있었다. 그것은 “Another World is Possible”이 단지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안의 주체는 민중

이번 WSF 2004에서 인상깊게 느꼈던 또 하나의 사실은 ‘춤과 가무를 즐기는 건 우리 민족만의 특성이 아니구나’ 하는 점이었다.
무수한 아시아 나라 참가단들은 모두 자기 나라의 특유한 복장과 악기를 들고 츰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WSF를 전세계 민중의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흥이 났다. 가끔은 챙피함을 무릅쓰고 그들과 함께 춤을 췄다.

악기나 가락, 복장, 생김새…모든 게 다르지만, 어떠한 억압과 고통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는, 언제나 행복을 꿈꾸며 노동하며 다 함께 그 행복을 나누려는 마음은 세계 어느 곳 어느 때나 다르지 않으리라.

그들의 웃음과 희망이 있기에,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진정 전세계 민중이 주인 되는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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