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분쟁조정, ‘피해자 우선’이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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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분쟁조정, ‘피해자 우선’이 원칙”
  • 이상미 기자
  • 승인 2016.03.0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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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세넷·의료소비자연대 공동성명 발표…”제도 확대 운영이 본질 아니다” 지적

“의료사고 분쟁조정 제도가 의료사고를 ‘분쟁’으로 보고 ‘과실’ 여부 판정이 아닌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실리적 접근법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의료사고 피해자의 권리구제가 목적이라면 입증책임 전환과 같은 본질적 제도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현재 국회 법제사위원회 심의절차를 앞둔 의료분쟁조정 개정법안을 두고, 건강세상네트워크(이하 건세넷)와 의료소비자연대가 공동성명을 발표해 본질적 제도개선 촉구에 나섰다. 

개정 예정인 해당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사망 혹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상해에 해당하는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신청인의 동의여부와 무관하게 조정절차를 자동 개시할 수 있다. 현 법안으로는 피신청인의 동의를 얻어야 조정중재가 가능한데, 이 때문에 의료사고의 조정개시율이 42%에 불과하다는 것. 

이에 건세넷과 의료소비자연대는 “개정법안이 피해자의 권리구제보다 제도 운영의 외형적 확장을 염두에 뒀는지 살펴야 한다”며 조정개시율만으로 법안 개정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통계연보를 근거로 “2013년 기준 합의 또는 조정된 사건 중 74.3%가 500만원 이하로 결정됐다”며 “조정성립이 되더라도 해당 금액이 하향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소액 중심 조정이 중재원의 지배적 경향인데 이러한 패턴이 사망 및 중상해에서만 예외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들 단체는 “피해자 조정신청 금액의 67.4%가 501만원 이상의 보상액을 신청했다”며 “조정신청금액과 결정금액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이들 단체는 “개정안대로 자동개시를 강제하거나 사망, 중상해 사건을 조정에 묶어둔다면, 피해유형이 중대함에도 손실을 과소하게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며 “사망 및 중상해에 조정절차를 강제할 경우, 이를 의료기관이 의료과실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해 피해자의 소송기회과 선택권을 원천 차단하는 역효과가 생긴다”고 비판했다.   

끝으로 이들 단체는 “소송 제기 등 피해자의 선택권이 제한되지 않는 제도운영이 원칙이어야 하며, 자동개시와 관련해 의료사고 유형별 접근이 아닌 신청자의 자격 조건을 제한하고 의료사고 피해자를 그 대상으로 규정할 것”을 촉구했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공동성명]

의료사고 분쟁조정 자동개시, 신청자 자격 제한이 먼저다!

의료분쟁조정 개정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절차를 남겨둔 상태다. 의료사고가 사망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상해에 해당하는 경우 피신청인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조정절차를 강제하는 것이 개정법안의 핵심인데 법안 개정안의 제안이유를 살펴보면 현행법은 피신청인의 동의를 전제로 조정중재가 개시되는 방식이라 이것이 제도 운영의 효율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정중재 신청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나 조정개시율이 평균 43%에 불과하다는 것이 근거가 되고 있다.

조정개시율을 제도운영의 성과 지표로 판단하겠다는 것인데 이 같은 제도개선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동개시 절차가 온전히 의료사고 피해자의 ‘권리 구제’ 차원에서 제기된 대안인지 아니면 제도운영의 외형적 확장에만 천착하는 조직운영생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판단해 볼 여지가 있다. 조정중재 개시를 위한 문턱을 낮추겠다면 그에 상응할 만큼 조정중재 결과도 실효성을 담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조정중재 결과를 놓고 본다면 조정개시율 제고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료사고 조정 성립 금액은 여전히 소액 중심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통계연보를 확인해보면 2013년 기준 합의 또는 조정된 사건 중 74.3%가 500만원 이하로 전년 수준 69.4%에 비해 약 5%에 증가하였고 조정성립액 500만원 이하 중 101~300만원으로 합의된 건수는 30.5%에 이르고 있다. 조정성립이 되더라도 조정성립 금액의 하향화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조정신청 금액은 501만원 이상이 67.4%로 피해자들이 신청금액을 다소 과도하게 제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조정신청금액과 결정금액간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소액위주의 조정결과는 의료기관에도 불리하지 않아 의료기관이 직접 채무부존재 확인 등을 이유로 조정 신청한 사건은 2012년 5건에서 2013년 25건으로 증가하였으며, 이 중 환자의 조정참여 동의를 구해 개시된 사건은 2012년 4건에서 2013년 19건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개정안대로 자동개시를 강제하고 사망이나 중상해 사건을 조정에 묶어둔다면 상대적으로 피행 유형이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손실을 과소하게 조정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소액중심의 조정이 중재원의 지배적인 경향인데 이러한 패턴 속에서 사망 및 중상해는 예외라고 볼 여지가 있겠는지 의문이다. 현재 조정중재 신청자의 자격 제한이 없어 의료기관도 조정중재 신청이 가능한 구조에서 사망 및 중상해에 자동개시를 강제할 경우 오히려 의료기관이 의료과실로 인한 위험부담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조정중재절차를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의료사고 피해자의 소송 기회와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역효과가 발생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사고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자동개시 절차를 도입하겠다는 취지라면 사망 및 중상해와 같은 일부 유형을 제한하는 방식 보다는 신청자의 자격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조정 및 중재절차와 관련해 타 법령인 소비자기본법이나 언론중재법과 동등하게 신청자를 의료사고 피해자나 소비자로 규정하고, 자동개시 절차도 이러한 신청인에 한해서 시행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의료사고 분쟁조정 제도는 의료사고를 ‘분쟁’으로 규정하고 ‘과실’ 여부 판정이 아닌 ‘화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상당히 실리적 측면의 접근방법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상 의료사고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한다면 입증책임전환과 같은 본질적인 제도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승소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현실은 방치 한 채 절충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분쟁조정제도의 특성상 권리구제 방식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분쟁조정제도의 외형적 성과만을 중시하고 분쟁조정제도의 이점을 지나치게 홍보·과장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소송 제기 등 피해자의 선택권이 제한되지 않는 범위에서의 제도운영이 원칙이 되어야 하며, 자동개시와 관련해서는 의료사고 유형별 접근이 아닌 신청자의 자격 조건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되 그 대상은 의료사고 피해자로 규정할 것을 거듭 제안한다.

 

2016년 3월 2일

건강세상네트워크·의료소비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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