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평양]① 달라진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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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평양]① 달라진 북한
  • 이인문 기자
  • 승인 2005.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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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나다?

지난 3일 마침내 국내 최초로 제1회 남북 치의학 학술대회가 평양 소재 조선적십자종합병원내 구강전문병원 8층 강당에서 열렸다. 30여명의 방북단 일원으로 기자 1명을 파견한 건치신문사에서는 또 다른 반쪽의 조국인 북(평양)의 모습과 구강진료 현황 등을 기획시리즈 형태로 연재하기로 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란다.(편집자 주)

평양 거리가 달라졌다

지난 2003년 11월18일부터 22일까지 건치 제6차 방북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다녀온 뒤 거의 2년 여 만에 다시 방북해 보게 된 평양 거리의 모습은 매우 달라져 있었다.

그때와는 달리 인천공항에서 직항로를 이용해 들어간 까닭에 중국 북경을 통해 들어갔던 지난번의 경험과는 직접적으로 비료해 볼 수가 없지만, 서해를 따라 북상을 하다 평양의 관문인 진남포항 상공을 통해 들어가면서 내려다 본 북녘의 산에는 ‘거의 민둥산이리라’던 생각과는 달리 꽤 많은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내 착각일까?’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순안공항에서 내려 평양으로 들어가는 차창으로 비치는 주변 산들에는 역시 지난번과는 달리 새롭게 어린 나무들을 식수한 모습이 드물지 않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확실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눈에 익은 거리를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그들 역시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그때보다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꽤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11월 중순과 10월초라는 계절적인 차이와 아리랑공연과 당 창건 60주년 기념일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2년 전에 비해 거의 10배(?)나 가까이 늘어난 거리의 사람들과 자동차들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동원된 사람들이라기엔, 그럴 만한 정황이 짐작되기도 하건만 2년 만에 이렇게나 많이 늘어난 평양 길거리의 사람들과 자동차들을 다 설명하기가 어려울 듯만 같아 보였다. 그것은 그렇게나 많이 늘어난 길거리의 사람들 ‘입성’이 2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운동화에서 구두로

2년 전 평양 거리에서 보았던, 아니 순안공항에서 평양을 들어가던 길이나, 평양근교의 동명성왕릉과 멀리는 묘향산에 있는 보현사를 관광하던 길에 볼 수 있었던 북녘 사람들의 ‘입성’은 말 그대로 초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계절적 차이 때문인지 그들의 ‘입성’은 그전과는 비교해 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져 있었다. 물론 남과 직접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아직 멀어 보이기는 했지만, 2년 전에는 3박 4일 동안 머문 평양에서 단 두 명만 보았던 양장한 여인들의 모습이 꽤 많이 눈에 띄었고, 입고 있는 옷 색깔도 짙은 갈색이나 검정색 일변도에서 상당히 칼라풀한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

▲ 평양 단고기집 앞에서 만난 북의 여인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의 ‘달라짐’을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신고 있던 ‘신발’의 변화에서였다. 2년 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7-80% 이상이 70년대 남에서 여중고생들이 신고 다니던 류의 파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나머지 2-30%는 단화(특히 여성층에서)를 신고 있었고, 간혹 가물에 콩 나듯 구두를 신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방북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완전히 ‘역전’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단화를 뛰어 넘어 구두를 신고 있었고, 단화는커녕 아주 인상 깊었던 그 파란색 운동화는 거의 눈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드물게 볼 수 있었다. 아이들조차 파란색 운동화류에서 벗어난 듯이 보일 정도로...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나다?

평양 시내 건물들 역시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2년 전에만 해도 페인트칠을 전혀 하지 못해 거친 콘크리트 건물의 외벽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2-30층의 거대한 아파트 건물들이 무슨 영화에서 나오는 우중충한 ‘회색의 도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평양 시내의 8-90% 이상의 건물이 새로 페인트칠을 하는 등 새로운 모양을 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미 20-30여 년 전에 지은 듯 보이는 평양 시내 건물들이 획기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기에는 매우 어려워 보이기도 하지만, 2년여 전 당시 평양역 앞에 있는 두 건물에만 분홍색 페인트칠을 하고 있던 모습과 비교해 본다면 이는 매우 큰 변화로 보인다.

더욱이 당시에는 공사 중인 타워 크레인을 그 큰 평양 시내에서 신축 중인 구강병예방원 건물 1곳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번 방북에서는 평양 시내 곳곳에서 약 10여기 이상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전과는 달리 평양의 전기 사정도 조금은 나아진 듯, 해만 지고 나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잠겨들던 평양 시내가 이번에는 좀 더 많은 불들을 켜고 있었다.

▲ 개선문 앞 건물의 2년 전 모습(위)과 현재의 모습
“많이 좋아졌네요?” 개선문 앞에서 확실히 2년 전과는 달리 무척 깨끗한 외양을 하고 있는 건물을 바라보면서 북의 참사에게 물어보았을 때 “미국 놈들만 없다면...”이라는 예의 그 답변이 앵무새처럼 되돌아오기는 했지만, 내 귀에는 그 말이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도 쓸데없는 국방비에 돈 들이지 않고, 좀 더 인민들의 생활 향상에 쓸 수가 있을텐테...”하는 소리로 들렸다.

아직은 멀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매우 험난하겠지만, 이제 북한은 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94년 북핵위기 국면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경제봉쇄’ 정책으로 야기된 ‘고난’의 시대를 일정 정도 극복하기 시작한 듯이 보였다.

북한 내부의 반발 없이 앞으로 꾸준히 개혁과 개방정책을 수행해 나간다면, 그리고 남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도움과 지속적인 교류가 계속된다면 이제 이러한 북의 달라진 모습은 앞으로 더욱 획기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지도 모른다.

▲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평양근교 야산과 마을 정경

▲ 평양역 광장 앞

▲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본 평양시내 야경
▲ 방북단이 묵은 양각도 국제호텔(47층)
▲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내려다본 평양시내 전경
▲ 조선적십자종합병원내 구강전문병원(8층)에서 내려다본 평양 시내 거리 안쪽 모습
▲ 2년전과 달리 평양시내 곳곳에서 공사중인 타워트레인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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