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인간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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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인간동물원
  • 이주연
  • 승인 2004.0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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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물병자리 출간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인 저자는 인간을 ‘털없는 원숭이’로 규정지은 바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2만년전의 원시인과 별 다를 바 없는 상태에서 도시문명을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첨단유행과 익명화된 군중의 활기가 넘쳐날수록 도시생활은 지위경쟁에서 좌절한 개인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떠안기고 있다.

털없는 원숭이인 인간은 현대의 비생물학적인 환경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한 것이다. 경제궁핍시의 동반자살, 운동부족과 스트레스로 인한 비만과 위장병, 신경증 등은 자연서식지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이 아니라 우리에 갇힌 동물들의 행동양식과 흡사하다. 따라서 저자는 현대 도시인들이 살고 있는 상황을 우리에 갇힌 동물들의 행동양식과 비교함으로써 인간동물원에 대한 이해와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인간동물원의 병리현상 중 첫 번째는 ‘공격성의 방향전환’이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자신과 가족, 부족을 지킬 임무를 지녀왔다. 국가 단위의 초부족 집단이 형성되자, 유사(擬似)부족으로 친구, 종교적, 직업적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해왔다. 지위경쟁에서 좌절당한 개인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가족, 연인, 친구 단위의 위로와 협조이다.

그러나 도시 경쟁사회 속에서 이러한 인간관계는 위협받게 마련이다. 대다수의 군중들은 유행가, 연속극, 포르노, 폭력물 같은 하위문화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러나 일부분은 만만한 희생양을 찾아서 억눌린 분노를 터뜨린다. 위궤양, 자살, 아동학대, 성폭력 등이 그것이다. 한편 국가간의 경쟁이나 계층간의 분쟁은 전쟁으로 치닫기도 한다. 

인간동물원의 두 번째 병리현상은 ‘잘못된 각인’이다.
생후나 사춘기같이 심리적, 성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노출된 대상을 자신의 부모나 연인, 성적대상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춘기 소년이 옆집에 널린 빨래를 보면서 사정을 하고, 애완견을 자식보다 끔찍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누구나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으므로 따스한 동정을 보내자고 제안한다.

인간동물원의 세 번째 병리현상은 섹스의 문제이다. 고도화된 문명을 학습하기 위한 자녀양육기간이 길어진 현대사회에서 생식이나 짝짓기, 짝을 유지하기 위한 섹스는 여타의 것들과 충돌한다. 새로운 감수성과 모험을 갈구하는 섹스 못지 않게 지위와 돈으로 거래되는 수많은 섹스상품들은 상대방의 질투와 버려지는 아픔, 가족파탄, 가학적 성행위, 남녀불평 등의 요령부득의 부작용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결론은 인간동물원으로부터의 탈출일까? 그렇지 않다. 저자는 도시사냥꾼의 주류쪽 입장이다. 공정한 경쟁을 조직화해서 폭력 대신 토론문화를 정착시키고, 상거래나 스포츠 같은 건강한 자극들을 양성한다. 개인의 독창적인 탐험에 우선권을 주면서 말이다.

과연 털없는 원숭이들에게 그러한 진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인간동물원에 사는 모두가 구체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같다.

이주연(세브란스 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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