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엔도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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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엔도의 분노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5.10.28 00: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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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에 능욕 당하는 원칙

타성에 젖은 진료를 오랫동안 하다보니 환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만사를 제치고 공부 한번 하기로 했다. 요즘 열풍이 부는 임플란트에 빠져볼까 했지만, 치과에서 가장 많이 접하고 기본인 엔도에 관심을 돌렸다.

엔도를 전공한 십 수년 후배의 병원을 찾아가 진료 모습을 옵져베이션하고 웬만한 강연회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대구에서 서울을 오르내리데 KTX라는 효율성 좋은 운송 수단의 덕을 단단히 보았다.

그러다 보니 엔도의 중요성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는데, 재료와 기구 그리고 진료 테크닉의 혁신을 실감했고 무엇보다 학문의 진보가 못난 충치를 어떻게든 살리려는 엔도 학자들의 헌신적 노력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한편으로 강연회 때마다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을 감지하였는데 그것은 "자연치를 살리자"라는 엔도 학자들의 구호에 감추어진 분노였다.

우리사회에 널리 퍼진 신자유주의는 치과에도 정글의 법칙을 강요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은 진료실을 대형화 고급화하는 과도한 투자를 불렀고, 따라서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보험진료를 기피하는 추세를 낳았다. 더욱이 중산층이 붕괴한 불황으로 개원의의 어깨가 더 무거워 지니, 임플란트 시술이야말로 이런 짐들을 들어주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연치를 삭제하는 크라운 브릿지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덴처를 대체하는 임플란트는 현대 치의학의 총아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효율적인 시술임은 틀림없다. 게다가 임플란트가 지니는 높은 부가가치 때문에 너도나도 임플란트 시술에 뛰어 들게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애써 엔도하기보다는 임플란트를 위해 웬만한 발치는 찬미되고 있다. 다시 말해 발치는 마지막 선택이 아니라 우선 고려하는 술식이 된 것이다.

사람이란 경제적 이익에 만족하면 돈 안 되는 헌신을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법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보험 수가에 얽매인 엔도보다 돈 되는 임플란트를 선택하는 것을 마냥 나무랄 수는 없다. 임플란트를 대중화할수록 자연치를 되도록 살리려는 엔도의 원칙이 외면당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적 모순이 엔도 학자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리라.

'자연 치아를 살리자'라는 엔도 학자들의 매우 단순해 보이는 구호는 발치를 쉽게 생각하는 임플란트 만능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을 촉구하는 외침이 아닐까? 자연치를 근사한 숙녀로 애지중지하는 엔도 학자들은 고민없는 발치를 바라보면서 사랑스러운 그 여성이 마냥 능욕 당하는데, 그저 팔짱만 끼고 서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심정처럼 처절함을 느끼는 것이다.

'효율성'이라는 경제 논리가 우리 사회에서 최우선 가치가 되면서 그 '효율성'이라는 미명 앞에 원칙이 능욕 당하기 일쑤였다. 원칙에 대한 존중과 헌신이 없는 사회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기대가 컸던 참여정부가 민주화의 숙원인 4대 개혁입법(국보법폐지, 과거사진상 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에 대해서는 머뭇거리면서도 '대연정'이라는 효율성에만 매달린 것은 원칙을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폐습을 원칙적으로 치유하기보다 기업의 CEO처럼 '대연정'을 통해 정치의 효율성만 높이려는 대통령에 실망을 느낀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은 여론 지지가 곤두박질치는 것을 우리 사회의 보수를 탓하기 전에 원칙을 지키지 않은 스스로의 탓에 돌려야 한다. 탄핵사건 후 하늘 찌를 듯 기세등등하던 열린우리당이 밑바닥까지 추락한 까닭은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 알 정도로 자명하다.

강연 중 "제발 러브댐을 꼭 쓰고 진료를 했으면"하고 어느 교수가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쉬듯 내뱉는 처절한 독백은 치과의사로서 기본 원칙을 지켜달라는 지친 호소였다.

임플란트가 획기적 시술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임플란트 역시 자연치를 존중하는 원칙을 져버린다면 원칙을 등한시하여 쇠락해 버린 열린우리당과 같은 처지에 놓일 것이다. 원칙만이 아름답고 오로지 원칙에만 향기가 베어 있는 것을 러브댐을 걸고 진료해 보고서야 새삼 깨달았다. 임플란트와 정치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송필경(논설위원. 대구범어연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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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2005-10-29 09:43:26
송필경 님 의견에 절대로 동감입니다.
건치가 이런 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서길 바랍니다.

치과의사2 2005-10-31 12:19:00
좋은 시론..잘 읽었습니다...
원칙에서 멀리 떨어질 수록 우리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 불편함은 정체성의 위기로 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게끔 강요합니다.
한강에서 뛰어내리 직전, 초심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원칙을 다시한번 상기할 수 있다면.. 이미 부도덕한 이 체제
(신자유주의라 해도 좋고..)를 극복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칙에 굴복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현실성 없는 사람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두명이나 대통령이 되지 않았습니까.
지난 8년 동안...아마도 우리사회는 원칙에 충실한 자가 소위 성공하는
시대가 된것 같기도 합니다. 많은 돈을 벌기 원한다면 원칙에 충실해야
하는 시대, 블루오션에서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지금이 아닐까요?
드라마 대장금이 한자문화권을 휩쓸고 있는 것도 그만큼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닐까요...드라마 내용에서나 형식에 있어서나...

치과의사3 2005-10-31 13:41:47
엔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연치아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방이 중요한데, 이것에 대해서 현행 보험제도나 치과대학 교육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스케일링, 치면세균만관리을 비롯한 치주병예방치료나 불소도포, 실런트도 보험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기검진만 제대로 되어도, 국민의 구강건강은 훨씬 향상 될 것입니다.
학교 교육에서도 지속적인 구강건강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합니다.
엔도학자만이 아닌, 전 치계가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치과의사XXX 2005-11-13 18:59:21
좋은 말씀이긴 한데.. 발치하고 임플하면 능욕범이라니 애들볼까 무섭습니다.
님의 말씀대로라면 이제까지 치주 - 외과 - 보철 기타 임플 관련 모든 파트 - 물론 엔도도 포함되겠지요. - 결국 치과의 발전을 위해 고생해 오신 모든 분들은 돈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신을 능욕해가며 몸도 팔고 명예도 팔고 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어쩌면 그렇게 단순명쾌하게 수많은 동료들을 < 능욕 > 할 수 있는지 정말 어안이 벙벙합니다.
여기 뒤져 보니 막강한 글솜씨로 중무장하고 자신의 신념을 강변하고 계시던데 그시간에 님이 말씀하신 < 타성에 젖은 진료> 받느라고 고생했을 환자분들 좀 더 잘해 드릴 고민은 한번이라도 해 보셨는지요. 이제 엔도 공부 조금 하시고 나니까 다른 파트 동료들이 모조리 파렴치범으로 보이시는지요.
< 엔도대신 발치가 찬미되고 있다 > 니 도대체 어느나라에서 오신 겁니까. 건치 하시는 분들은 그렇게도 하는가 보지요. 오늘도 안되는 엔도때문에 스트레스 받아하고 있을 수많은 동료들이 정말 불쌍합니다. 정말 엔도가 졸도할 일이군요.
< 사랑스러운 여성이 능욕당한다 > 고도 하셨는데, 도대체 발치하면서 여성을 능욕하는 상황을 생각해 내신 님의 무지막지한 상상력에 경의를 표해야되는건지 황당할 따름입니다. 이제 발치하는 치과의사는 자신이 능욕범 내지는 돈귀신 , 파렴치범 아닌지 두번세번 생각해보지 않다가는 님같은 분들에게 < 강간범 >으로 몰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가지 더, < 러브댐> 이라는건 님의 상상력답게 어디 여성 능욕해대는 저질에로영화에 쓰는 물건인지요. 치과에서 그런 물건도 쓰는지요. 도무지 치과대학은 나오신겁니까.

이런 황당한 신문이 왜 꼬박꼬박 배달되어 오는지 정말 기가 막힙니다. 다른신문 그렇게도 욕해대는 분들이 자기들 보내는건 모조리 금덩어리인줄 알고 있는건지 뭔지.
정말 치과 그만두던지 해야지 나중에는 < 능욕범 >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뭐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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