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기따라, 기질따라, 인연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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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기따라, 기질따라, 인연따라”
  • 김광수
  • 승인 2016.06.0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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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의 중국기행⑥] 녕파, 천동사, 아육왕사

중국은 5천년이라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깊은 사상적 유산을 간직한 나라다. 그중 후대 사람들에게 큰 선물로 불릴 것이 있으니,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다. 종파 간 견해차로 대립하면서 큰 다툼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 다양한 사상이 꽃피기도 했다. 김광수 원장은 이번 여행기에서 중국 불교 사상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녕파(닝뽀)는 또한 남해 보타락가산에 가는 길로도 중요하다. 관음보살 최대 성지인 보타락가산을 가기 위해서는 대개 녕파에서 배를 타고 주산이라는 섬으로 가서, 거기서 보타산으로 가게 된다. 태허스님은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기 전에 보타락가산에서 4년 동안을 ‘폐관’했다.

폐관이란 문을 닫아걸고, 아무도 안 만나고 아무 말도 안하고, 그저 참선만 하는 것이다. 태허스님이 강소성 전장(鎭江)의 금산사(金山寺)에서 불교협진회(佛敎協進會)를 설립하다가 반대파들에게 칼에 맞고 나서, 스스로 수행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4년 동안 철저수행을 한 곳이 보타락가산이다. 여기는 다 보려면 며칠이 걸리니까 다음 기회에 가보기로 했다.

천동사와 아육왕사는 중국 선종 불교의 양대 산맥인 조동종의 본거지이다. 조동종은 당나라 때 조산본적과 동산양개가 개창한 종파이지만, 후에 송대에 와서는 임제스님이 만든 임제종과 조동종만 살아남았다.

저 유명한 임제종의 대혜 종고가 간화선(화두(話頭)의 방식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파)을 주창하면서 묵조선(묵묵히 앉은 곳에서 스스로 깨달음이 나타난다는 선풍)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종파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스님들은 조동종을 마치 무슨 몹쓸 짓을 하는 곳처럼 말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종파성이 그렇듯이 다른 종파, 그것도 가장 가까운 종파를 비난하는 것이 천박하고 불령스러운 저질 종파에서 나타나는 일이지만,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간화선을 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간화선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간화선을 한답시고(간화선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조동종을 몹쓸 종파로 몰아치는 모습은 정말 꼴사납다. 실제로 조동종이 그렇게 묵조사선(일부 선사들이 묵조선을 매도하는 말)도 아니고, 간화선만이 그렇게 옳은 길도 아니다. 간화선도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의 하나이고, 그것은 근기 따라, 기질 따라 인연 따라 갈 일이다.

내가 위에서 ‘불령스러운 저질 종파’라는 말을 썼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개신교이다. 개신교 이외의 종교를 모두 틀렸다, 사악하다고 몰아치는 것은 결코 종교인이 할 짓이 아니다.

세계사의 불행이 다 그렇게 해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우리 불교에서도 ”기돌교“라면 무조건 나쁜 놈들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역력한데, 그건 잘못이다. 아마도 피해의식 때문에 그러하겠지만, 피해를 받더라도 당당하게 용서해 주는 것이 종교인으로서의 자세이다.

현재 선가 5종 중에서 세계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임제종과 조동종이다. 일본에서는 조동종이 더욱 강력하다. 그 조동종이 서구에 불교를 전파했다. 서구에서는 오히려 조동종이 더 우세하다. 조동종이 그렇게 노력하는 동안에 과연 임제종은 그렇게 노력했던가? 그런 성과를 보였던가? 대한민국 불교가 그토록 찬양하는 임제종이 조동종보다 더 잘한 것이 없지 않은가.

물론, 일본놈들이 전쟁을 일으킬 때에 조동종이 부화뇌동하고, 혹은 앞장서고 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일본놈들의 전쟁범죄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십자군 전쟁 때는 기독교가 그랬고, 알카에다의 이슬람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 그 자체가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를 표방한 범죄행위와 그 종교 자체는 거리가 있다.

충분히 양보하더라도 전쟁 당시의 조동종 수뇌부들이 나쁜 것이지, 조동종의 성자들이신 조산본적, 동산양개, 천동여정(天童如淨) 굉지정각(宏智正覺)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그 조동종의 본산인 천동산 밑에 있는 천동스님이 계시던 천동사를 또한 지극히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천동사
▲천동사 너머 보이는 산

일본 조동종의 시조는 도오겐(道元: 1200~1253)이다. 그의 인기는 대단해서 거의 우리로 치면 원효 수준이다. 미국이나 유럽에 선(zen)이 알려질 때에 주로 조동종 승려들이 갔기 때문에 서구의 선은 대개 조동선이다.

그리고 그들의 최고 종조로 역시 도오겐을 모신다. 서양 사람들은 zen이라고 하면 우선 도오겐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그는 유명하다. 내가 여기서 ‘그’라고 불령스럽게 칭했지만, 사실 나도 그분을 존경한다. 훌륭한 말씀을 많이 남기셨다. 우리나라에도 도오겐 스님 매니아가 많다.

좀 웃기는 얘기인데,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도오겐 스님의 저작(정법안장)을 십년 이상 오로지 그것만 강의하고, 그 어려운 일본 고문을 우리말로 번역해 내신(한글판 1,2권이 나와있다) 학자분이 계신데, 그 분이 바로 보광스님이시다.

보광스님은 조계종의 동국대 장악의 일환으로 대중의 지지 없이 총장이 되었고, 논문표절로(사실 내가 볼 때 그 정도 논문 표절을 안 하는 교수는 거의 없다) 문제가 돼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는 그분의 논문 표절이 문제가 아니라, 조계종의 부당한 동국대 장악, 총장 선출과정에서의 비민주성, 그리고 순진한 학생들이 표절 총장으로부터 절대로 졸업장을 받을 수 없다는 순진한 아우성이 그 정도라면(부학생회장이 49일 단식을 하고, 학생회장이 팔정도 불탑에서 뛰어내려 죽을 각오를 할 정도라면)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또 대학이나 불교가 싸움판이 아니고 정치판이 아니라면 (정치도 그래서는 안 되지만) 순리를 가장 중시하는 것이 불교이고 대학 아닌가. 에고 중국 얘기하다가 이 무슨 얘기... 그런데, 바로 그 도겐 스님이 중국에 “오셔서” 불교를 배워간 것이 바로 이 천동사에서 천동여정스님을 사부님으로 모시고 배워간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일본 조동종들에게 있어서 이 천동사는 너무나도 각별하다.그 바로 옆에 아육왕사가 있다는 사실을 구글 지도를 보고 알았다. 아육왕사는(여러 유명한 이야기도 많지만) 바로 태허 스님의 스승이신 경안(敬安) 스님이 아육왕사 불사리탑전에서 손가락을 태움으로써 그 발원을 맹세했던 곳이다.

경안스님의 별명이 팔지두타(八指頭陀)인데, 손가락이 여덟 개인 스님으로서, 두타행을 철저히 한 모범적인 스님이라는 뜻이렸다. 두타행이란 수행을 위해서 의식주를 최소한으로 간소화가는 것을 말한다. 즉,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먹고 입는 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물질적으로 검소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팔지(八指)니까, 아무래도 손가락을 두 개만 태우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에 원적하신 동곡당 일타스님께서 소지 공양을 하신 것이 유명하고, 그분의 상좌 제자이신 충북 석종사 혜국스님이 유명하시다. 나는 일타스님으로부터 감동적인 가르침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 분을 무척 존경한다.

경안 스님은 이 천동사에서 오랫동안 주석하시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셨고, 경안 스님의 가르침으로 태허 스님의 잔뼈가 굵은 곳도 바로 이 아육왕사 인근의 천동사이다. 태허스님은 평생 동지였던 원영 스님을 이 천동사에서 도반으로 만났던 것이다.

태허(太虛)스님은 일본이 패망하기 전에 입적하셨는데, 태허스님보다 11살 위신 원영(圓英)스님은 1949년 대륙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리된 후 초대 중국불교도협회 회장을 맡으셨다.

▲아육왕사 입구

한 여름날 정오, 하늘은 너무 맑고 높게 개어 있었으나 날씨는 너무도 더웠다. 숨이 탁탁 막혔다. 나는 여기를 찾아서 한국에서부터 왔다. 혹서기에 왕복 18만원짜리 저가항공 타고 만원버스타고 찾아왔다.

▲'아육왕사'라 적힌 현판
▲절 내부 전경

여기가 바로 팔지두타 경안 스님께서 손가락 두 개를 소지공양 하신 <아육왕사, 불사리탑>이다. 멀리서 봐서 그렇지 가까이서 보면 상당히 크다.

아육왕이라는 이름은 물론 인도의 아쇼카왕을 뜻하는 것이지만, BC 3세기에 아쇼카왕에 의해서 비로소 불교는 전 인도의 국교가 되고, 아쇼카 왕의 적극적 포교에 의해서 세계종교가 되었다. 아쇼카왕의 위대한 업적을 빼고 불교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토요일 아침, 나는 소흥 보는 것을 포기하고, 천동사와 아육왕사를 보기로 했다. 그것을 보러 온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은 일찍 소흥에서 항주를 거쳐서 남창(南昌)까지 고속철도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는 다시 구강(九江), 여산(廬山)까지 이동해야 한다. 내일의 숙소는 구강이다. 가장 이동이 많은 날이 내일이다. 날짜는 오늘 하루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소흥을 보기 보다는 아육왕사, 천동사가 있는 녕파로 가기로 했다. 그 이야기는 아무래도 지면이 넘쳐서 다음으로 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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