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팬이 쓰는 이글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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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팬이 쓰는 이글스 이야기
  • 김준용
  • 승인 2016.06.21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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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의 #마리한화①] 빙그레 이글스, 다이너마이트 타석의 추억
▲빙그레 이글스 프로야구단 창단식(사진출처: 한국스포츠사진기자회)

빙그레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바나나우유, 아이스크림, 아마도 이런 것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8’의 빙그레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저와 같은 야구 팬이라면,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대표되던 추억의 야구팀 ‘빙그레 이글스’가 가장 먼저 떠오르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화 이글스의 전신이었던 빙그레 이글스는 저에게 많은 추억이 남아있는 팀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6세 때 충북 증평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후 국민학교 3학년때 더 좋은 교육 환경을 바라시는 부모님의 배려로 청주로 이사를 했고, 학창 시절 대부분을 청주에서 보냈습니다. 그때 제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회원’

아버지께서 선물해주신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회원’. 저는 그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받았던 모자와 점퍼가 왜 그리도 좋았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선수들 소개가 담긴 책자를 페이지가 닳도록 읽고 또 읽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선수들 이름과 기록 등을 잘 기억하는 것은 그때부터 시작된 저의 습관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비록 그 이후 집안 형편상 ‘어린이 회원’은 1년밖에 가입하지 못했지만 낡은 모자와 점퍼 그리고 책자는 1년이 지난 뒤에도 항상 저와 함께했습니다. 오히려 ‘어린이 회원’에 더 이상 가입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한화이글스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정으로 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빙그레 이글스는 지금과 다르게 야구를 참 잘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확실한 팀 컬러를 가지고 승승장구했습니다. 보통 어릴 때 잘하는 팀을 응원하기 마련인데 제가 응원했던 빙그레는 잘하기까지 했으니 더 애정이 깊어졌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팀은 매번 포스트시즌만 가면 시즌 중의 강력함은 사라지기 일수였습니다. 88년에 이어 89년과 91년까지 무려 세 번씩이나 해태에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내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우승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92년에는 해태를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롯데에게까지 패하면서 단 한번도 우승은 하지 못했었죠. 준우승만 무려 4번입니다. 

빙그레 이글스는 1994년 팀 명을 모기업이었던 한화로 바꾸면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한화 이글스는 빙그레 시절보다 성적은 좋지 못했습니다. 좋은 투수와 타자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2%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포스트시즌만 가면 약한 모습을 보이던 한화가 1999년 드디어 사상 첫 우승을 합니다. 정민철, 송진우, 이상목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에 리그 최고의 마무리 구대성까지 1999년 이글스의 마운드는 참 대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 듀오였던 제이 데이비스와 댄 로마이어까지 한화의 1999년은 참 아름다운 시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뼈아픈 패배를 안겨주었던 롯데에게 완벽히 설욕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복수에 성공합니다. 그때 무심천에서 터지던 폭죽소리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한화 팬으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그 때가 아니었나 추억해봅니다. 

하지만 우승 이후의 한화 성적은 좋지 못했습니다. 2006년 괴물투수 류현진의 깜짝 등장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던 과거 빙그레시절의 강팀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2009년 처음으로 8위를 기록한 이후 7년간 무려 5번이나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응용, 김성근 감독의 영입과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 정근우, 이용규, 정우람 등 대형 FA 선수 영입 등 큰 화제를 몰고다니는 화제의 팀이 되긴 했지만 팬의 입장에선 좀 씁쓸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최근 몇 년간 한화 이글스의 팬으로 지내는건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고, 팀을 거쳐간 많은 감독들(현재 감독도 포함해서…)이 제가 너무나 아끼는 많은 선수들을 혹사시키고, 트레이드시키고 방출하는 일들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기는 경기보다 야구다운 경기를 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보다는 미래를 내다 보는 야구, 상식적인 운영으로 선수와 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팀 운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구요. 그들에게 한화 이글스는 단지 몇 년 맡고 지나가는 팀일지 모르나 저에게 있어 한화는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치 않은 마음으로 응원해왔고 앞으로 평생 더 긴 세월을 함께할 팀이자 가족 같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한화 팬의 심금을 울리는 눈물의 짤방(...)

이런 마음은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야구 팬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게 가진 공통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하필 한화 이글스여서 이런 맘고생(?)을 하고 있는지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 청주에 살지 않았더라면, 그 때 아버지께서 어린이회원 가입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제 인생이 바뀌지 않았을까요? 그 때 빙그레 이글스 팬만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대전에 살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한화 이글스를 응원할 것입니다. 어린시절 야구 점퍼를 받고 설레였던 그때 빙그레를 기억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언젠가 한화 이글스도 그때처럼 훨훨 날아오를 것이라 믿습니다. 

*처음 건치신문에 한화이글스에 관한 코너 제의를 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습니다. 프로야구도 아니고 한화 이글스에 관해서만 저의 주관이 담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남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즌 초 팀은 최악의 부진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선뜻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편집장님의 집요한(?) 부탁과 저처럼 다른 팀을 응원하시는 치과의사분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해보고자는 욕심 때문에 용기를 내어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제가 빙그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많은 분들이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야구를 사랑하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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