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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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을 아십니까
  • 김형성
  • 승인 2005.1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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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천국, 한 소설에 그려진 유토피아의 꿈

『섬 안에 시설이 한 가지씩 늘어갈 때마다 그만큼 섬 전체가 천국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지옥으로만 변해가고 있었듯이, 이번에도 이 섬은 공원이 하나 더 늘고 그곳에 바쳐진 자신들의 노력과 희생이 크면 클수록 그 노력이나 희생의 크기만큼 섬은 점점 더 낙원과는 인연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 소설 <당신들의 천국> 중에서, 이청준

소설은 소록도를 유토피아로 만들려는 남자가 섬사람들(한센인)과 겪게되는 갈등을 그린 이야기이다. 제목 그대로 당신들의 천국은 우리들의 천국과는 다른 나라였으며, 작가는 이제 두 천국을 하나로 불러도 좋을 지에 대해서는 아직 각자의 몫이라고 말해준 바 있다.

2005년도, 제주도 이야기

'제주특별자치도' 법이란 게 있다. 조금 거칠게 설명하면, "제주도는 그 풍광이 뛰어나고 관광명소로서 매우 매력적이고 투자가치가 높으니 '특별히' 법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 '규제'를 풀어주면 외국인과 부자들의 돈을 끌어들여 섬이 활기를 찾고 돈도 많이 벌게될 것"이라는요지의 법이다.

올 초부터 준비돼 온 이 법안은 제주도가 그 기본계획안을 발표하고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거쳐 지난 4일 입법예고 됐다. 그리고 올 정기국회에서 이 법안을 꼭 처리하려는 의지를 국무총리와 관계 장관들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가수 앤디가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청년실업을 중얼거리던 시트콤의 배역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경기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수도권에서 멀수록 경기침체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니 이런 법안이 '우리' 제주도 지역경제를 살리고 '우리시민'들의 가계수입을 늘려주는 호기가 될 수 있다. 이거 맞는 말 아닐까?

나의 대답은 예스이다. 단, '우리'를 뺀다면….

제주도에 돈이 들어오고 병원과 학교를 짓고 분명 누군가의 주머니는 불룩해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건 '우리들'의 주머니가 아니라 '당신들'의 주머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이것은 '우리들'의 건강과 '우리자식들'의 교육을 팔아서 얻어지는 것이다. 물론 저 '당신들'의 건강과 교육은 상관없다. 저들이 언제 '우리들'과 같은 병원에 다니고 학교를 다니려고 했는가.

얘기는 이렇다.

분권과 자치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운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계획안이란, 요약하면 교육과 의료의 완전한 시장화, 외국 자본을 위한 각종 혜택을 핵심으로 한 것이다. 딱딱한 단어들이지만 조금만 더 읽어보자.

의료의 경우, 현재는 병원은 아무리 이익을 남기더라도 이를 투들에게 배분할 수가 없고(배당금 같은), 이익은 다시 재투자돼야 하고, 병원 문을 닫게 되더라도 그 재산은 개인이 가져가지 못하고 국고에 귀속하게 돼있다. 이것은 의료는 '돈벌이 수단'이나 '상품'이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와 인식의 반영이었다.

'영리법인병원=주식회사 병원=부자들만의 천국=대다수 국민에겐 그림의 떡 + 빼앗긴 떡'

그런데 영리법인(주식회사 병원)이 되면, 기업들이 그러하듯, 우선 병원은 대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수익창출 진료에 더욱 매진하게 되고, 진료비는 더욱 높아져 돈 없으면 병원 가기는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이런 병원을 이용할 부유층의 이용편의를 위해 이 기획안에는 (친절하게도!)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증을 가진 환자는 모든 병원에서 진료해줘야 하는 것(이것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라고 한다)이 없어지고, 병원들이 수입에 도움이 안되는(병원들 스스로는 매년 적자라고 주장하는) 건강보험환자는 받지 않고 민간의료보험사 환자를 받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은 금전적 능력에 따라 보험에 가입하게 되는 방식이므로, 수익을 추구하는 병원은 이제 비싼 환자, 싼 환자를 구별해서 진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며, 돈이 없는 환자 입장에서는 건강보험증을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형편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수순을 거쳐 빈부에 따라 진료도 차별을 받게 되어버린 나라들이 바로 칠레, 멕시코 등의 중남미 국가들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바로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일맥상통하는 (시장화하고, 경쟁하면 서비스도 좋아지고 투자도 높아져서 경기도 좋아지고 한다는) 논리로 기본적인 의료보장체계가 무너져버린 실례들이라고 한다.

영리법인 병원은 제주도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밀어붙이는 것!

실은 올 초에 정부에서는 의료서비스산업화정책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추진하려고 했다가 시민단체, 노동단체 등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바 있다.

정부측에서는 이를 제주도처럼 특별자치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지역민들의 경기회복과 변화에 대한 갈증을 이용하려는 술책이 아닌가 심각하게 의심된다. 그리고 지역의 이슈가 주요언론사의 이슈로 떠오르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원하는 안을 제주도를 실험대로 삼아 점차 확대하려는 의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교육에 있어서도 영리법인의 학교설립허용도 이와 거의 같은 맥락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외국투자기업에게는 국가유공자 고령자 채용의무면제, 월차유급 생리휴가 배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제한 등 노동여건을 악화시키는 후진국형 노동조건을 제도화하려고 하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에 동의하시겠습니까

경기침체, 병원에 대한 불만, 교육에 대한 불만, 지방발전에 대한 지역민의 불만 등 지금이대로는 살기 너무 힘든 게 사실이다. 무엇이든 이를 타개하기 위한다는 것이라면 저질러놓고 보자는 심정도 이해할만큼 그렇다.

더구나 '외교와 국방 등을 제외한 고도의 특별자치'를 제주도에 부여해서 투자도 높이고 외국의 좋은 병원과 학교를 세워주겠다는 당신들의 말은 얼마나 현혹적이었던가.

그러나 당신들의 주머니 속에서 꼭꼭 숨겨둔 손익계산서와 복잡한 단어들로 만들어진 특별자치도법이라는 게, 병원문턱을 높여 지역민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빈부의 격차를 더욱 가속화시켜 사회적 갈등을 깊게 하고, 공교육 붕괴로 교육조차 빈부차별을 심화시켜 차별을 대물림하게 되는 것이라면, 우리들은 당신들의 '특별자치도'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를 저지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정부는 우리의 건강과 교육을 팔아 돈벌이 삼으려는 특별자치도 즉각 철회하시오. 노동자의 생존권을 팔아먹는 제주도 특별자치도 즉각 철회하시오 의료와 교육은 상품이 아니오. 공공의료 공교육 강화하시오."

김형성(건치 서경지부 사업국장, 일산 백상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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