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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와 되살아나는 ‘사대주의’[논설] 송필경 논설위원
송필경 | 승인 2016.07.11 17:31

조선말에 쓴 족보나 비문에는 연대 표시로 숭정(崇禎)이란 연호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숭정 230년이라 함은 1857년을 뜻했다. 조선시대는 중국 황제의 연호를 사용했는데, 황제가 바뀌면 연호도 바뀌었다. 그런데 숭정 230년이라니, 한 인간의 재위 기간이 230년이 됐을 리는 만무하다.

숭정이란 연호는 명(明)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제16대 숭정제 의종(毅宗)의 연호였으며 명의 마지막 연호로 1627~1644년 동안 17년간 사용됐다. 1644년 3월, 반란군 이자성(李自成)이 자금성을 포위하자 의종은 신하들이 다 도망간 상태에서 애첩의 목을 칼로 베고 자금성 구석에서 나무에 목메어 죽었다. 제국 명나라의 덧없는 멸망이었다.

5월에 청군(淸軍)이 이자성을 무찌르고 자금성에 입성해 청나라가 명실상부하게 중국대륙의 제국으로 군림했다. 17세기 초 명(明)이 수명을 다해가자 새로운 기운의 청(淸)이 중국 대륙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인조 정부는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멸시하다가 기어이 병자호란을 맞았다. 결국 1637년 1월의 추운 겨울날 삼전도에서 항복할 때, 인조는 청 태종에게 땅바닥에 꿇어 앉아 세 번 절하고 그 때 마다 세 번씩 이마를 꽁꽁 언 맨땅에 찧었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당연한 굴욕은 그렇다 치고, 이 땅 민중의 여인네 20만 명이 청나라로 끌려가 곤혹을 치르게 한 무능한 죄는 이후의 역사에 두고두고 누를 끼쳤다.

청나라에 항복 후 조선은 공식적으로는 청의 황제 연호를 썼지만, 고리타분한 사대부들은 족보나 비문에 청의 연호를 거부하고 명나라의 ‘숭정’이란 시체의 연호를 줄기차게 사용했기 때문에 ‘숭정 230년’ 따위가 족보나 비문에 등장했다.

인조는 외교에 균형 감각을 갖춘 광해군을 반정으로 몰아내고 옹립된 왕이었다. 숭정 연호를 사용한 예에서 보듯이, 사대주의에 찌든 조선의 왕과 사대부 관리들은 실리외교에 어둡고 당리당략에는 아주 밝았다. 이번 미국의 사드(THAAD) 배치에 적극 동의한 이 정부의 모습에서 조선시대 사대부의 어리석음이 유령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느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라는 사드는 북한 미사일 방어용이 아니라 중국 군사력의 견제용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사드의 한국 배치가 결정 나자 맨 먼저 중국이 격렬하게 반응한 이유다.

1962년, 소련이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 하자 미국이 극렬하게 반응하며 소련과 핵전쟁을 할 뻔했다. 한반도의 사드 배치는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미국이 보인 태도처럼 중국 저항이 불 보듯 뻔하다. 국제 관계는 인격 관계와 같은 성질이 아니다. 혈맹(血盟)이니 어쩌니 해도 철저히 실리 관계다. 우리는 미국과 혈맹이라 생각해도 미국은 일본이 우선이지 우리 한국을 콧방귀의 대상처럼 대하지 않았던가.

오직 명나라의 한족(漢族)에 대해 맹목적인 사대주의(事大主義)에 찌든 조선은 새로운 기운이 충만했던 만주족(滿洲族)의 청나라를 경멸한 대가로 혹독한 병자호란을 맞았다. 그럼에도 어떤 반성도 없이 조선의 사대부들은 정권만 꾸역꾸역 유지하다가 일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욕을 당한 것이다. 이 이기적인 사대부들은 매국적 친일에 앞장섰고 해방 후에도 응징을 받지 않고 여전히 떵떵거리고 있다. 그동안 민중은 봉건적 압제와 일제의 만행과 분단의 고통에 시달렸는데도 말이다.

지금 이 정부는 4백 년 전 인조와 그 일당이 벌인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 맹목적인 사대주의에 빠진 지배 보수층은 우리 경제에 미국 이상으로 영향력을 지닌 중국의 저항에 어떻게 대응할 지 실로 수수께끼다.

현재 중국은 고리타분한 보수적인 인식으로 바라봐야 할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중국을 한국전쟁 때 넝마주의 같은 인민군의 인해전술을 쓴 그 이미지, 무모했던 문화혁명적인 이미지, 싸구려 농산물이 연상 되는 이미지, 저임금의 노동시장 이미지 따위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우리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로 성장한 지 벌써 오래다. 일이십년이 지나면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최대의 경제력을 보유하리라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러한 중국이 사드 배치 결정이 나자 한국에 대해 경제 보복을 운운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3.1절이나 8.15로 광복절에 시청 광장에 모여 성조기를 흔드는 모습은 숭정 2백 몇 십 년 따위를 족보에 자랑스럽게 연대 표시하는 시대착오적인 조선 사대부의 광신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1%의 사대부들이 99%의 민중을 개‧돼지 취급한 조선시대의 악취 나는 역사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는 불안은 나만의 기우일까?

*본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연세범어치과 원장, 본지 논설위원)

 

송필경  sp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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