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인 제가 이렇게 사는 게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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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치인 제가 이렇게 사는 게 반전”
  • 이상미 기자
  • 승인 2016.07.22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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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치신문이 만난 사람] 치과의사 출신 폴댄서, 폴핏코리아 오현진 대표

본지가 ‘건치신문이 만난 사람’이란 기획으로 치과계의 이색 인물을 만났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치과의사에서 폴댄스 강사로 인생 방향을 180도 전환한 폴핏코리아 오현진 대표다.

개원의로서 10여 년간의 경력을 뒤로 하고 폴댄스 학원을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째. 오현진 대표는 ‘치과의사 출신 폴댄스 강사’라는 수식어를 넘어, 폴댄스에 대한 꾸준한 노력으로 한국 폴댄스를 지탱하는 대모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터뷰는 오현진 대표와 본지 김철신 편집국장과의 대화로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오 대표가 폴댄스를 하게 된 계기와 치과의사로써 폴댄스를 배웠던 과정에 대한 소회, 더불어 ‘폴댄서’ 이전에 ‘인간 오현진’으로써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덤으로 본지는 인터뷰와 더불어, 직접 오 대표의 코칭 하에 진행된 폴댄스 체험(체험에 참여한 기자는 잠시이긴 했지만 폴에 매달리는 데 성공했다. 정말, 아주 잠시 동안..)을 통해 폴댄스의 색다른 매력을 직접 느껴봤다.

-편집자-

 

- 예전부터 춤에 대한 관심이 많았나봐요.

“학교 다닐 때 무용을 배우기도 하고, 에어로빅 강사과정을 밟기도 했어요. 치대‧의대 연합으로 운영되는 댄스 동아리 활동도 했고요. 본과에 들어가서는 공부만 했는데, 본과 2학년 때 축제에서 댄스 공연에 참여했어요.

보통 축제 때 치대생들은 서서 노래만 부르는데, 그게 재미가 없는 거죠. 그 때 댄스 동아리 후배와 흑인 목소리 내는 언니와 함께 파격적인 무대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축제에 나간 거예요. 당시에는 매우 쇼킹한 무대였죠. 외형적으로 초대가수를 불러온 것처럼 공연을 진행했는데, 이때의 이벤트로 주변 사람들이 제게 색다른 면이 있다고 여기게 됐어요. 그때 공연으로 축제 1등 상금을 타서 영화 쉬리를 보러 갔던 게 기억에 남네요.”

- 그 공연 이후로 춤을 계속 했나요?

“축제 이후로는 조용히 공부하다가 졸업했죠. 졸업 후 동시 통역사가 되고 싶었는데, 사실 이게 원래 꿈이었어요. 그래도 치대에 들어왔으니 졸업은 해야겠고, 졸업 후 동시통역 대학원을 가려고 생각해보니 또 다시 학생이 돼 부모님께 부담을 지우게 될 것 같았어요. 결국 동시 통역사의 꿈은 접었지만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죠.

치과의사가 되고, 결혼을 한 와중에도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란 생각에 방송매체로 영어공부를 꾸준히 했거든요. 새벽 6시 알람을 맞출 때 ‘오성식 영어’로 깰 정도로요. 치과를 운영하면서 영어공부와 댄스 같은 취미생활을 항상 꾸준하게 해왔어요. 출산 때문에 쉬기도 했지만 즐기면서 지금껏 계속 해왔죠. 덕분에 항상 바쁘지만요(웃음).”

- 번역일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혹시 번역한 책은 있나요?

“번역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치과 쪽 논문을 번역해왔어요. 모든 분야의 번역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치의학 공부를 안 할 건 아니었으니까요. 번역 때문에 치과 쪽 논문을 접하면서 최신 지견을 접하고 공부를 꾸준히 하게 됐어요. 임플란트 업체 쪽 번역을 맡고 있는데, 치과 전문지식 번역이 힘들었는지 해당 일을 저에게 전부 맡기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그분들이 저를 수렁에서 건져준 사람으로 대해주기도 하고요(웃음). 급하게 밤을 새워서라도 해드리곤 하니까, 그런 데서 생기는 라포가 소중해요. 할 때는 힘든데 성취감이 크죠.”

 

치과 개원의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놓을 수 없었던 춤에 대한 호기심
'치과의사'에서 '폴댄서'로 이행하는 과정

 

- 치과의사로 일했을 때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2002년에 졸업하고 2003년부터 10여 년 간 개원의 생활을 했어요. 병원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였는데, 점심시간 마다 개인레슨으로 춤을 배웠죠. 에어로빅 자격증이나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 댄스스포츠 등도 배웠어요. 치과 진료 자체는 재미있는데, 저는 뭔가 파고들고 공부하는 게 좋지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렵더라고요.

시립병원에 잠시 있을 때는 공무원이나 간호사가 환자를 상대해주니 진료만 해도 됐는데, 개원을 하고 보니 환자 관리가 참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발치할 때는 묘한 쾌감이 있잖아요? 근데 환자를 응대하다 보면 갑과 을이 바뀌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다 보니 쉽지 않았죠.”

- 개원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까지 치과 운영을 하고 싶진 않았나보군요. 그러면 폴댄스 때문에 병원을 접은 것은 언제죠?

“병원은 2014년 5월 31일까지 했어요. 병원 옆에 폴댄스 학원을 차렸는데, 이를 1년 간 병행했죠. 당시는 폴댄스 자체가 워낙 희귀한 종목으로 통했기 때문에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문제는 저한테 요가 강사나 필라테스 강사 등 실력 있는 사람들이 배우러 왔기 때문에, 취미나 부업 정도로만 폴댄스를 생각하다 보면 제자들 앞에서 위신이 안 설 상황이었던 거죠. 제자들에게 버젓한 선생님이 되려면 더 몰입해야겠다는 생각에 병원을 접게 됐고요. 병원을 접으니까 피부가 좋아졌어요(웃음).”

-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러면 폴댄스 학원까지 차리게 된 이유는 뭔가요?

“폴댄스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 지식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제가 수원에서 폴댄스를 배운 선생님이 계신데, 그 분 밑에서 배울 때 금속 알레르기 때문에 한동안 고민에 빠진 적이 있어요. 폴댄스를 배운 지 1년이 지나니 실력은 높아지는데, 좀 더 폴에 접촉하는 어려운 동작을 배우면서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런저런 궁리 끝에 오현진 대표가 직접 주문한 폴

알레르기가 없는 재질의 금속으로 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폴 자료에 대한 온갖 내용을 찾아봤어요. 매우 더운 나라에서는 땀에 민감하니까 폴에 자동차 색을 입히듯 분채 도장해서 땀에 상관없이 쓰게 하기도 하고, 동으로 만들기도 하는 등 종류가 많았어요. 결국 수소문 끝에 미국에 있는 언니에게 부탁해 순수 동으로 만든 폴을 구했죠. 배관용 베어링을 양쪽에 꼿은 다음 앙카를 박도록 주문해서 폴을 만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폴댄스에 대한 지식이 쌓이다 보니, 이를 공유할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 거죠. 폴댄스 학원을 오픈했더니 울산에서 오는 등, 폴댄스 애호가들이 전국 각지에서 왔고요. 그때 만난 사람들이 지금의 한국 폴댄스계를 주도하고 있죠.”

 

폴댄스를 통해 새로 개척한 삶
'타인의 시선'에서 '내가 좋아하는 나'로
스스로의 행복이 기준되는 삶

 

- 오 대표님을 두고 한국 폴댄스계의 대모라 할 수 있겠네요. 치과의사의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일단 예전보다 돈은 못 벌어요(웃음). 생활을 좀 다르게 하게 되죠. 예를 들어 예전에는 가방에나 옷에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은 폴댄스 동작을 할 때 다리 찢는 각도를 10도 늘리는 데 관심을 둬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심을 두니 몸도 좋아지고 재미있죠. 아직은 젊으니까 조금 더 하고 싶은 일에 마음 쓰려는, 그런 게 있어요.”

폴댄스 시범을 보이는 오현진 대표

- 치과를 접는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어머니는 절대 반대했어요. 결국 치과를 접은 후 어머니께 통고했죠. 남편은 폴댄스 이야기 때문에 저한테 많이 시달려서(웃음).. 남편한테 폴댄스 얘기를 많이 하다가 학원 사람들과 이야기하게 되니 본인은 자유로워진 거죠. 병원과 폴댄스 학원을 병행했을 때는 남편이 반대했는데, 나중에 병원을 접고 나서는 그러지 않았어요.

병원을 접었던 큰 이유는 결국 일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몸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었죠. 일을 병행한 후 밤 12시가 돼서야 폴댄스 연습을 할 수 있는 생활을 1년 간 하다 보니, 이러다 둘 다 놓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은 폴댄스 학원 하나만 하다 보니 낮에는 낮에 할 일을 하고, 밤에는 집에 가서 잠자고 휴식하고 해요.”

- 요즘은 주변에서 폴댄스 하는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해요?

“요즘은 제가 폴댄스 때문에 TV에 나오니 다들 재미있어 하죠. 언제 또 나가냐고 묻기고 하고 TV에 나오니 자랑하고 싶어 하시기도 해요. 다만 아이들은 제가 새벽이나 주말에 나갈 때가 많아져서 싫어해요. 치과를 운영할 때도 바쁘긴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어요. 주말을 써야 하는 일이 많거든요. 폴댄스를 하면서 촬영이 생기면 주말에 가야하고, 대회도 보통 주말에 열리니까요.”

- 주변 치과의사들 반응은 어때요?

“많이들 부럽다고 해요. 치과에 있다 보면 창살 없는 감옥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있으니까요. 치과의사분들 입장에서는 바깥에서 활동하는 제 모습이 자유로워 보이는지 부럽다고들 하더라고요. 실제로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요.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격려의 말도 해주고요. 저 때문에 폴댄스를 배운 치의들도 있는데 거의 다 그만 두시고, 부산에 한 분이 계신데 매우 심취해서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 덴포토에서 오현진 대표님에 대한 반응이 좋았어요. 덴포토 게시글을 보니 집에 폴을 직접 설치한 분도 있더라고요. 혹시 여전히 치과의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편인가요?

“팬도 있겠지만 안티도 많아요(웃음). 치과의사 커뮤니티에 자주 참여하는 것은 아닌데 치과 쪽 번역 일도 하고 방송에 얼굴을 비치다 보니 사람들이 얼굴을 많이 봤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덧붙여 폴은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 얼마든지 설치해서 할 수 있어요. 폴이 항상 나를 위해 서 있는 거죠. 제가 사용하지 않을 때, 애들에게는 철봉이 돼주기도 하는 게 폴이에요.”

- 폴댄스를 하면 뭐가 좋을까요? 특히 치과의사들에게는 어떤 점이 좋을지 궁금하네요.

“그런 질문들에 답하려고 얼마 전에 책을 출판했어요(오현진 대표는 2016년 5월자로 ‘오현진의 폴댄스 피트니스’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 편집자 주). 보통 폴댄스를 하면 어깨가 망가지거나 손목을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직접 폴댄스를 하다 보니, 도리어 손목과 발목, 무릎의 통증이 사라졌어요. 운동을 하면서 몸의 각 부분이 강화된 덕분인 것 같아요. 특히 여자에게 폴댄스는 '운동의 종착역' 같은 느낌이에요. 단,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해요. 때문에 폴을 잡는 손동작에 대해 많은 연구가 필요하죠. 책을 만든 것도 그런 것의 일환이에요. 어떻게 해야 안 다친다는 것을 보여주니까요.”

- 폴댄스 강사를 하면서 치과의사 출신인 게 영향을 미칠 때가 있어요?

“병원과 폴댄스 학원을 병행할 때는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있어요. 그때는 치과의사라는 게 마이너스로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비키니를 입고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환자들이 볼까봐 신경 쓰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치과를 그만뒀으니 그런 게 없어졌죠.”

- 하루에 폴댄스 연습은 얼마나 해요?

“목표는 하루 세 시간인데 평균 한 시간 반 정도 해요. 칼로리 소모가 엄청나서 많이 먹게 되죠. 살은 찔 때도 있고 안 찔 때도 있어요. 안 해본 동작을 시도하면 칼로리 소모가 많고, 익숙한 동작만 하면 살이 찌죠. 폴댄스는 동작과 동작을 연결하는 조합이 많고, 그 조합이 무한대로 있으니까 항상 새로운 움직임이 만들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운동 효과가 높은 것이 장점이에요.”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삶의 모습 갖추게 돼
"장기간 준비한다면 못 이룰 것 없다"

 

- 폴댄스와 관련해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실 생각이에요?

“사실 폴댄스계도 점점 경쟁이 치열해져서 강사로 살아가는 게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와중에 계속 도모하는 것들이 있죠. 대회 유치 등의 큰 그림을 그려가면서 대한체육회 가입을 염두에 두는 등, 좀 더 영향력을 키우려 하고 있어요. 댄스스포츠가 대한체육회에 가입하고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처럼,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폴댄스의 미래를 그리기 위해 조직체를 갖추려는 거죠.”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주변 치과의사들을 보면 진로 고민을 많이 해요. 치과 말고 다른 돌파구를 찾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분명 치과 말고 자기한테 맞는 특기가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람은 자기 특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 같거든요. 단, 단기간에 이루려고 하면 뭐든 잘 안 돼요. 제 생각에는 10년 정도 하면 못 이룰 게 없을 것 같네요.

저는 원래 운동신경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폴댄스는 제가 가진 열등감에 대한 극복인 거죠. 뭔가를 좋아하게 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남들이 어렵다고 말한 폴댄스 전문가가 됐잖아요. 근데 사람들은 보통 반대로 생각하죠. 저 사람이니까 된 것 아닐까, 하는 마음인 거예요. 게다가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운동하느냐 싶기도 하겠죠. 하지만 어느 고비를 넘기면 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이 되고 체력이 더 좋아져요. 몸치인 저 같은 사람도 지금처럼 살고 있으니까, 남들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다 될 거예요. 이게 반전이죠.”

옷을 입고 할 수 있는 폴댄스 동작에 도전!
몸의 접착면(?)을 넓힌 동작에도 도전-> 30초 매달리기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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