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불사업의 민주적인 토론을 위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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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불사업의 민주적인 토론을 위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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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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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인천시의회 주최로 열린 수돗물불소농도조정(이하 수불)사업 시민토론회에서 진행된 수불사업 찬반토론에서 '선택권'의 문제가 주요한 논쟁의 화두로 떠올랐다. 비단 이날 토론회 뿐만 아니라,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이 수불사업의 안전성·효과성 논란 보다는 '선택권' 문제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한편, 현 대한치과의사협회 전민용 치무이사가 지난 7월 의학 석사 학위 논문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 바 있다. 이에 본 보에서는 전민용 이사의 논문 중 관련 부분을 발췌코자 한다.                                                            편집자

 

수불사업의 민주적인 토론을 위한 전제

"설혹 불소가 절대적으로 안전성을 보증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무차별로 공중의 먹는 물 공급체계에 이것을 첨가하여 마시게 한다는 것은 이미 단순한 권장수준이 아니라 강제적 의료행위라는 비판을 받을 충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수돗물 불소화를 우려한다. 수돗물불소화 반대 2001 전국대회 자료집, 김종철)

"수돗물불소화 프로그램의 제일 중요한 문제는 무엇보다 그것이 '강제적 의료행위'의 한 형태라는 사실이다." (같은 책, 김종철)

같은 글에서 "건강문제는 기본적으로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물론 국가와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범위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치료를 받고 안 받고의 문제, 예방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결정사항임이 분명하다."(김종철)

"수불사업은 의료 행위가 아니라 공중보건사업이란 주장은 주민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얻을 수도 없는 이 사업의 특성을 감추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공중보건사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국민 개개인의 건강을 엘리트 전문가들의 기술 하나로 통제·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 사업을 공중보건사업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김진국, 상식과 전문지식의 갈등-수돗물불소 사업의 경우, 계간 사회 비평 겨울호, 2002)

"충치와 같은 만성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공중보건사업은 바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다."(한영철, 수돗물불소화 논쟁을 보면서, 1999, 건치신서8, 27쪽)

"개인을 대상으로 개인의 건강의 회복을 목적으로 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인이 주체가 되는 진료행위와 달리 공중보건은 해당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주민 전체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해당 정부가 주체가 되어 행하는 것이다. 또한 공중보건은 건강한 사람조차 그 대상에 포함되고 특성상 예방을 위주로 하며 환자를 둘러 싼 사회나 환경적 요인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의료의 공공성에서 공중보건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수불이 의료행위라는 김진국의 주장은 이런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정말로 "수불 사업은 의료 행위가 아니라 공중보건사업이란 주장은 주민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얻을 수도 없는 이 사업의 특성을 감추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라고 본다면, 정말 수불이 사전 동의를 거치지 않은 의료행위라 한다면 무엇보다도 우선 상수도사업본부를 의료법을 위반한 불법의료행위자로서 고발하기만 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터이다."(박한종, 공중보건의 공공성, 그 정치와 철학, 계간 사회 비평 봄호, 2003)

위 인용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반대 측은 수불사업을 강제적인 의료행위로 보고 싶어 하고, 찬성측은 공중보건사업으로 보고 있다는 점과 반대 측은 건강의 책임을 개인에게 둘 것을 강조하고, 찬성측은 앞의 맥락에서 건강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찬성 측 자료들에 많이 인용되는 세계보건기구는 1958년에 수불사업을 안전성과 충치예방효과가 뛰어난 공중보건사업으로 인정하였고, 미국의 복지부 산하의 질병관리청(CDC)은 20세기 미국의 공중보건학이 이룬 10가지 성취(10 public health achievements)를 발표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수불사업을 통한 치아우식증 예방이라고 하였다.

이런 사실 등을 고려하고 공중보건사업의 일반적인 정의를 고려해 볼 때 수불사업은 의료행위라기 보다 공중보건사업이라고 정의하는 게 더 지지를 받을 것 같다. 그런데 앞의 인용글들의 전반적인 맥락을 보면 양자가 보건학의 개념을 가지고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의 문제점을 가지고 찬반을 따지고 있으므로  수불사업이 의료 행위냐 공중보건사업이냐 하는 정의가 양자의 쟁점이 되고 있다기보다 그 앞에 붙이고 있는 수식어가 쟁점이 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즉 "강제적인" 의료행위이다 와 "안전하고 효과적인" 공중보건사업이다가 실제 말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수불사업이 주민의 동의를 얻지 못한 강제적인 사업이라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미국에서는 주로 주민투표에 의해 이 사업의 시행여부를 결정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여론조사, 공청회 등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도 시범사업 이후 처음 실시된 과천에서는 시민운동에 의한 청원으로 실시가 결정되었고, 최근에는 주민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지역 의회에서 수불 사업 자체를 중단시킨 사례들도 있다(청주, 포항).

따라서 수불사업이 주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강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강제적이라는 말이 불화된 물을 먹고 싶지 않은 사람도 먹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면 선택권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수불과 관련된 미국의 법원 판결들을 볼 때 공중의 이익과 개인의 선택권 사이에서는 공중의 이익 쪽에 손을 들어준 것을 볼 수 있지만, 법원의 판단을 묻기 전에 해당 지역에서 충분한 정치적 토론을 통해 주민들 스스로가 공중구강보건이냐 선택권이냐를 놓고 토론을 통해 결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안전성과 예방 효과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공중보건 사업을 하느냐 마느냐의 논란이 필요도 없으며 당연히 시행할 수도 없다. 이 둘은 공중보건사업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반대 측의 김종철도 "설혹 불소가 절대적으로 안전성을 보증하는 것이라 하더라도"(앞의 글)라고 전제하면서 강제적 의료행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사업의 안전성과 충치 예방 효과가 공인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진행해보면 공중보건사업은 지역사회에서 공론을 통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사업 중의 하나이다.

물론 개인의 선택권을 더 중요시해서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희생해서라도 나의 치아 건강은 내가 돌보겠다거나 고비용의 다른 형태의 충치 예방을 지역 주민의 다수가 원한다면 선택할 수도 있다.

건강은 개인이 책임져야한다는 논리에 대해 건강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은 얼마든지 서로 토론하고 합의해 나갈 수 있는 담론들이다. 합의까지 이르면 좋고 합의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토론 과정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다수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것이다.

즉 건강의 사회적 책임과 개인적 책임을 놓고 공론 영역에서 충분히 토론을 통해 합의에 이를 수도 있고 최소한 다수의 의견이 어느 한 쪽을 지지하여 우리 사회의 건강 문제의 방향으로 합의해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개인의 책임은 둘 다 중요한 가치이며 제도의 운용에 따라 얼마든지 양자의 장점을 절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건강은 개인의 책임이며 예방을 하고 안하고도 개인이 결정해야한다는 생각만이 옳다고 보거나 건강은 사회가 책임져야 하므로 사회가 개인의 건강 문제에 대해 전격적으로 개입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만이 옳다고 보는 경직된 사고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반대 측에서 주장하는 불소화된 물을 안 마실 권리와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나 찬성 측에서 주장하는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과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선택권에 우선해야한다는 논리 등에 대해 주민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대중적인 공론 토론과 대화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진행되어 온 수불사업에 대한 논쟁에서 바로 위에서 언급한 공중보건사업에 대한 주민의 선택에 대한 토론이나, 누가 더 개인의 건강에 책임이 있느냐하는 것 같은 정치적인 토론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반대 측이 이런 문제보다 공중보건 사업의 전제 조건인 안전성과 효과(특히 안전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수불을 "공공의 급수체계에 쥐약과 살충제의 원료인 독성물질을 무차별로 투입한다는 것."(같은 자료집, 김종철)으로 표현하고,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물질이라고 선전하는 상황에서 공중보건이나 선택권에 대한 토론은 실종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포항시에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수돗물 불소화 반대 포항시민모임'은 신문광고를 통해 "포항시 수돗물에 투입되는 불소는 ---  체내에 납을 축적시키고, --- 간과 뼈의 암을 유발시키고, 태아의 지능을 저하시키는 역할 ---"등의 내용을 해골 그림과 고농도 불소 휴유증인 골격 불소증 환자의 사진과 함께 홍보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선전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중보건이니 건강권이니 선택권이니 하는 주제의 토론은 실종될 수밖에 없으며 수불 실시에 대한 종합적인 정치적인 대화나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을 바랄 수도 없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이론대로 사회적인 문제인 안전성(위해성)이 전면에 등장하면 이 문제가 실생활에 훨씬 중요한 내용이므로 정치적인 문제인 종합적인 판단이나 선택권 등에 대한 토론은 이에 압도되어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아렌트의 이론으로 보면 사회적인 것들의 해결은 관련 전문가 등의 도움으로 하나의 진리나 하나의 옳은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영역이지만 정치적인 것의 해결은 진리나 하나의 옳은 것이 아닌 다양성에 근거해서 오직 합의와 설득으로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수불 논쟁에서도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분해야 하며 그 목적은 과학적인 문제의 해결을 그 주제에 맞는 영역에서 다루어야 판단이 가능하고 효율적이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를 복원하여, 사회적인 것의 영향력을 벗어나 그 고유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고 정치적인 문제의 해결 주체로서의 일반 주민들의 참여를 전면에 내세우고 수불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데 주민들의 정치적인 권리를 최대한 확대해야 한다는 측면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들의 오랜 생활과 경험으로부터 축적된 삶의 지혜와 통찰력이다. 의과학적인 내용인 위해성이라는 사회적인 측면에 대해서 공론의 영역에서 쌍방이 공방을 벌이는 한 지역 주민들은 의과학적인 주장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마련할 길이 없으므로 양측 주장의 들러리로 전락할 뿐이며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가지고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공론 영역은 막아선 채 서로 말로는 "시민을 위하여, 지역 주민을 위하여 수불을 반대(또는 찬성)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지역 주민들을 철저히 선전의 대상으로 만들 뿐 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반대 측도 진정으로 주민들을 선전선동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내고 수불 문제 해결에의 주민 주체를 말로가 아니라 실제로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수불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상대방을 인정하고 안전성과 효과 같은 전문적인 부분은 이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 등을 통해 검토할 것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고농도 불소의 위해성을 선전에 사용하거나 암 발생 등 확실하지 않은 내용의 대중적인 폭로전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찬성 측 역시 인신 공격 등의 감정적 표현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강조하였지만 안전성과 효과는 공중보건 사업의 필수조건이다.

공중보건사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안전성과 효과에 대한 반대 측의 의문에 대해 사업 시행 주체인 정부가 책임을 지고 국내외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나 기관에 의뢰하여 최소한 일반 시민이라도 완전히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해서 입증하고, 이미 충분히 입증되어 있다면 많은 예산을 들여서라도 효과적인 방법을 통해 홍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 문제에 대한 일반 주민들의 합리적인 참여를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다음의 '수돗물불소화 논쟁검토위원회'의 1999년 '수돗물불소화 논쟁에 대한 검토 보고서'의 결론 부분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현재까지 수돗물불소화와 관련된 논의의 결정은 치과의사 등 전문가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돗물 불소화의 여부는 과학적인 지식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불소화로 인한 치아의 건강 증진, 잠재적인 위험 부담, 개인의 선택의 자유 등의 상반된 가치 사이에 일종의 사회적 판단으로 결정될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수돗물불소화의 최대 수혜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반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위원회의 의견이다.

따라서 수돗물불소화의 이점과 잠재적인 위해도가 전문가들에 의해 검토, 정리되어서 그 내용이 일반 주민들에게 명확하게 설명되어지고, 주민들이나 그 대표기관이 수돗물불소화와 관련된 제반 논점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여 그 지역의 수돗물불소화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인용문을 아렌트의 사상을 참고해 정리해보면 '논쟁검토위원회'의 판단 역시 아렌트의 의견처럼 효과와 안전성 같은 전문적인 부분(사회적인 부분)은 전문가들이 정리하여 주민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종합적 판단(정치적인 부분)은 주민들이나 대표기관이 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전민용(치협 치무이사, 안양 비산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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