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왓디 짜우!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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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왓디 짜우! 치앙마이
  • 홍민경
  • 승인 2016.08.1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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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홍민경 사무국장

본지가 건강사회를 위한치과의사회(공동대표 김용진 정갑천 이하 건치) 서울경기지부 소식지에 실린 건치 홍민경 사무국장의 여행기를 싣는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혼자 시작한 여행은 어느덧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치앙마이 곳곳의 소소한 풍경이 더해져 오래 남을 추억이 된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그가 앞으로 더 멋진 장소, 더 멋진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

-편집자-

왜 치앙마이였을까?

치앙마이를 갔다 왔다고 하면 열에 일곱은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다. 방콕, 푸켓, 파타야를 버리고 왜 치앙마이였을까? 이유가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에 홀려 몇 년 전부터 치앙마이를 앓고 있었다. 이렇게 몇 년째 머릿속에 계속 남아있을 정도면 가야 된다! 가서 실망을 하더라도 일단 가야 된다! 그렇게 올해 1월에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러다 떠나기 보름 전 갑자기 잡힌 회의 일정에 하루 고민해보고 쿨하게 취소했다. 딱히 가야할 이유가 없었다. 전달에 간 교토 여행으로 돈도 많이 썼고 덥지 않은 날로 일정을 잡아 다음에 다시 예약했어도 됐다. 그런데 왠지 지금 아니면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에 초초하고 먹먹해졌다. 결국 취소 수수료 10만원을 날리고 한 주 미뤄 비행기 표를 다시 끊었다. 정말 단단히도 홀렸나 보다.

이번 여행은 혼자 갔던 것이라 살짝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영어도 잘 못하고 또 썽태우 타는 일이 겁나서 며칠 동안 썽태우 후기가 올라온 블로그를 뒤지곤 했다.

치앙마이는 교통수단이 좋지 않다.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썽태우라는, 트럭을 개조한 합승 택시를 타거나 툭툭이라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야 된다. 우리가 익숙한 일반 택시는 공항에서만 운행하고 버스는 시간대와 노선이 엉망이라 현지인들도 썽태우로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썽태우 잡는 법을 검색해보니, 블로그마다 지나가는 썽태우를 손을 흔들어 목적지를 말한 다음 기사님이 오케이하면 타고 안 그러면 다른 썽태우를 잡아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아, 이런 허술한 방법이라니 불안하다. 여행 둘째 날 아침 용기를 내어 썽태우를 잡고,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했다.

 

나: “왓람삥”

기사: “응?”

나: “왓람빵?”

기사: “응?”

나: “왓람뻥?”

기사: “응?”

나: “아, 왓람뿡!”

 

겨우 의사소통을 됐지만 거기까지는 안 간단다. 그 후로 네 차례 정도 허탕을 치고 100바트에 목적지를 갈 수 있었다. 왓람뿡이라는 사원은 외진 곳에 있어 숙소로 돌아갈 때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교통수단인 ‘툭툭’을 타야했다. 툭툭을 처음 타봤지만 왠지 폭발할 것 같은 굉음을 내며 미친 듯이 달리는 터라 다시 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나중엔 나름 요령이 생겨 목적지 방향으로 가서 지나가는 썽태우를 잡은 다음 (내 맘대로) 성조 붙인 목적지를 말하고 잘 타고 다녔다. 어렵게 느껴졌던 일을 해내고 나니 여행 고수처럼 느껴지는 뿌듯함은 덤이다. 또 8인 도미토리를 예약한 것도 나름 소소한 도전이었다. 경비를 줄이려고 예약한 것도 있지만, 수영장도 있고 채식식당도 같이 있고 빵과 직접 만든 망고잼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다.

혼자 도미토리에 묵는 건 처음이고 첫 날 자정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같은 방 쓰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핫가이(hot guy)와 같은 방을 쓸 지도 모른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예약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핫가이는 못 봤고 식당음식은 맛없었다. 하지만 나의 서툴고 느린 영어에도 친절하게 기다려주고 답해준 직원들이 있었으며, 망고와 파파야잼을 얹은 토스트는 지 금도 생각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매일 밤 모기에 수없이 물리고 같은 방 쓰는 사람들에 게 어색한 인사를 하느라 얼굴 근육이 굳었지만, 여행 마지막 날에는 꽉 차있던 방에 두 명만 남게 되니 오히려 허전했다.

처음 계획대로 1인실에 묵었더라면 더 편하게 지냈겠지만, 새로운 시도와 여러 사람들과 지내는 과정에서 경험치와 사교성이 5% 상승한 것 같다. 덤으로 친구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사소한 에피소드도.

태국의 4월은 우기 직전으로 덥고 습해 다섯 걸음만 걸으면 땀이 주욱 나는 날씨다. 썽태우를 타고 편하게 다는 것이 최고지만 나는 주로 걸어 다녔다. 가기 전에 구글 지도로 숙소에서 가고 싶은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을 찾아보고 대충 방향을 익혀뒀다. 치앙마이는 과거 13세기 란 나왕국 때 만들어진 계획도시라 정사각형 성곽(해자) 안에 구획 정리가 잘 돼 있어 길 찾기가 수월했다.

▲카페에 들러 마셨던 음료

또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 어서 천천히 걷고 쉬고 걸어서 다닐 만 했다. 너무 힘들어서 더 못 걷겠다 싶을 때 카페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곤 했지만, 동네 구석구석 널려있는 사원에 들어가 불상과 탑을 바라보며 쉬는 것이 더 좋았다. 작은 도시지만 사원이 참 많았다. 숙소 근처 5분 거리에만 사원이 세 개나 있었다. 그 중 한 사원은 작지만 화려했고 사람도 별로 없어 숙소를 오고 갈 때마다 매일 갔었다.

란나왕국식, 미얀마식 등 사원양식도 다양해 계속 사원만 가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 날도 한참 걸어 다니다 사원에 들어와 불상 앞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주말이라 현지 주민 들도 많이 와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불교신자인 엄마는 때 되면 절에 가서 공양하시고 나도 엄마를 따라 맛있는 것도 먹고 놀러 가는 마음으로 절에도 가고 배타고 공양도 드려봤다.

그건 나에겐 신앙이라기보다는 체험 또는 감상 정도였다. 그런데 불상 앞에서 기도 드리고 있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니 우리 엄마가 그랬겠다 싶었다. 가족들을 위해서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때마다 기도를 드렸겠구나. 울컥해졌다. 그럼 나는 엄마를 위해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여행 간다는 말도 안하고 일이 없으면 연락도 안하는 살갑지 못한 딸을 둔 부모님도 참 그랬겠다...

▲우두커니 선 사원의 탑

그 때부터 쉬러 들리는 사원에서도 잠깐씩 엄마를 위해 기도했다. 뭐, 기도했다기보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들과 같이 여행을 간다면 어떨까. 분명 불편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을지 모르겠고 여행 간다고 갑자기 살가워 지거나 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가족들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당장 가족 여행을 갈 엄두는 나지 않고, 다음에 집에 가면 친구 만난다고 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아침·저녁은 꼭 가족들과 먹어 야겠다.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치앙마이 여행은 솔직히 가기 전의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좀 실망했다. 이게 다 SNS 때문이다. 태국에서도 예술 감각이 뛰어나고 손재주가 타고나 수공예품 품질이 유명한 것으로 알려진 치앙마이다. 그렇기에 자연과 어우러진 킨포크 감성의 가게와 갤러리들을 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선데이마켓에서는 지역 예술가들의 감각 있는 제품이 많다고 해서 일부러 환전도 넉넉히 하고 돈이 모자라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멀리까지 갔는데 문이 닫혀있어 보지 못한 곳도 있었지만 실제에 비해 SNS 사진이 너무 잘 나온 곳도 있었다. 기대했던 느낌은 있었지만 가게 규모라던가 수공예품들의 면면이 ‘이게 다야?’ 싶을 정도여서 당황했다.

사전 정보 없이 봤다면 분명 ‘취향저격’이라며, 소박하고 느낌 있다며 눈이 반짝였을 텐데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보다. 결국 킨포크 스타일 한국에서 찾기로 하고 사원들과 더위를 피해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히려 기대 안했던 사원들이 멋있어서 여러 번 구경했다. 이래서 너무 많이 알아보고 가는 편이 아닌데. 다음에 가게 된다면 SNS를 덜 보고 기대감을 줄이고 마음 편히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가보지 않았던 골목길도 가보고 썽태우를 타고 더 멀리도 나가보고 싶다.

좀 실망했다고 안 가기엔 태국은 많이 매력적이다. 바트도 많이 남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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