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를 기억한다는 것
상태바
히로시마를 기억한다는 것
  • 전진한
  • 승인 2016.08.16 12: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수폭금지2016세계대회 참관기]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부장

광복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빛을 되찾는다’란 뜻이다. 71년 전 한국인에게는 해방과 자유의 빛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인간으로서도 8월을 온전히 기뻐할 수 있을까?

그 해 번쩍이는 빛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무려 십 수만의 목숨을 찢고 태워버렸다는 사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남은 빛을 온몸에 품은 채 지금까지도 삶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같이 기억해야만 한다. 죽음의 빛이 여전히 강하게 타고 있는 세계에서, 인간의 진정한 평화와 생명을 말하기 위해서다.

▲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의 참상을 드러내는 상징이 된, 반파된 채 남은 원폭 돔

이를 잊지 않기 위해 한국의 의료인들도 8월의 히로시마로 향했다.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의 초대로,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반핵의사회, 그리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대생 대표들이 함께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서 마주한 것은 핵의 맨 얼굴이었다. 아침 분주히 시 중심지로 모여들던 사람들을 향해 떨어진 핵은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8시15분에 멈춰버린 시계, 찢겨진 옷가지들, 앙상한 뼈만 남은 어린이의 작은 세발자전거, 밥알마저 까만 재가 되어버린 도시락, 알아볼 수 없이 타버린 어린이들의 사진들. 자료관이 일본의 피해자성만을 부각한다는 비판을 미리 접하고 관람하던 나는 그것이 부당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죽음의 빛에 녹아버린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온전한 피해자였을 것이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어린이 사망자의 유품이었다. 많은 수가 ‘학업’이란 이름으로 폭심지 근처 건물소개(공습이나 화재에 대비해 건물을 파괴하는 일) 작업에 징집돼 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지배층의 전쟁 광기 속에 희생된 이 사람들은 ‘일본인’이기 이전에 목숨을 헌신짝 취급받으며 생명을 착취당하던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가해자’들은 바로 천황, 군부 등 전쟁수행과 배상금을 성장 동력으로 여기며 평범한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사람들이었다.

▲ (왼쪽) 건물소개 작업 중 피폭돼 사망한 어린이. 수많은 12~13세의 어린이들이 이 작업으로 모여 일하던 중 한꺼번에 사망했다. (오른쪽) 3살의 사내아이가 타고 있던 세발자전거. 헬멧과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피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전 생애에 걸쳐 고통받아왔다. ‘피폭의료’를 강연한 민의련 히로시마공립병원 의사 아오키 선생에 따르면 피폭자들은 1945년 이후 처음엔 백혈병, 이후에는 각종 고형암, 그리고 암 외의 다양한 질병에 시달려왔다. ‘가해자’들은 이런 피해자들의 비명에 대해서는 사이코패스처럼 둔감했다. 피폭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치료비와 생활금 제공을 거부했던 것이다. 이에 맞서 민의련 의료인들은 피폭자 인정을 위한 끊임없는 운동과 소송으로 점차 이를 쟁취해왔다고 한다. 외국인 피폭자의 70%에 이르는 한국인 피폭자들의 인정까지도 함께 말이다.

▲ 2012년 5월 109명의 고소인단을 꾸려 피폭자 인정을 위한 싸움을 벌이는 아오키 선생과 피해자들. 전쟁의 상흔을 인정받는 일도 저절로 이뤄지지 못했다

평화기념자료관에는 최근 히로시마를 방문한 오바마가 접고 갔다는 4개의 종이학이 전시돼있었다. 일본에도 책임이 있는 전쟁의 원인 등 평화에 향한 그 어떤 직접적 메시지도 남기지 않던 이 자료관에서 오바마의 종이학만을 전시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 (위) 사사키 사다코가 남긴 종이학.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평화의 메시지는 온전히 남았다. (아래) 평화공원의 종이학. 6일 평화대회에도 각자 접은 종이학을 들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종이학은 바로 사사키 사다코가 남긴 생명과 반핵의 상징이다. 달리기를 좋아했고 어떤 남자아이보다도 빠른 아이였다는 그녀는 1955년 달리던 도중 갑자기 쓰러진다. 2세 때 피폭을 당했던 것이고, 결국 12세의 나이로 백혈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스스로 기록한 혈액 수치 노트가 남겨져 있을 만큼 삶의 애착이 강했던 그는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면 살 수 있다는 전설을 믿고 종이학을 접지만, 미처 다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평화공원에 그를 기리기 위한 종이학들의 물결이 모여 있다.

그런데 민의련 의사들이 지적하듯,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피폭자에 대한 사과도 없었고, 핵무기 폐기를 위한 구체적 언급도 없었다. 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 강화를 위해, ‘과거는 이 정도로 묻고 손을 잡자’는 말을 하러 온 것이다. 그러므로 오바마가 접은 학은 사다코와 피폭자들을 모욕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종이학을 접을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를 어떻게 기억하느냐다. 평화공원을 나서니 극우단체들의 차량행진과 스피치가 극성을 부렸다. ‘일본군이 더 강했더라면 히로시마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히로시마를 기억하는 일본인들도 많다는 말을 들으며 그 생각은 더욱 간절해졌다.

▲ 오바마가 접은 종이학. 그것은 더 이상 평화의 상징이 아니다

피폭자 간담회에서 만난 84세의 오가타 스미코씨는 희망과 신념을 전달해줬다. 13세 때 피폭을 당해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죽어간 상황에서도 홀로 살아남아 “나 자신이 불가사의”라고 말하는 그는, 피폭 당시의 상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며 증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사명이라며, 핵은 사라져야 하고 헌법 9조를 지켜내야 한다는 뜻을 일본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민의련 의료인들은 강한 우정과 연대를 보여줬다. “언제나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의료인이 되자”며, “바다를 건너 연대를 계속하자”는 민의련 선생님들의 말은 모두에게 힘이 됐을 것이다. 히로시마에서 만난 민의련 의료인들은 60년 이상의 역사와 넓은 저변을 가진 민의련의 현재 모습만큼이나 큰 산처럼 느껴졌다. 히로시마 방문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은 마음으로 전달되는 이러한 희망과 신념이었다.

▲ 한국참가자들과 민의련 의료인들 함께 한 ‘2016 원수폭금지대회’ 폐막식. 세계 각국에서 5500명이 참가했다

여전히 핵 없는 세상과 평화는 멀게만 느껴진다. 6일 열린 평화기념식에서 아베 총리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지만, 일본은 후쿠시마 이후 멈췄던 핵발전소를 하나 둘 재가동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얻을 수 있는 플로토늄은 일본이 핵발전소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이미 일본은 쌓여있는 플루토늄으로 핵무기 1200여발을 만들 수 있는 잠재적 핵보유국가로 분류돼 있다. 히로시마의 교훈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일본정부 뿐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또 다시 신규 핵발전소 2개를 허가했고, 이미 핵발전소 밀집 1위 국가인 것도 모자라 이를 더 늘리려 한다.

미국과 일본이 히로시마에서 과거를 지우는 동안, 최근 일본과 한국은 ‘위안부’ 문제를 지워왔다. 최근 두 나라는 일본의 법적 배상 없이 공식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종결해버렸다. 한일 정부는 10억엔의 돈으로 할머니들의 입을 막고,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강제로 덮으려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피폭자의 삶에 무관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무시하며 한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남은 한 축인 한국과 미국은 사드를 배치하며 손을 잡고 있다. 사드는 특히 핵무기 요격용이며, 중국에 대한 핵 선제공격을 위한 것이다. “핵 없는 세상”을 말하는 오바마의 말 역시 위선인 이유다. 한미일 군사동맹 속에 그 민중들은 가장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 매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는 유등을 강물로 흘려보내는 행사를 한다. 폭격 당시 너무 뜨거워 강물로 뛰어들며 죽어갔던 사람들을 기리는 행사다. 등불마다 평화를 기원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다

히로시마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지금 사다코와 히로시마의 피폭자들을 진정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땅 어디에도 사드는 필요없다”며 싸우는 성주의 시민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는 할머니들과 활동가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의 평화운동가, 반핵운동가, 그리고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지키려는 의료인들일 것이다.

일본은 전쟁 직후 평화헌법을 만들고 1947년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그 의미를 담으며 한국어, 중국어로도 번역본을 실었다고 한다. 일본의 평화헌법을 전쟁으로 고통을 겪은 모든 아시아인들에게 알리고 영원한 평화를 선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생략) ... 이번에 헌법에서는 일본국이 절대로 다시는 전쟁을 안 하도록 두 가지 사항을 정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군대도 군함도 비행기도 전쟁을 위한 모든 것을 일체 안가진다는 것입니다. (중략) … 그러나 여러분들은 결코 불안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일본은 옳은 일을 다른 나라보다 먼저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옳은 것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생명과 평화는 그 무엇보다 강하다. 모든 전쟁을 멈추는 것, 그것은 불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유일한 미래다. 우리는 이를 향한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전진한 (의사,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부장)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