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편池上篇 못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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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池上篇 못가에서
  • 송학선
  • 승인 2016.09.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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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밝송학선의 한시산책 24] 지상편池上篇 못가에서 / 백거이白居易
ⓒ 송학선

지상편池上篇 못가에서 / 백거이白居易

십무지댁十畝之宅 열 평의 집

오무지원五畝之園 다섯 이랑의 텃밭

유수일지有水一池 물 있어 못 하나

유죽천간有竹千竿 대나무 있어 천 그루

물위토협勿謂土狹 터 좁다 말하지 말고

물위지편勿謂地偏 땅 외지다 이르지 마소

족이용슬足以容膝 무릎을 펼 만하고

족이식견足以息肩 어깨를 쉴 만 하이

유당유정有堂有庭 집 있고 정자 있고

유교유선有橋有船 다리 있고 배 있으며

유서유주有書有酒 책 있고 술 있고

유가유현有歌有弦 노래 있고 거문고 있다오

유수재중有叟在中 그 가운데 늙은이 있어

백수표연白須飄然 백발도 표연해라

식분지족識分知足 분수 알고 족함 알아

외무구언外無求焉 밖으로 구함 없다오

여조택목如鳥擇木 마치 새가 나무 가리듯

고무소안姑務巢安 어미가 보금자리 가꾸듯

여구거감如龜居坎 마치 거북이가 굴에 살아

부지해관不知海寬 너른 바다를 알지 못하듯

령학괴석靈鶴怪石 신령한 학 괴이한 돌

자릉백련紫菱白蓮 보랏빛 마름꽃 하얀 연꽃

개오소호皆吾所好 내 좋아하는 것

진재오전盡在吾前 빠짐없이 앞에 있어

시음일배時飮一杯 때때로 잔을 들고

혹음일편或吟一篇 이따금 한 편 시를 읊는다오

처노희희妻孥熙熙 처자식 화락하고

계견한한雞犬閑閑 닭과 개도 한가하니

우재유재優哉游哉 여유롭고 넉넉해라

오장종로호기간吾將終老乎其間 내 장차 이 가운데 늙음을 마감하리


백거이(唐772~846)는 자字가 낙천樂天이고,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입니다. 다작多作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존하는 문집은 71권, 작품은 총 3,800여 수로 당대唐代 시인 가운데 최고 분량을 자랑할 뿐 아니라 시의 내용도 다양합니다. 젊은 나이에 「신악부新樂府 운동」을 전개하여 사회, 정치의 실상을 비판하는 이른바 「풍유시諷喩詩(風諭詩)」를 많이 지었으나, 강주사마로 좌천되고 나서는 일상의 작은 기쁨을 주제로 한 「한적시閑適詩」의 제작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밖에도 평소 둘도 없는 친구였던 원진元稹, 유우석劉禹錫과 지은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 등의 감상시도 유명하지요. 백거이가 45세 때 지은 「비파행」은 그를 당唐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꼽히게 하였으며, 또 현종玄宗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시 「장한가長恨歌」도 당시 장안長安의 자랑거리일 정도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풍유시를 주로 했던 시기, 한적시를 주로 지었던 시기 전체를 통틀어, ‘평이창달平易暢達’ 짧은 문장으로 누구든지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을 중시하는 시풍詩風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북송北宋의 석혜홍釋惠洪이 지은 《냉재시화冷齎詩話》 등에 보면, 백거이는 시를 지을 때마다 글을 모르는 노인에게 자신이 지은 시를 읽어주면서, 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평이한 표현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어진 그의 시는 사대부士大夫 계층뿐 아니라 기녀妓女, 목동 같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애창되는 시가 되었습니다.

백거이의 지우였던 원진은 백거이의 문집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 서문에서, "계림鷄林의 상인이 백거이의 글을 저자에서 절실히 구하였고, 동국東國의 재상은 번번이 많은 돈을 내고 시 한 편을 바꾸었다"고 하여, 당시 백거이의 글이 신라에까지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거이는 810년에 당 헌종이 신라의 헌덕왕憲德王에게 보내는 국서를 황제를 대신해 지었으며, 821년에서 822년 사이에 신라에서 온 하정사賀正使 김충량金忠良이 귀국할 때 목종穆宗이 내린 제서도 그가 지었습니다. 그래서 백거이의 시는 당시에 신라에서도 누구나 애창할 정도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벌써 한 20년 지났나 봅니다. 장판 까는 데는 일인자라며 도배하러 온 자칭 ‘마포 김장판’께서 집주인이 마음에 든다며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연배도 나랑 비슷한데 보릿고개 이야기를 곧잘 하시더군요.

“어릴 적,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그날은 무지 기분 좋은 날이지요. 이팝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아니 애들한테 꺼정 해 주시는 게 아니라 손님에게만 쌀밥을 해서 드리지요. 그러면 손님들이 한 삼분지 일 정도는 아이들 먹으라고 남겨 주시거든요. 그런 어느 날 아마 초여름이었던지 꽤 더웠던 날이었나 봐요. 대청에서 밥상 받은 손님을 대청 기둥에 기대어 눈치껏 살피던 동생 놈이 갑자기 울며 대문 쪽으로 뛰어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서 외치는 소리가 ‘으앙 고마 물에 말아뿟다’ 하는 겁니다. 손님이 더우니까 시원하게 말아 자실 요랑으로 밥그릇에 물을 부었던 모양입니다. 물에 말았다는 이야기는 안 남기고 다 자시겠다는 거지요.”

지금도 그 옛날 김장판 이야기를 생각하면 목이 메고 코가 시큰 합니다.

아낌의 미학을 이야기 하려다 슬퍼지네요. 모두가 아낌 속에 여유롭고 넉넉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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