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춘종일립속春種一粒粟 봄에 조 낟알 하나 심으면
추수만과자秋收萬顆子 가을에 낟알 만 개 거둔다
사해무한전四海无閑田 천지에 노는 밭이 없건만
농부유아사農夫猶餓死 농부는 오히려 굶어죽는다
2
서화일당오鋤禾日當午 한 낮이 되도록 김 매느라
한적화하토汗滴禾下土 땀이 나락아래 땅에 떨어진다
수지반중찬誰知盤中餐 누가 알리오, 소반에 담긴 음식이
입입개신고粒粒皆辛苦 알알이 모두 농민의 땀방울인 것을
이신李紳(780~846)의 자는 공수公垂이며, 장쑤성[江蘇省] 우시[無錫] 사람입니다. 진사에 급제한 뒤 국자조교國子助敎, 절동관찰사浙東觀察使를 거쳐 무종武宗 때에는 재상에 올랐습니다.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과 매우 친하였고, 가장 먼저 《악부신제樂府新題》 20수를 지어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시들은 전해지지 않고, 《추석유시追昔游詩》(3권)와 《잡시雜詩》(1권)가 현존합니다. 시호諡號는 문숙文肅이라 합니다.
악부시樂府詩란 민간의 시나 노랫말을 채집한 것을 말합니다. 처음 한무제漢武帝가 교외에서 제사지낼 때 예법을 챙기느라 악부樂府를 설치했고 시인들의 시를 채집하여 노랫말로 묶었습니다. 이는 殷나라 때는 고종瞽宗이라 했고 주周나라 때는 고종瞽宗에 대사악大司樂을 더했으며, 한나라 때 악을 가르치는 관청 악부樂府에서 곽무청郭茂倩이란 이가 악부시樂府詩 백 권을 시경詩經의 속편처럼 내었습니다. 그 후로 시인들은 악부시樂府詩를 노랫말로 지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동악부海東樂府나 동국악부東國樂府 등 악부시가 많습니다.
이어서 또 옛날이야기 하나 꺼내 놓습니다. 20년 전입니다. 과천에서 이웃들과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대담 정리 이현주, 다산글방) 상 중 하권을 다 읽고 책거리하느라 이현주 목사를 모셨습니다. 요즘은 이아무개란 필명을 쓰시더군요. 목사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지난 87년 6월 항쟁 전이었지 아마? 충주 살 때인데, 서울대 무슨 단과대학 학생회장이 나에게까지 기금 마련한다고 찾아왔던 적이 있어. 내가 무슨 돈이 있어.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저녁이나 먹고 가라고 된장찌개에 밥을 차려줘서 먹었지. 그런데 이 친구 국그릇에 밥 말아먹고 두 숟갈 정도 남겨둔 채 수저를 놓더라고. 다 먹었느냐고 물었지. ‘네, 다 먹었습니다’ 하더라고. 그래서 다시 물었어. ‘다 자신거냐구?’ 그랬더니 맛있게 잘 먹었다네. 참을까 하다가, 또 언제 보랴 싶어 이야기했지. ‘나는 어릴 적부터 음식 남기면 혼내는 아버지 밑에 자라 절대로 수채 구멍에 음식물 못 버리는 줄 안다.’ ‘더구나 아파트라서 개도 못 키우고 음식물 퇴비 만들기도 어렵다.’ ‘결국 내가 당신이 남긴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당신이 먹다 남긴 거 나도 먹기 싫다.’ ‘두 숟갈 정도 되니 그것 억지로 먹는다고 배탈 날 것 같지도 않다. 마저 깨끗이 먹어라.’ 그랬더니 이 친구 얼굴이 뻘개지더구만. 우리 집사람은 처음 본 사람에게 무안 준다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이 친구 가면서 이렇게 무안당하기는 제 생전 처음이라며, 그래도 고맙다데, 다시는 음식 남기지 않겠노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