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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배신-진보는 진보하지 않는가?[논설] 송필경 논설위원
송필경 | 승인 2016.09.19 18:06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MIT 석좌교수 노암 촘스키(1928〜)는 자신의 연구실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금언(金言)을 좌우명으로 붙였다. 러셀은 20세기 초중반에, 촘스키는 20세기 중후반부터 21세기인 지금까지 인류의 양심을 위해 행동한 진보 지식인이다.

세 가지 열정 중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란 모든 사회적 약자의 불행과 위로받지 못한 아픔에 대한 공감과 따뜻한 배려를 뜻했다. 이런 자세가 이들이 진정한 진보지식인으로 인류의 존경을 받은 원동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의식으로써 ‘진보(Progress)’란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진보에 대한 규정은 사회 사상적 견해가 매우 다양하게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박하게 말한다면 억압적인 권력과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에 희생당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실천이 아니겠는가?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22세의 청년 노동자가 15세의 어린 여성 노동자의 고통에 대해 연민했고, 이를 사회에 알리고자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보다 더 고귀한 진보가 이 땅에 있었던가?

우리 사회는 해방 후 비로소 서구의 민주주의를 의미도 모른 체 받아들였다. 남한에서 절대적 힘을 휘두르며 오직 반공(反共)만 생각한 미국은 미국적 반공을 재빨리 수용한 친일 부역자와 그 잔재들에 권력을 모두 위임했다. 미국의 등에 올라탄 교활한 친미 권력자들은 형언할 수 없는 독재체제로 민중을 억압했다.

선거란 탈을 쓴 악마적 권력은 자신을 합법적이라 확신했고, 자신의 권력에 반대하는 행동을 취할 경우 반역행위로 몰아 폭력으로 진압했다. 그들이 사용한 아주 잔혹한 폭력도 법적 책임이라는 그물망에 걸리는 법이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사오입 개헌의 이승만, 유신의 박정희, 광주 학살의 원흉 전두환 체제란 가증스러운 독재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치열하게 저항한 행위를 진보라 했다. 우리 사회는 가혹한 탄압에 맞선 이런 대단한 용기 지닌 자들을 진보인사라 부르며 마땅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을 바탕에서 이어진 1987년 6.10항쟁으로 우리 사회는 비로소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했다.

한국전쟁이란 복잡한 내란과 국제전을 겪은 지 37년 만에 거둔 놀라운 수확이었다. 이는 제3세계와 아시아에서 이른바 근대적이라 불릴만한 정치체제를 최단시간에 정력적으로 이룩한 성과라 해도 지나친 말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 진보는 여기서 한계를 맞았다. 6.10 항쟁의 성과는 양김의 분열로 물거품이 됐다. 바로 그 해 1987년 대선에서 즐비했던 반체제 투사들이 대의(大義)보다는 양김 정파의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했다. 뿌리 얕은 진보의 뒤틀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한 일은 김영삼이 왜곡된 지역주의 투표 패턴을 무기 삼아 김대중을 고립시키기 위해 가장 위험한 방법으로 추악한 군사잔재와 손잡은 1990년의 ‘3당합당’이었다.

김대중도 김영삼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김종필의 협조를 얻어야 했으니 누가 누구를 탓하랴! 분명한 것은 3당 합당 이후 이 땅의 그런대로 괜찮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대거 변절하면서 진보가 파열한 점이다.

이런 진보의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했는가?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진보의 가치를 검증(자기 성찰)할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필리핀의 마르코스나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처럼 식민지 해방투사들이 식민지에서 벗어나 정권을 잡은 뒤 독재자로 군림한 예가 제3세계에서는 흔했다.

발등에 떨어진 극악한 반독재 투쟁에 열중하다 보니 미래의 좌표를 설계할 여유가 없었다. 윤리적 나침반을 확보하지 못했기에 나아가야 할 지평을 몰랐다. 이에 약삭빠른 이들은 좋은 기회다 싶어 진보를 밑천 삼아 윤리 없는 세계로 줄달음쳤다. 진보가 윤리 없는 장사로 변질했다.

지금 새누리당의 악랄한 극우 세력, 예를 들어 김문수나 이재오 같은 인물들이 한때 목숨 걸고 진보운동을 하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3당합당 이전의 반독재투쟁에 혁혁한 이들의 피와 땀의 대가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변절의 일상화는 정치인들뿐만이 아니었다. 2002년 대선에서 1970년대 대표적인 학생 운동가였던 이철은 대재벌 정몽준 후보의 똘마니로 전락했다가 정몽준이 노무현과 결별하자 노무현 정부에 안겨 철도청장이란 고위직을 지냈다. 87년 현대 노동자 대투쟁의 상징적 인물이었고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이었던 권용묵 역시 정몽준의 똘마니로 변신했다.

최장집 교수의 말에 따르면, “과거 이른바 진보적인 정부들 역시 경제와 사회정책에서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로 서민과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은 나빠졌고, 국가의 사법 경찰기구들은 충분히 민주화되지 못했고, 소통이 잘 안 됐다.”

‘이른바 진보적인 정부들’ 이후 대중은 진보세력에게 점점 냉소적 태도를 취했고 이제 진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찬사나 숭배의 표시로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정치에서의 진보는 빛이 바랜 지 오래고, 노동계나 교육계 같은 거대한 단체에서마저 진보의 빛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진보적 명망가들이 이끄는 시민단체 역시 진보에 반하는 권위적인 억압이 버젓하다.

드러난 정치적 변절은 하지 않았더라도 내면의 윤리적 성찰을 하지 않은 권위적인 진보인사들도 많다. 진보 인사 내면의 윤리적 성찰은 누구보다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 과거의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자기중심적 과대망상하거나, 윤리적 가치 판단에서 자신의 행위를 배제하는 이율배반적 윤리의식을 지닌 지도자급 인사들이 생각보다 시민단체에 많다.

그 대표적 인사가 반유신의 선봉장이었던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다. 자신의 학문적 명성으로 시민단체를 장악하고서는 형언할 수 없는 고압적 자세로 실무자를 하수인 다루듯 하고 있다. 2013년 12월 평화박물관(평박) 실무자를 부당해고했다. 얼마간 말썽이 일었어도 주위 사람들이 진보에 대한 너그러운 편견으로 대충 넘어갔다.

한홍구 교수는 2016년 3월 또다시 사무처장을 해임하고 실무자들을 단체에서 떠나게 했다. 사태의 원인을 사무처장의 한 사람의 패악(悖惡)으로 몰고 갔다. 평박의 일부 이사들과 많은 연관 진보단체의 인사들은 평박의 파행이 한 교수의 개인적 정념(情念)에서 비롯한 것임을 버젓이 알고 있는데도, 한 교수는 태연하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한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반유신의 학문적 업적에 대해서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조직 안에서는 약자인 실무자에게 유신 독재와 추호도 다름없는 억압을 버젓이 일삼고 있다. 실무자와 대화와 소통에는 터럭만큼도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소아병적 우월감인 명망성을 이용해 자신의 정념을 이루기 위해 실무자를 마녀사냥 하듯 몰고 가고 있다.

진리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만 실현해야 한다. 폭력을 가진 자는 비폭력(평화)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한 교수는 유신의 박정희를 지독한 놈이라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자신이 ‘평박’에서 얼마나 지독한 놈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나는 왜 반유신 투사인 한홍구를 단죄하려고 하는가? 한홍구는 현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해서 제헌헌법 이후 헌법을 파괴한 폭력적 권력자를 단죄하려고 한다. 아주 중요하고 획기적 사업임은 분명하다. 한홍구의 이 작업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지금 한홍구가 평박에서 보인 도덕성으로는 진보의 앞날을 보장할 수는 없다. 진보에 대한 대중의 냉소만 불러올 뿐이다. 나는 한홍구 개인에게는 어떤 증오도 없다. 한홍구가 평박 실무자(약자)에게 보인 연민 없는 억압은 자기 성찰 없는 진보의 아주 나쁜 본보기라 확신한다.“

 

(연세범어치과 원장, 본지 논설위원)

송필경  sp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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