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모든 역사는 지금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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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모든 역사는 지금의 역사이다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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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와 노무현

1974년, 아프리카 ‘킨샤샤’에서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알리와 포먼의 ‘세기의 대결’이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스포츠 스타인 알리는 베트남전쟁에 징집 영장을 받자 “베트남인들은 나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베트남인하고 싸워야 하는가?”라며 징집을 거부하고 전성기 때인 25세에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하였다.

32세가 된 알리는 부당하게 빼앗긴 챔피언 벨트를 되찾기 위해 포먼에게 도전한다. 24세의 젊은 포먼은 40연승 무패의 전적이 보여주듯 그와 대적한 어느 선수도 3회전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종이 울리자마자 포먼은 샌드백 때리듯이 알리를 두들겼다. 그러나 알리는 영리하게 맞았다. 때리라고 몸을 대주면서도 확실하게 수비를 했다. 나중에 알리의 회고에 의하면 포먼의 그 펀치는 대포가 몸통에 터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포먼이 콧김에서 단냄새를 내며 지칠 때까지 8회전을 버텼다. 마침내 포먼이 때려대면서도 헉헉 숨이 가빠했을 때 알리는 숨겨놓은 마지막 힘을 다해 역습의 한 방을 날렸다. 세기의 대결은 여기서 승부가 났다.

엘리트라 자처하는 보수세력은 남루해 보이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링에 오르기 전부터 샌드백 치듯 두들겨 팼으며 마침내 탄핵이라는 회심의 핵펀치까지 날렸다. 그러나 오히려 한나라당, 민주당의 내노라하는 선수들이 넉다운되고 말았다.

베트남전쟁의 교훈

1964년, 미국은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측이 미구축함을 공격했다고 발표를 한다. 나중에 미국방부 비밀보고서가 폭로되어 밝혀졌지만 이것은 ‘턱없는 거짓말’이었다. 이를 빌미로 미국 의회는 존슨 대통령에게 만장일치로 베트남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량권을 부여했다. 존슨은 즉시 북베트남에 대한 ‘북폭’을 명령한다. 그러자 북베트남도 미국과 대결한다고 결정하였다. 누가봐도 메뚜기와 코끼리의 싸움같았다. 선전포고 하나 없이 곧바로 ‘행동’으로 돌입한 북폭은 1973년까지 12O만번 출격하여 베트남 인근에 7백85만 톤의 폭탄을 퍼부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쓰인 폭탄의 3배나 되었다. 그리고 밀림을 말살하기 위해서 75만 ㎘의 고엽제를 살포하였다.

『인간의 정신은 인간이 가진 무기보다 강하다』는 호치민의 항전 호소문과 함께 일어선 베트남 인민은 단결했다. 폭탄이 떨어진 논구덩이에도 벼가 자랐으며 이 생쌀 한줌만으로도 며칠을 버티며 저항하였다. 마침내 미국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전쟁의 덫에 걸려들었고 가까스로 그 덫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는 너무나 엄청난 대가를 치른 후였다. 인류역사상 최강의 제국이라 불리는 미국이 불과 2천만 인구도 되지 않는 아시아의 가련한 농업국가에 넉다운 된 이유는 깨우친 인민 모두가 참여하고 협력하는 “인민의 전쟁(People’s War)”의 속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이 끝날 때까지 개별 전투에서는 거의 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목적하는 전쟁 자체에서는 결코 이길 수 없었다. 침략 전쟁에서 군사력만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 다시말해 ‘인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어떤 전투에서도 전쟁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은 몰랐던 것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막강한 보수 세력이 노무현에게 계속 패배하는 이유도 자신의 힘만 믿고 이를테면 촛불시위 같은데서 드러난 ‘인민의 의지’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파시즘에 대한 항거로 근세 이태리의 도덕적 정신을 상징했던 역사학자 크로체(1866~1952) 는 “모든 역사는 지금의 역사이다”라 하였다. 과거 역사는 나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의 사실은 과거의 관심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의 관심에 대답하는 것이며 바로 ‘지금의 삶’과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의 교훈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가 끊임없이 되묻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탄핵정국에서 힘을 얻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이런 역사적 교훈을 애써 외면하고 고문과 살생이 난무하는 이라크에 파병을 한다면 역사에 무지한 탄핵세력의 몰락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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