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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다시 희망을 꿈꾸며…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01.05 00:00



어느덧 새해는 밝아 왔고, 새해는 언제나 새로운 꿈을 꾼다. 또 새해는 지난 해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한다. 지난 해는 근래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많은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보수세력은 엄청난 경제력과 막강한 언론을 앞세워 그토록 싫어했던 DJ 정부의 맥을 잇는다는 노무현의 당선을 집요하게 막으려고 했고,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인터넷 세대가 똘똘 뭉쳐 오히려 보수의 장벽을 뚫어 그야말로 선거 혁명을 이룩한 것이다.

돈은 물론이고 변변한 정치 계보조차 없었던 그래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어찌 보면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우리 정치도 금권이나 당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줬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보여준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어느 정권과 마찬가지로 옥석이 뒤섞여 있었다. 과정이야 어찌됐던 최고 권력자의 최 측근들이 과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금액을 부정한 방법으로 받았다고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부정한 정치자금을 차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예전에는 조 단위를 훌쩍 넘는 선거비용을 마구 사용했지만 이제는 수 백 억대로 선거비용을 줄인 것은 엄청난 정치 발전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 기회에 검찰 수사를 통해서건 특검을 통해서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사소한 부정이라도 샅샅이 밝혀내어 돈이 들지 않는 깨끗한 선거풍토를 만들어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

참여정부 1년을 평가하면 사회 진보를 갈망하는 측면에선 옥보다 석이 더 많았다. 보수세력 특히 보수언론이 너무나 완강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참여정부’가 외친 개혁이 많은 부분에서 발목 잡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자신의 내공 부족으로 개혁을 이끌어가지 못한 책임이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 대북 송금에 대해 특검을 수용해 남북관계에 심대한 손상을 끼쳤고, NEIS를 둘러싼 교육계 갈등, 새만금 개발과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책 오류는 참여정부 능력에 심한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죽음으로 맞선 노동자들의 절규에 무자비한 공권력만 행사한 모습에서는 차라리 배신감이 솟았다. 그리고 후보 시절 “미국에 대해 호락호락 하지 않겠다”고 친 큰 소리가 무색하게 대통령 취임 뒤 미국을 방문하자마자 미국에 납작 엎드린 굴욕외교는 민족 자존심을 내팽개친 경우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쌍수를 들어주고 이제는 전투병 파병이라는 일종의 ‘침략행위’마저 서슴치 않는 것은 역사에 대한 패륜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현실 정치는 이런 것이다”라는 자조로 가슴을 달래며 참여정부의 실책을 눈감아 줘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이 이것을 ‘예고된 배신’으로 바라보듯, 참여정부가 탄생한 정도로 다시 말해 정치 권력의 변화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진보사회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았다.

스페인 철학자 오르떼가 이 가세트(Ortege y Gasset)는 “국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 나라의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보통사람들의 위상이다”고 했다. 결국 국가는 민중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87년 6월 항쟁이후 결코 짧지 않는 세월 속에서 많은 의료인들이 신념을 갖고 민주화 운동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이제 운동은 투쟁을 하기 보다 자신이 믿은 신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 권력 획득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사회진보를 위한 무기로서의 ‘민족통일, 반전 평화, 노동자와 민중의 권익보호’와 같은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

운동은 사상을 실천하는 일이다. 사상은 정의에 대한 신념이다. 정의, 신념, 사상 같은 것은 그것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경제와 언론을 한 손에 쥔 보수집단이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진보세력을 결코 이기지 못하는 까닭은 사상이 없기 때문이다. 확고한 사상이란 내공 없이 탄생한 노무현 정권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우리는 또렷이 보고 있다.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은 일종의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상으로 무장하지 않은 희망은 단순한 꿈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신념을 품은 사람들이라면 우리 사회 진보에 대해 어떠한 경우라도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송필경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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