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떠나는 '한양도성 성곽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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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떠나는 '한양도성 성곽기행'
  • 조인규
  • 승인 2016.11.08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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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울 성곽길 탐방에 앞서 알아둘 것들
▲서울 인왕산 성곽길
▲한양도성길 전체 코스
▲한양도성길-숭례문-서대문
▲한양도성길-서대문-창의문

본지는 시리즈 기사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이하 인천건치) 조인규 실장의 '한양도성 성곽기행' 기사를 싣는다. 조 실장은 이 여행기를 통해 성곽길 곳곳에 녹아든 역사 속 사연, 여기에 어우러진 다양한 자연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놓을 예정이다. 

-편집자-

▲서울 인왕산 성곽길

서울 성곽길을 틈틈이 걷고 걸어서 한 바퀴 다 돌아보는 것은 정말이지 뜻 깊고 알찬 역사기행이 된다. 정식명칭은 '서울 한양도성'이라고 하는데 이 글에서는 편하게 서울성곽으로 부르겠다.

기행 전에 여러 책들과 자료를 뒤져가면서 답사해야 할 것들에 대해 미리 공부하는 것은 필수다. 서울 한양도성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 책들도 여러 권이 나와 있으니 자신에게 적합한 책을 골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옛 사람들은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꾸준히 걸어 하루 안에 서울성곽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순성놀이라 불렀다고 한다. 18.6km 정도 되는 거리에 4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 길이라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충분히 걸을만한 거리긴 하다. 하기야 조선의 양반들은 웬만한 짐을 하인에게 맡기고 지팡이 하나만 부여잡고 걸었을 테고 지치면 나귀 등에 올라앉았을 테니 순성을 하지 못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성곽길 전체를 하루만에 모두 걷는 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성곽길을 따라 주변에 흩뿌려져있는 수 많은 역사의 흔적들과 문화재들 긴 역사의 산증인이 되어주는 나무들까지 너무나 많은 볼거리 배울거리들이 흩어져 있다. 해서, 이왕 순성길에 오르기로 결심했다면 네번 이상 여러 번으로 나눠서 천천히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아이들과 걸을 때는 스템프 투어 프로그램을 활용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도성을 처음 설계할 때 4개의 내산을 중심으로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만들었던 만큼 성곽기행은 이들을 기준으로 나눠서 진행하는 것이 좋다.

▲한양도성길 전체 코스
▲한양도성길-숭례문-서대문
▲한양도성길-서대문-창의문
  1. 첫째 날은 정동과 인왕산을 걷는 코스로 숭례문(남대문)-정동-인왕산-창의문(북소문)까지 걷는 것으로 한다. 
  2. 둘째 날은 북악산 산행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창의문(북소문)-북악산-혜화문(동소문)까지 걷도록 하자.
  3. 셋째 날은 낙산공원을 걷는 가장 짧은 코스로 혜화문(동소문)-낙산-흥인지문(동대문)까지 걷는 코스다.
  4. 마지막 넷째 날은 남산을 넘는 코스로 흥인지문(동대문)-광희문(남산)-숭례문(남대문)에 도착하며 순성을 마무리 짓도록 한다.

물론 이렇게 코스를 나누는 건 내 마음대로 정한 것이다. 원하는 대로 코스를 늘이거나 줄이면 된다.

순성을 시작하기에 앞서 간략하게 서울성곽을 알아보고 가자 처음 한양도성으로 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으로 천도를 결심하면서부터다. 1396년에 축조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한양으로의 천도를 급히 추진하다보니 궁궐을 지으면서 동시에 도성을 쌓기가 쉽지 않았을 테다. 그러다보니 평지는 토성으로 쌓고 산에만 석성으로 쌓았다고 한다. 결국 세종 대에 이르러서는 평지의 토성도 석성으로 쌓게 된다.

이후 여러 차례 고치고 쌓기를 반복했는데 숙종 대에 크게 개축해 지금 우리가 보는 형태가 됐다. 순성놀이를 하다보면 형태에 따라 태조 대에 쌓은 성돌과 세종 대, 숙종 대 성돌 등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

크게 개축한 사례는 두 번을 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와 2000년대 전후에 진행하고 있는 복원 사례가 가장 큰 개축공사다. 반면 가장 크게 훼손된 때는 일제강점기였다고 보는데, 도성으로 지어졌기에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때 평지에 쌓은 성은 상당수가 철거되는 피해를 입었고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과 도시화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

후에 박정희 정권은 취약한 정권의 정통성을 어떻게든 만회해야 했기에 전국적으로 군사 관련 유적과 역사 인물들을 되살리는 사업을 시행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경복궁의 광화문이 복원됐고 한양도성이 부분적으로 복원됐다. 물론 철저한 고증을 거친 복원일리 없었다. 모양만 흉내내서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또 한번의 훼손에 가까웠달까.

90년대 지방자치가 시행된 이후에 이르러서야 서울성곽은 어느 정도 고증을 거쳐 2000년대에 부분적인 복원이 이뤄졌다. 다만 다분히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게 함정...

아무튼.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서울성곽은 이렇게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백성들의 노동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세계 인류학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산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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