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에 담긴 근현대사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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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에 담긴 근현대사의 흔적
  • 조인규
  • 승인 2016.11.25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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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서울 성곽기행] 숭례문과 소의문을 찾다

지난 시간에 이어, 본지는 서울 도심여행을 떠나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조인규 실장의 글을 싣는다. 순성놀이의 첫 걸음을 떼는 이번 여행지는 '숭례문'과 '소의문'이다.

-편집자-

▲숭례문

자, 이제 순성놀이의 첫 걸음을 디딜 시간이다.

첫 번째 코스의 시작점은 한양도성의 남문인 숭례문이다. 전철을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가면 편하다. 옆에 놓인 작은 안내소에서 스템프 투어 용지를 받아서 첫 번째 스템프를 꾹 눌러서 순성의 시작을 장식하면 되겠다.

숭례문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몇 해 전(2008년) 화재로 문루가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로 인해 국보의 지위를 상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에도, 국보 1호의 재지정 요청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숭례문은 한양도성의 남문이자 정문으로 건축됐다. 높은 석축 위에 중층의 문루를 올려놓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다. 화재 이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화재 후 복원하는 과정에서 일제시대 때 헐린 좌우 방향의 성벽이 조금이나마 연장됐다. 동쪽 성벽은 상당히 길게 연장됐지만 서쪽방향으로는 넓은 도로가 있어서 완전한 복원이 불가능했다. 대신 도로 바닥에 하얀 점선으로 성곽이 지나갔던 방향을 표시만 해두었다. 먼 훗날에는 온전하게 복원돼 양팔을 길게 뻗은 숭례문을 볼 수 있을까.

성문 앞에 서면 생각보다 큰 규모의 성문과 문루에 놀라게 된다. 평지에 놓여 있는 지금의 숭례문에도 웅장함을 느끼게 되지만 사실 옛날의 한양도성 성문은 모두 언덕위에 높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옛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크고 높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 말쑥하게 복원돼 옛스러움을 찾을 수 없는 건 아쉽다. 하지만 멋스럽고 웅장한 위용만은 대단해서 이 건축물을 만들었을 옛날 장인들에 대한 큰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숭례문을 보며 군역에 끌려와 고생했을 백성들의 고단함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성벽을 대하면 새하얀 새 성돌과 어두운 황토색의 옛 성돌이 마치 모자이크처럼 끼워 맞춰져 있어서 묘한 인상을 자아낸다. 늘상 외국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만큼 서울의, 아니 한국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숭례문에서 성곽기행의 첫 시작을 끊었으니 이제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넓은 도로를 건너 대한상공회의소 앞으로 성곽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시작부터 멸실구간이라 김이 빠지긴 한다.

숭례문에서부터 서대문 넘어 서울교육청 앞까지의 긴 구간은 성곽이 거의 자취를 감춘 멸실 구간이다. 부분부분 복원을 해놓은 곳도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고 서소문인 소의문과 서대문인 돈의문은 아예 자취도 남아있지 않다.

이 멸실 구간은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헐렸다. 처음에는 고종 대에 서울에 전차가 다니도록 철길을 놓으면서 헐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일제시대 때 서울을 확장하고 도로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성곽을 헐어냈다. 숭례문의 서쪽 성벽은 1907년 일본의 황태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지나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헐어낸 것이다.

야사에서는 일본제국의 황태자가 조선의 성문으로 고개를 숙이고 지나갈 수 없기 때문에 성문 옆을 헐어내고 신작로를 넓게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헐려나가기 시작한 서울성곽은 일제의 도시계획으로 서울이 확장되고 정비되면서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현재 정부와 서울시는 서울성곽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꾸준히 복원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훼손된 구간 중 상당수는 이미 복원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더 안타까울 뿐이다.

상공회의소 건물의 담장이 성곽이 이어지는 길인데 길고 새하얀 화강암을 너무 반듯하게 쌓아놓았다. 차마 복원된 성곽이라고 부르지 못할 지경이다. 중간 중간 석축 맨 아래층에 황토 빛으로 바래진 진짜배기 성돌을 간혹 볼 수 있다.

머리 위에 쌓아올린 새하얀 새 석축들에 무겁게 짓눌려 언제 바스러질지 모르는 위태롭고 애처로운 모습이라 안타까움만 가득하다. 이렇게 한 블록을 걸으면 중앙일보 앞에 예전 서소문이었던 소의문 터가 나온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성문이 있었던 곳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무런 자취도 남아있지 않다.

초행길이라면 표지석 달랑 하나만 남아있는 소의문 터를 찾기도 어렵다. 그리고 길을 건너면 러시아대사관 앞에 맞닿게 된다. 당연히 접근 금지다. 성곽 복원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는 정동으로 우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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