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꿈, 청소년 창업 인큐베이팅 꿈꾼다"
상태바
"더꿈, 청소년 창업 인큐베이팅 꿈꾼다"
  • 윤은미 기자
  • 승인 2016.12.26 21:12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민용이 만난 사람들]⑭'더꿈'을 이룬 치과의사들의 이야기…김호섭·이창호 원장

 

치과계의 이색인물을 만나보는 본지의 기획인터뷰 『전민용이 만난 사람들』이 열네 번째 인터뷰를 위해 인천의 꿈베이커리를 찾았다. 이번 인터뷰이는 꿈베이커리 창업의 주역인 김호섭 원장과 이창호 원장이다. 인천건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각각 (주)더꿈 대표이사와 대외협력이사를 맡고 있다.

비 오는 겨울, 늦은 저녁 진료를 마치고 꿈베이커리 카페에 들어서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일상인양 익숙했다. 카페에 먼저 도착한 이창호 원장은 처음 이곳 터를 찾았을 때의 흥분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보자마자 '여기!'라는 감이 딱 왔다는 것이다.

50평 남짓 동네빵집을 꿈꿨던 이들이 150평 대지의 5층 빌딩을 세우는 대형사고(?)를 치게 된 전말을 들어봤다. 하나에 꽂히면 반드시 끝을 보는, 가히 인천건치다운 스토리였다.

"이게 하다보면 중독 돼요. 이제 꿈베이커리가 빠진 인생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요. 이걸 안 하면 이제 제가 뭘 하겠어요?"

이날 인터뷰에는 고정 인터뷰어인 본지 전민용 대표이사 외에 김철신 편집국장이 함께 자리했다.

지자체 지원 물거품에도 포기 못해
돌고 돌아 운명처럼 선택한 '꿈터'
'사람'이 모여 '더꿈'을 완성하기까지…

- 전민용(이하 전) : 여기 굉장히 멋있네요.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근사해요.

이창호(이하 이) : 건물 지은이가 친구예요. 건설사 간부로 있다 명예퇴직하고 6개월도 안됐을 때 제가 이걸 한다고 건물을 지어달라고 했죠. 인테리어는 김호선 원장의 동서가 대기업 인테리어 사업부 담당자라 컨셉을 잡아줬어요. 그러다보니 인테리어가 너무 고급이라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거예요.(웃음) 이게 다 호텔에서 하는 인테리어 방식이거든요. 우리가 조금 저렴한 단가로 바꿨는데 그래도 이렇게 고급스럽게 됐죠.

- 전 : 오다보니 주차장도 굉장히 넓게 있어서 단체행사 하기도 좋겠어요.

이 : 주말이면 주차장은 늘 꽉차요. 시에서 운영하는 거라 무료주차장이거든요. 여기다 차를 대고 바다도 가고 놀이기구도 타고 하죠. 작은단체나 법인에서도 수십명씩 이곳에 와서 행사를 해요. 식사는 호텔식으로 뷔페를 마련해주고 있어요. 2층 카페엔 주로 음료 주문 손님이 많아요. 제가 이걸 하면서 커피숍 운영하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웃음)

- 전 : 커피숍은 이제 자리를 좀 잡았죠?

이: 올해 5월에 오픈을 해서 아직은 지나가다 들어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이곳을 좀 알리려고 요즘은 매달 공연을 해요. 이번 달엔 4인조 재즈 공연이 있을 거예요. 지난 달엔 가수가 다녀갔죠. 문화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홍보도 하고, 무대도 갖추고 오픈식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 보이는 이 무대도 처음엔 없었는데, 공연을 하면서 나중에 만든 거예요. 인천건치는 여기서 워크샵도 했어요. 5층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놨는데 이따가 보여드릴게요.

- 전 : 카페와 공연장,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1층엔 뭐가 있나요? .

이 : 1층은 아이들이 빵도 만들고 쿠키도 만드는 체험학습장이 있어요. 이번달만 해도 주말은 예약이 다 찼어요. 아이들 1인당 7천원씩 받는데, 수익면에서도 베이커리 운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창호 대외협력이사와 김호섭 대표

- 전 : 재정 운영은 어떻게 하세요?

이 : 우리가 빵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공급해주고 있지만, 판매는 못하거든요. 비영리단체니까요. 대신 후원금을 받는데, 후원금은 언제든 끊길 수 있으니까 재정 생존력이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카페와 체험학습장을 만들어 사회적기업을 세운거죠. 한마디로 '꿈베이커리'를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이에요.

김호섭(이하 김) : 한 달에 한 번 하는 공연도 수익에 도움을 주죠. 뷔페를 만들어놓고 공연을 하면서 후원자들을 초청해요. 후원자들은 후원금 모금함에 만원 을 넣고 공연보고 식사 하고 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서로 얼굴도 보고. 만원의행복(?) 그런거죠.(웃음)

- 전 : 후원금도 꽤 모으신 것 같던데요.

김 : 인천에 시민운동지원기금(이하 기금)이라고 있는데, 여기 3층으로 이사를 왔어요. 박성표 원장이 대표로 있는 곳이죠. cms를 개인으로 해주는 훌륭한 지역기금인데, 기금을 통해서 비교적 수월하게 후원금을 유치했죠. 이번에 기금이 10주년이 돼서 컨설팅을 받았는데, 성공회대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이 연구를 맡았죠. 연구 결과를 잘 정리해서 내년 초에 토론회도 할 예정이에요.

이 : 아, 산악회도 있어요. 꿈베이커리 하기 전에 박성표 원장하고 김호섭 원장이 사람들을 좀 모아보려고 만든 산악회인데 지금은 그분들이 대부분 꿈베이커리에 들어와서 이사를 맡고 있어요.

김 : 기금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기업체 사람들, 지인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산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산을 타면서 다양한 얘기도 나누고 친밀해지니까요. 그런 의도로 시작했는데, 처음엔 잘 안됐어요. 우리가 병원 때문에 바쁘니까 주로 야간산행을 하잖아요. 모이기가 힘들었죠. 그러던 중에 이창호 원장이 산악회 고문으로 들어오면서 산에만 가면 이제 꿈베이커리 이야기를 나눴죠.(웃음)

- 김철신(이하 신) : 처음 시작할 때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지자체에 도움을 좀 받을 수도 있었을텐데… 부지 마련하고 시작할 때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이 : 관에서 지원을 받으려고 검토하다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송영길 시장이 낙선하면서 협의되던 것들이 다 수포로 돌아갔죠. 거의 다 얘기됐던 건인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정치권과 신뢰를 쌓기까지 시간이 걸리잖아요. 고민했죠. 아이들을 위해 새누리당이라도 손을 잡아볼까 고민했을 정도니까요. 땅도 많이 보러다녔어요. 교회도 보고 절도 봤으니까요. 교회는 마침 인천시 소유의 땅을 약간 쓰고 있어서 우리한테 80평정도의 땅을 쓰라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공간도 괜찮았죠. 그런데 아무래도 종교단체가 같이 있다보니 주체가 종교단체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을 것 같아서 포기했죠. 결과적으로 지자체와의 협약은 잘 안 된 셈이지만, 추후 사업을 추진할 때 협상의 여지는 또 열려있죠.

- 신 : 주주는 몇이나 돼요?

김 : 20명 좀 안돼요. 주주들이 3백만 원씩 출자금을 냈어요. 되도록 인당 3백만 원을 넘지 않도록 해서 동일하게 가려고 했죠. 지분이 어느 한명에게 치우치지 않게 하려는 거죠.

이 : 지방선거가 끝나고 한창 추진되던게 엎어지니까 돌파구를 찾으려고 무진장 애썼어요. 빈땅만 있으면 조립식으로라도 지어보자 했는데, 우리가 무슨 땅을 알아야 말이죠. 하다하다 경매까지 해봤어요. 실제로 입찰도 해보고 입지 조사도 하고, 한 번만 더 유찰되면 우리가 하자 기다리다 또 엎어지고…

김 : 절대 우리 차지는 안되더라고요. 결국은 이건(경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닫고 공부만 엄청 했습니다.(웃음)

- 전 : 저도 20년 전에 전세금이 날아가게 생겨서 경매를 직접 해본 적이 있어요. 은행이랑 붙어서 지켜냈죠. 내가 조금 더 썼더라고요.(웃음)

김 : 맞아요. 다시 거둬들이는 매물도 많고, 우리가 가진 예산이랑 맞을 때까지 유찰도 기다려야 하고 그렇죠. 땅도 알아보고, 건물도 알아보고 그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이 : 지금 이곳이랑 유사한 곳 중에 한 곳에는 옆에 공원이 하나 있었어요. 주차장이 하나 있고 공원도 있고, 지리적으로는 거기가 더 나았어요. 부평구였으니 접근성도 좋고 인구 밀집지역이거든요.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 김호섭 원장하고 나하고 그때부터 거기서 밥 먹고 차 마시고 돌아다니고 살다시피했어요. 그러다 거기 나왔던 경매 물건이 다시 들어가서 또 고민하다가 건물주도 찾아갔죠. 만나서 샅바싸움하다가 졌어요.(웃음) 달라는대로 줄테니 건물 한 번 보자 그래서 갔더니 구조가 우리가 사용할 수 없는 구조여서 또 포기했죠. 그러다 김호섭 원장이 여길 찾아낸 거예요. 제가 김 원장 이야길 듣고 여기를 처음 왔을 땐 여긴 전부 풀밭이었어요. 펜스가 쳐져서 안쪽에 나무가 쌓여있는데, 여길 딱 보는 순간 긴장감이 쫙 돌더라고요. '찌릿'했다 할 까요.

김 : 저는 그 때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갔을 때예요. 이창호 원장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받았더니 "호섭아!!" 하는 겁니다. 아니 실은 그 전에 절을 하나 인수하려고 했는데 저는 거기도 괜찮았거든요. 그런데 이창호 원장이 안된다는 거예요. 계약까지 하기로 하고 하루 전날 이 원장이 반대를 하니까 나도 좀 화가 났고, 말다툼도 있었죠. 그러다 휴가를 갔는데 대뜸 전화로 "나 여기 하고 싶다!" 하니까, 제가 처음엔 도대체 왜그러냐고 그랬죠. 돈도 없는데 땅을 사서 건물을 짓는다고 하니까요. 일단 와보라고 해서 갔더니 주변에 산도 있고 아이들와서 체험학습 할 공간도 있고 괜찮겠다 싶었죠.

'따뜻한 빵'으로 마음 통하고파 시작
비영리 구조에도 6개월만에 적자 극복
우리나라 시민운동 성과의 집합체로…

- 신 : 이렇게 크게 하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이 누구예요? 빵을 제안한 사람이요.

김·이 : (동시에)크게 하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웃음)

김 : 하다보니까 이렇게 커진 거죠. 이 땅을 매입하는 순간 판이 커졌어요.

이 : 폐금 기금 1억3천만 원 정도 있고, 추가로 1억 정도만 더 예산을 모으면 되겠다 했던 게 이렇게까지 커진 거죠. 어떡해요. 이미 사람들과 오래도록 준비해왔던 건데, 여기서 포기하면 실없는 사람이 될텐데 큰일 났다 싶어서 이끌고 오게 된거죠.

전민용 대표이사와 김철신 편집국장

- 전 : 그런데 왜 하필 '빵'이에요?

이 : 빵을 생각하면 따뜻해지잖아요. 애들 어릴 때 제가 빵을 안고 들어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던 기억들 때문인지 '빵'이라고 하면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는 단순히 빵을 주자는 게 아니예요. 체험학습을 하잖아요. 후원자들도 체험학습에 동참할 수 있어요. 후원자가 지원자와 단절되지 않고 가까이서 따뜻함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을 했죠. 처음엔 빵박물관도 함께 해보려고 공부 많이 했어요.

- 전 : 그날 만든 빵만 지원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쉽지 않을텐데…

이 : 인천에 지역아동센터가 200곳이 좀 넘어요. 2014년 기준으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1만4천6백명 정도 있는데, 우리는 관계자까지 1만5천명 정도 지원할 계획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중구, 동구, 남구까지 3개구를 지원하는데, 여기가 중구고 인천시 3개구도 다 인접해있어요. 3개구를 지원하고 있지만 구도심이어서 아이들이 적고 노인 인구가 많아서 지원하는 빵 개수는 2천개가 좀 안돼요. 내년 1월부터는 서구에도 지원을 하려고 논의를 하고 있어요. 서구 하나만 해도 지금 하는 3개구 합한 것만큼 많은데 늘리기로 했어요. 매일 그날 생산한 빵을 지원하다보니 아이들 간식시간은 정해져있고, 그날 한꺼번에 배송하기가 쉽지 않아요. 요일을 달리해서 나눠서 지원하고 있죠.

- 아이들 말고 다른 곳에도 빵을 지원해주기도 하나요?

이 : 어느 단체에서 행사 때 빵을 요청하면 공급해주기도 해요. 판매를 하진 않아요. 주로 후원금을 받고 답례로 빵을 보내는 방식이죠. 대기업에서 체험학숩을 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기업 후원을 받게 되는 거죠.

- 주식회사 더꿈과 더꿈베이커리 직원이 얼마나 되나요?

김 : 빵 생산하는 분들, 체험학습장 운영하는 분들까지 해서 꿈베이커리와 더꿈 각각 3명의 직원분이 있어요. 지금은 430명 정도가 매달 정기 후원금을 내주고 있어서 운영이 되죠.

이 : 지금까지 사업은 적자 없이 잘 가고 있어요. 재정 구조가 빨리 완성된 편이죠. 사실 초기에는 김호섭 원장이 더꿈 대표라고 저한테 말도 없이 혼자 적자를 메우는 시기도 잠깐 있었어요.

김 : 사람들이 구석진 카페를 이용할까. 체험학습장은 될까. 단체에서 이곳에 올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체험학습장이 대박이 났어요. 이럴 줄 몰랐죠. 체험학습장은 오전에는 주로 유치원생들과 어린이집 애들을 받고 있어요. 주말에는 기업체나 가족단위로 참여하고 있죠. 빵은 발효시간이 있어서 체험이 조금 어렵고, 유치원애들은 주로 쿠키를 해요. 아이들이 만든 쿠키는 꼭 기부를 하고 가고요. 그럼 저희는 아이들에게 상장을 주죠. 여기 방문하는 후원자들이 그 쿠키를 구입하고요. 아이들이 만들어도 맛은 비슷해요. 프로토콜이 있으니까요. 그 쿠키를 판매한 수익금이 모아지면 또 어린이들 이름으로 다른 곳을 후원할 생각이에요.

- 전 : 앞으로 다른 계획이 더 있나요?

김 : 지역아동센터를 대상으로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전문교육과 체험교육, 두 가지 방식을 같이 진행하려고 해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체험학습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기업체 후원을 받아서 정식 교육기관 형태를 갖추려고 해요.

지금은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는데 비영리기업이다 보니 주주들에게 이윤이 배당되진 않아요. 정관에 그렇게 나와있어요. 요즘 좀 고민이 드는 건 더꿈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을 것인지에 관한 거예요. 이윤이 배당되지 않는 체제는 같은데 인증은 지원을 받기 위한 거니까 간섭이 생기겠죠. 어떤 게 더 좋을지 꼼꼼히 살펴서 진행하려고 해요. 꿈베이커리는 사단법인 인증을 추진할 계획이에요. 1년간의 사업 성과가 있어야 신청할 수 있어 기다리는 중이죠.

- 김철신(이하 신) : 대단하네요. 이게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총결산이에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식이나, 지원대상을 정하고, 돈을 모으는 방식, 또 지자체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 이런 것들이 다 모여서 이뤄낸 사례예요. 교과서에 나올 이야기죠. 누가 이런 아이디어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20년 넘게 했던 일이니까 활로를 찾아낸 거죠.

이 : 맞아요. 김호섭 원장이나 저나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활동 영역이 약간 달랐어요. 만나는 사람들도 약간씩 달랐고요. 그게 최종적으로는 시너지를 냈던 것 같아요. 또 건치가 지역에서 가진 신망도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 두 사람이 얘기하는 사업도 최종적으로 건치가 뒷받침을 해 줄 수 있겠다는 데서 신뢰를 얻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건치가 있어서 어떤 협상테이블에서도 샅바 싸움도 하면서 우리 요구 조건을 강하게 내걸 수 있었죠.

- 전 : 두 사람은 이제 이곳에 올인하는 인생을 살고 있네요. 두 분 다 얼굴이 밝어졌어요.

이 : 자연히 그렇게 되죠. 여기서 손을 떼면 이제 큰일 나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제 돌아갈 길이 없어요.(웃음)

김 : 돌아갈 다리가 없어요. 돌아갈 다리는 불 살라졌거든요.(웃음)

'음악과 문학'으로 더꿈 더 키우고파
청소년들 세상에 진입하는 통로되길
기업 참여 이끌어 목표 달성할 터

- 전 : 김호섭 원장님은 노래를 하시죠? 성악 이야기도 좀 들어봅시다.

- 신 : 제주도 건치 워크샵에서도 했어요. 약간 연습이 부족했지만(웃음)

김 : (웃음) 자기가 노는 바닥(건치)에서 하니까 뭔가 더 안되더라고요. 꿈베이커리 하기로 하고 뭔가 좀 도움이 되는 일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기부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연자가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기부사업을 이끄는 주체가 매력이 있어야 한대요. 아니 이게 중요하대요. 저는 그런 얘길 거기서 처음 들었어요. 저는 그냥 기부는 하는 일이 정당성이 있고, 후원자와 소통을 잘 하고, 투명하게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기부강의 내용은 좀 달랐어요. 기부를 받으려는 사람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예요. 기부를 받을 사람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매력도 중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준비하기 시작한 게 성악이에요. 예전부터 남들보단 조금 낫다는 게 노래였거든요.(웃음)

더꿈베이커리 개소식에서 성악 무대를 보여준 더꿈 김호섭 대표

- 전 : 언제 공연도 하셨죠?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도 봤어요.

김 : 2년 전에 딱 이맘 때 음악회를 했어요. 제가 출연하고 또 다른 음악하는 분들을 섭외해서 카페에서 음악회를 했어요. 그게 꿈베이커리 선포식하고 비슷하게 됐죠. 그 때 음악회에 참석했던 분들이 이사가 되고 후원자가 돼주시고 그렇게 됐어요. 그 때 재능기부를 해주셨던 분들을 통해서 또 다른 예술을 알게 되기도 했고요. 재능기부도 하다보면 중독되나봐요. 계속 와서 건물도 봐주고, 음향도 봐주고 그래요. 여긴 주주들이 자본금을 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주인이에요.

이 : 김 원장 보면 나도 다음생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웃음)

- 전 : 그럼 악기를 하면 되죠.

이 : 저는 그것도 안 돼요. 제가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박자를 가지고 논대요. 내마음대로 부르니까.(웃음)

김 : 이창호 원장은 요즘 문학을 해요. 여기는 상업용지인데, 문화특구지역으로 계획돼 있거든요. 우리도 음악과 문학을 더해서 문화 컨셉으로 가야죠.

이 : '아마추어 문학의 밤'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악기는 다룬다고 금방 되는 게 아니잖아요. 시를 써보자 해서 요즘 하고 있어요. 지금은 문학관기행 같은 걸 자주 다녀요. 11월에는 진료를 며칠 빼고 태백산맥 문학관하고 박경리 문학관을 다녀왔어요. 아마추어들 문학 행사에 가서 아이디어도 얻어오고 있어요. 하고 싶다고 급작스럽게 되진 않겠지만, 지금은 혼자 끄적거려보고 있어요.(웃음)

김 : 저는 이창호 원장님 시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문학의 밤을 시작하면 그 땐 저보다 더 흥행할 거예요.

- 전 : 신춘문예에도 도전해보세요.

이 : 신춘문예는 하면 떨어질 거니까요.(웃음) 문학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보다 카페 흥행에 도움이 되고 싶은 거예요. 아직은 그 레벨도 안 돼요. 하다보면 되겠죠.

- 전 : 시낭송회를 열어서 시인도 초청하고 하면 좋겠네요.

김 : 그런 것 다 좋은데요. 저는 매출과 연관이 됐으면 더 좋겠네요.(웃음)

이 : 우리는 꿈을 키우기도 하지만 경영인으로서 목표를 이뤄야 할 의무가 있어요. 실질적으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빵도 주지만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건 청소년들이 좀 더 세상에 적극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창업 인큐베이팅을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카페를 하고 있으니까 청소년들을 초청해서 창업 실습 교육도 시켜주고, 분기별로 1명씩 제대로 지원도 하는 거죠. 청소년들은 우리에게 기획서를 내게 되겠죠.

- 전 : 꿈베이커리가 더 잘 돼야겠네요. 여기가 손님을 끌어야 학생들이 배우러 오죠.(웃음) 제가 참여하고 있는 바꿈에서도 청년창업지원법률센터를 만들었어요. 민변과 아름다운재단도 들어와 있고 기금을 만들어서 지원을 하죠.

이 : 그러니까요. 그런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도 좀 더 큰 그림을 생각해요. 기업과 조인해서 1대1로 사업을 이끌어보고 싶어요. 우리도 단순히 지원을 요청하는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기획을 제안하고 기업의 역할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가고 싶어요. 우리가 그런 준비된 기관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김 : 이 원장이 대외협력이사를 맡고 있어 기업이 참여하는 규모있는 사업을 구상해요. 그래서지역 단체나 인맥들도 많이 만나고 있고요.

- 전 : 아름다운재단에서도 그런 지원을 많이 하고 있어요. 거긴 워낙 체계가 잘 잡힌 곳이니 기획서가 들어가면 실사도 나오고 하죠. 그런데 이정도 실체를 갖추고 있으면 문제 없을 것 같아요. 한 번 제안서를 내보세요.

이 : 네. 그래야죠. 우리가 이 사회의 청소년을 다 커버할 순 없지만 다른 영역에서도 할 수 있는 인큐베이팅 포맷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이 그 시작이죠.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꿈베이커리 2016-12-28 14:27:10
ㅠㅠ 감동받았습니다!! 열심히하겠습니다^^

꿈베이커리 2016-12-28 14:12:34
기사 잘 봤습니다. 힘이되는 기사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전민용 2016-12-27 10:15:49
후원광고가 오른쪽 상단에 반짝이고 있네요 후원합시다~~~^^

정말.... 2016-12-27 09:21:29
대단하군요....엄청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분들에게 진정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지역사업의 모범을 보여주셨고, 앞으로도 멋진 모습 지속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