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유방과 지음의 고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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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유방과 지음의 고사를 만나다
  • 김광수
  • 승인 2017.02.1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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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의 중국기행] 한양-귀금사, 고금대

이번 여행에서 김광수 원장이 주목하는 것은 초나라 굴원과 한나라 유방의 이야기이다. 더불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사이인 지음의 고사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현대의 여행 풍경 속에서 옛 중국의 이야기가 중첩된다. 

-편집자-

2400년 전 전국시대의 초나라. 간신들의 모함으로 굴원이 낙향했지만, 맹수같은 이웃인 진나라(秦-훗날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 그 진나라)가 쳐들어오자 초나라는 다시 그를 기용한다. 하지만 이후 굴원은 또다시 버림받는다. 미혹한 군주에 의해 초나라는 다시 진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이에 굴원은 희망이 없음을 알고 음력 5월 5일에 멱라수에 빠져 죽는다(오월 단오날 배에서 송편을 뿌려 물고기가 굴원의 시체를 먹지 않도록 한다는 유래도 여기서 왔다고 한다). 굴원의 이야기는 많은 영화나 문학작품으로도 나왔다.
 
전국시대에는 전국7웅이 유명했는데, 사실 서쪽의 진나라가 가장 강성했다. 강성했다기보다는 호전적이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진나라는 호시탐탐 동쪽 나라들을 정복하려 들었다. 이 같은 시도는 결국 진시황제에 의해 성공을 거둔다. 동쪽 나라들을 이때 합종(약한 나라가 연합해 강한 나라에 대적하는 계책)과 연횡(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붙어 안전을 도모하는 계책)책 등을 쓰게 된다. 이러한 비책들이 모두 야수 같은 진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초나라도 약한 나라는 아니었으되, 맹수 같은 진나라에게는 결국 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구는 한수가 양자강과 합수하는 곳, 즉 한수의 입구이다. 그래서 한구(漢口)다. 한수의 또 다른 입구는 한양이다. 볕이 잘 드는 배산임수의 도읍지에 볕 양(陽)자를 쓴다. 이 한수의 한자는 우리나라 한강의 한자이고, 서울을 뜻하는 한양도 이 한양이다.

물론 중국 글자를 한자라고 하고 중국 글을 한문이라고 한다. 지금 중국어를 한어라고 한다. 이처럼 한(漢) 자는 중국을 대표하는 글자가 됐다. 그것은 물론 중국의 문화가 주로 한(漢)나라 때에 완성됐기 때문이다. 이는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 한나라는 왜 이름이 한나라인가? 한나라를 세운 사람은 유방(劉邦)이다. 초나라의 항우를 쓰러트려서 한나라로 통일했다. 그가 초한지에서 초나라와 싸울 때, 그의 신분이 한왕(漢王)이었고 그의 영토가 한중(漢中)이었다. 한중은 곧 한수(漢水) 지역이다. 그가 왜 한왕이 됐는가? 그의 본시 고향은 패현(沛縣)인데 지금의 서주이다. 군사도 거기서 일으켰다. 지금은 산동성에서 강소성 관할로 넘어갔다. 그러니까 당시로 보면 산동 출신이다.

진(秦)나라의 마지막 황제는 회왕이다.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황실의 존립이 위급할 때에 회왕은 수도인 장안 지역을 먼저 들어와서 방위해 주는 자를 관중의 왕으로 봉해주겠다고 했다.

유방은 전략상 이 수도 지역을 먼저 차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항우보다 먼저 장안으로 (관중으로) 들어와 망해가는 황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얻는다. 그리고 황제로부터 한중의 왕으로 봉해진다.

그리고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장수가 한신이다. 그는 전국 7웅 중 하나인 한(韓)나라의 왕족 출신이다. 그리고 그 한(韓)나라가 바로 이 한(漢)나라 한중 지역이다. 글자는 다르지만 지역은 같다. 한신은 유방을 도와 자기 조국의 부활을 꿈꿨다.

▲<전국 7웅>

 

이 한중 지역은 즉, 장안(지금의 서안)으로부터 한구에 이르는 지역이다. 그러니까 한나라라는 이름은 강 이름인 한수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 당시부터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의 한강 지역을 한수라고 이름 붙였으며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도 그렇게 기록됐다.

한강의 옛 이름이 아리수라고 하던가? 나한테 월급을 주는 데가 ‘한양’이라는 곳이다. 물론 서울이라는 뜻이지만, 그 이름의 유래가 되는 곳에 와 있는 것이다. 별것 아닐지 몰라도 서울에서 열두살부터 살아온 나로서는 한양과 한강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곳에 와 있다는 것이 감회가 좀 남다르다.

더구나 그 도시 이름이 서울과 똑같은 한양이라니. 오늘 아침에 쏘다닌 귀원사, 그리고 고적대 등은 모두 한수 남쪽인 한양 지역에 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남방의 여름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중철 11국

이 '중철 11국'이란 중국철도 11국이라는 뜻이지만. 전국의 고속철도 건설을 도맡고 있다. 굉장히 큰 기관이다. 여기서는 지하철 건설도 담당한다. 중국의 고속철도 총 연장 길이를 생각하면 그 사업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중철 하나하나가 다 우리나라 코레일보다 큰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강 건너 한양 지역의 귀원사로 갔다. 귀원사는 무한 제일의 불교 고찰로 청나라 순치제 때인 1658년 백광법사에 의해 창건됐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중국의 유명하고 큰 절들은 거의 시내 한 복판에 있다. 우리나라에는 유독 중국의 선종 사찰만 소개되어서 절들이 싶은 산속에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

전체 면적은 약 1만㎢. 전체 부지를 4개의 구역으로 나눠 제 각각의 독특한 가람배치를 한 것이 인상적이다. ​평탄지 못했던 역사 때문에 300년 남짓한 기간에 여섯 번이나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의 건물은 중화민국 시절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귀원선사는 ​실제 스님들이 거주하고 공부하는 도량이다. 대개 큰 절에는 나한당이 크게 만들어져 있는데, 귀원사 나한당은 그 기법의 뛰어남과 다양한 표정으로 볼 만하다.

500 나한상이 인상적이다. 나한상 모두의 인상이 다 다르다.

▲지하철을 타고 강 건너 한양(漢陽) 쪽으로 왔다.
▲상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쇠로 만든 왕 목탁
▲귀원선사
▲아침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하늘이 너무 푸르게 나온다. 동물의 표정이 재미있다.
 
 
 
▲나한당
▲하품하시는 나한님
 


사천왕님의 표정이 하나도 무섭지 않다. 요즘 애들 말로는 귀엽다.
무섭지 않은 사천왕으로는 봉은사 사천왕님도 그러하다.

▲대웅전

중국불교의 개혁이 태허스님이 만드신 무창 불학원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했는데, 물론 무창 불학원은 이 무창에 있다. 자료에 보면 동호 옆에 새로 지으려고 했는데, 그것이 뜻대로 안 되고 어느 독지가가 자기 집을 희사해 1921년에 불학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주소는 있지만 나로서는 찾을 엄두가 안 나고, 아마도 지금은 자취가 없어졌을 것이다.

무창 불학원을 설립한 주체들은 물론 무창 사람들이다. 태허 스님께서 몇 년 동안 이 귀원사에서 능엄경 강의를 하시고 나서, 태허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거사님들을 중심으로 무창불학원 건립의 불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귀원사는 근대의 중국불교 개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경각
▲길을 돌아서니.,  멀리 거대한 관세음보살님 입상이 보인다.
 


가까이서 사진을 찍어서 그런데 사실은 이 마당이 무지하게 넓다. 그리고 이 입상은 한국의 낙산사 관음상 만큼이나 무척 크다. 복닥거리는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넓은 마당에 서 있는 이렇게 큰 관음보살상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절에 다니시기를 좋아하셨는데, 이 관세음보살상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제 귀원사를 나와서  인근 고금대로 향한다. 오늘은 두 시 반 기차를 타고 중경을 가야하기 때문에 고금대를 보고는 바로 숙소에 가서 배낭을 가지고 한구 역으로 가야한다.  

▲고금대 가는 길
▲백아와 종자기. 고금대는 백아와 종자기 이야기의 현장이다. 知音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곳이다.
▲거문고를 타는 백아.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 종자기

 

▲거문고를 타는 백아를 표현한 또 다른 모습
▲고금대 공원에서 내려다 본 한수 어귀

 

▲공원내 기념관에서.

 

유백아(兪伯牙)는 진(晉)나라의 거문고의 달인이었는데, 자신의 고향인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휘영청 밝은 달빛아래 거문고를 뜯었는데, 고향 친구인 종자기(鐘子期)만이 그 소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백아가 달빛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뜯으면 종자기는 달빛을 바라보았고, 백아가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뜯으면 종자기도 강물을 바라보았다. 종자기는 거문고 소리만 듣고도 백아의 속마음을 읽어내었다.

그러나 백아가 다시 고향땅을 찾았을 때 종자기는 죽고 없었다. 백아는 친구의 묘를 찾아서 마지막 최후의 한 곡을 뜯고는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자기 거문고 소리를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故事)이고, 이로부터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찾고 한구 역으로 이동해 기차를 타고 중경으로 간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가장 더운 3대 찜통 중의 하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곳. 모택동의 군대가 최후로 장개석의 군대를 몰아낸 곳(중경 전투에서 이겨서 장개석을 몰아낼 수 있었다), 그 중경으로 간다.

動車(KTX)로도 7시간을 간다. 무척 먼 거리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긴 여정이다.

2시반에 출발하면 밤 9시에 떨어지는데, 외국인이 처음 가는 도시에 너무 늦게 떨어지는 것이 걱정이다. 그 점이 이번 여행에서 상당한 고민이 됐다. 그래도 가보는 거다.  그런 게 걱정되면 어떻게 다니겠는가.

그래도 조심은 해야한다. 가능한 한 밤에 도착하지는 말고...

▲한코우 역
 

왼쪽에 보이는 흰 것이 고속철도 길을 다니는 동차(똥처)이다. 중국 고속열차는(우리나라는 이름이 산천인데) 허씨애(和諧)라고 한다. 영어로는 하모니, 조화 뭐 그쯤 되는 뜻이라고 한다.

▲열차에서 파는 도시락 밥.


국수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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