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경의 나한사에서 생일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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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경의 나한사에서 생일을 맞다
  • 김광수
  • 승인 2017.04.14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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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의 중국기행] 중경, 나한사

중국 서부에 위치한 중경은 마천루가 숲처럼 빼곡하게 들어찬 도시다. 그 속에서 김광수 원장은 영화 중경삼림을 떠올리며 도시를 배회한다. 우연히 생일 날짜에 맞춰 찾아간 절인 나한사에서의 시간도 김 원장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된다. 

-편집자-

▲중경 지도

중경에는 기차가 저녁 9시에 도착한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간다고 해도 빨라야 저녁 9시 반이다. 양자강변에 비교적 경치가 좋고 분위기 있을 것 같은 조천문 유스호스텔을 예약하고 싶었지만. 늦게 떨어지는 것을 고려해서 좀더 시내에 지하철 역 가까이 있는 유스호스텔을 예약했다.

내려서도 밤늦게 유스호스텔을 찾지 못하고 헤매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유스호스텔은 지하철 출구 바로 앞에 있었다. 나중에 누가 인터넷에 쓴 것을 보니까. 그 양자강변 조천문 유스호스텔을 찾느라고 고생하고, 밤늦게 깜깜한 데서 트럭들만 쌩쌩 지나가니 무서워서 혼났다는 것이다. 하여, 숙소 선택은 잘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중국은 바다가 동쪽에 있으니까. 지도에서 황하 강이건 양자강이건, 물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비록 물길이 북으로 향해 있다고 해도 그렇다.

여기서 장강삼협 투어가 시작되는데, 삼협 댐(싼샤 댐)이 막히기 전보다 경치가 못해졌다고 하고(물에 잠겼으니까), 또 배에서(할일 없이 경치를 보겠다고) 3일 혹은 5일을 갖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 성질에는 안 맞는다.

이 지도는 얼핏 보면 지난번 무한의 지도와 비슷한데, 무한보다 훨씬 상류다. 그리고 무한에서는 한수(漢水)가 합수했는데, 여기서 합수하는 강은 쟈링강이다.

▲잘 만들어진 지하철
▲늦은 시간이다.

문제는 숙소(와사-瓦舍)를 찾아가 밤늦게 가서 더듬거리는 영어와 중국어로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했다”고 하니 “아무리 찾아도 예약한 근거가 없다”는 답이 왔다. 이사람 저사람 부르고 찾아봐도 “당신은 예약한 일이 없다”고 한다. 이거 또 큰일 났다. 이 밤중에 여기서 쫓겨나면 또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한국에서 출력한 유스호스텔 예약표를 보여주니, “이런 유스호스텔 사이트는 처음 보는데다 . 이런 데가 있었느냐”고 내게 묻는다. 이것 참.. 그래서 “당신네들이 여기 이름과 주소를 올려서 내가 알고 찾아왔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왔느냐”고 하니까, 그건 그렇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을 수도 없어서 “그래, 이건 무시하고 없다 치고”, “내가 묵을 침대가 있느냐 없느냐” 하니까 아, 그건 많단다. 그럼 됐지 무슨 걱정인가. 인터넷의 유스호스텔 예약요금은 돈 천원도 안 된다.
 
알고 보니 세계적으로 유스호스텔 예약을 받는 사이트는 한 개가 아니다. 나는 내가 그동안 이용했던 사이트가 유일한 것이었고, 적어도 유일하지 않다면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중국에서는 그 사이트(https://www.hihostels.com)를 이용하지 않는 유스호스텔도 많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여기를 예약하려면 어느 사이트를 이용하면 되느냐”고 했더니 “인터넷 이용하지 말고 전화를” 하란다, 그게 제일 확실하단다. 제길, 내가 중국말을 잘 못해서 전화를 쓰지 못하는데, 서울에서 전화는 무슨.

아무튼 그래도 거기 벽에 붙어있는 중국 연맹 사이트 주소는 적어 왔다(http://www.yhachina.com/). 거기에는 훨씬 많은 중국 유스호스텔 주소가 적혀 있었다. 다음부터는 이걸 써야지.
   

▲유스호스텔 정문이다.
▲유스호스텔은 청진사 바로 앞에 있다.

모든 중국의 이슬람 사원은 이름이 청진사이다. 지붕에는 하늘색을 칠했으며 양파 형태의 지붕이 있다. 물론, 중국에 이슬람 사원이 많지는 않지만 어디 가더라도 자기들의 신앙을 표시하고 모여서 신앙 행위를 한다. 마치 우리나라 원불교 들이 그러는 것처럼 좋아 보인다.

 
 
 

이 유스호스텔은 중국식 분위기의 그림을 곳곳에 그려 놨다. 어쨌든 소박한 벽화로 젊은이들이 자유스럽게 이용하는 곳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길을 걷다 보니 중경의 빌딩 숲이 나온다. 문득 중경삼림(重慶森林)이라는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과연 중경에는 빌딩이 삼림의 숲처럼 울창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중경삼림 영화를(유명하니까)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으로 서울에 있는 딸내미한테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를 받아 놓으라고 요청하고, 그 아이한테 카톡으로 "여기 중경에는 정말 빌딩들이 삼림처럼 늘어서 있다" 라고 했더니 답이 왔다. "아빠 그 영화는 중경이 아니구요, 홍콩에 있는 중경맨선(청킹맨션)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 어쩐지 홍콩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니...

 
 

삼림 같은 빌딩들 사이로 재개발의 어두운 모습이 보인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요즘 성동구에서 왕십리 재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거기서 살던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집을 잃고 쫓겨난 이야기.,. 거기서 자영업을 하던 수많은 공구가게... 덕트 가게들이 이전할 곳도 이전할 돈도 없고, 거래처를 잃어서 고생한다는 이야기.

멀쩡히 잘 살던 시민 대다수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과연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자본은 돈벌이가 목적이다. 돈벌이는 필연적으로 돈벌이 대상자의 고통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 대상자는 누구인가. 힘없는 서민일 수밖에  없다. 그 서민이란 남이 아니다.

▲길에서 5위안짜리 국수로 아침을 때우는 서민들.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내가 살던 서민 아파트도 개발사업으로  헐렸다. 거기서 살던 어머니 친구들은 모두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머니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거기서 30년 이상을 살았다. 나는 고 2때부터, 그리고 내 동생들은 그보다 더 어려서부터.

우리야 아직 나이가 있다지만.  70 이 넘으신 우리 엄마는 친구들을 다 잃고 이름도 모르던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가야만 한다. 물론 거저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이 있어야 간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불행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중국의 불한당 놈들이 티베트를 점령할 때, 라싸의 포탈라 궁 앞을 깨끗이 쓸어버리고, 거대한 광장을 만들고, 거기에 오성홍기만을 세워 놓았다. 포탈라 궁 앞은 수많은 집들과 골목과, 가게와 술집과, 역사와 사연이 간직된 곳이다. 중국 놈들은  티베트 이들의 가장 사연이 많은 곳, 가장 소중한 곳을 싹 쓸어버린 것이다.
그게 뿌리 뽑힌 삶이다.

▲아침 거리의  모습
 
 

다음날 아침에는 석굴이 있는 대족(따주, 大足)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버스로. 그래서 우선 커윈짠(客運站)에 가서 차편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차편이야 있겠지만. 터미날이 어딘지 어떻게 가는지부터 알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커윈짠은 중경 기차역과 함께 있는데, 복잡하고 정돈이 안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나는 중경 올 때에 고속철로 왔기 때문에 새로생긴 고속철역 (중경북역)을 이용했기 때문에 여기가 낯 설다. 그러나 이 중경 역은 중경의 역사와 함께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역이다.

 

양자강 양안의 급경사에 중경의 중심이 있었기에, 어쩔 수없이  개발에 따라서 고가도로가  엉켜있다. 흔히 스파게티 정션이라고 한다지.  

 

역 앞 양자 강변에 공원을 만들어 놨다. 이름은 산호공원. 이런 걸 보면 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가이드북에 보면 양자강을 건너는 케이블카를 타 보는 것이 중경 코스라는 데 가봤더니 수리를 하는지 탈 수가 없단다. 그냥 거기서 양자강을 건너는 다리만 찍었다. 꼭 케이블카를 타야만 양자강을 보는 건 아니다.

 

멜론을 깎아 나무 막대기에 꽂아서 판다. 2위안이니까 350원 돈이다. 덥고 목마른 데 요게 아주 좋다. 근데 요게 멜론이 아니고, 수박일 경우에는 (고것도 2위안) 더 좋다. 더 달고 더 시원하다.

 

중경 시내에서 가장 큰 절인 나한사를 찾아간다. 나한사는 젖가락길 옆에 있다. 콰이즈(kuaizi)가 젓가락이다. 그 밑에 민족로는 그렇다고 해도, 그 옆에 또 불통로는 뭔가... 거참...

 

나한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중국 절에는 이 분이 꼭 있다. 물론 화차이(發財-돈벌기)를 기원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렇기는 한데, 이분이 원래는 한산 습득의 습득 모습 비슷하기도 하지만, 어떤 데서는 미륵보살의 화신이라고 해서 미륵보살과 동등하게 모시기도 한다. 우리 정서와는 좀 차이가 있다.  

 

작은 석굴모양의 부조물인데(만든 게 아니고 유적이다) 절 안에 있는 게 특이하다. 그만큼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겠지.

 

나한사니까 아무래도 일단 나한님께 인사는 드려야겠다.

 
 
 

향로 앞에 사람들이 많다.

이 절은 사람들이 많다. 이상하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했더니 음력 보름이다.

 

유월 보름이니, 내 생일이다. 생일에 집에서 미역국을 얻어먹지 못하는구나 싶다. 생일에 집에 있지 못 하고 거리로 떠도는 날이 몇해 된다. 올해도 그 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왔다. 생일을 중경의 나한사에서 맞다니, 오히려 경사 아닌가.

 

향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서 스님과 신도님들이 보름날 법회를 하신다. 내 생일 축원도 동시에 자동으로 되는 셈이다. 나도 법당에 들어가서 천연덕스럽게 법회를 같이 했다. 그래야 내 생일 축원이 되지 않는가.

 
 

나한사니까 나한 사진 하나 더.

다음은 나한사에 대한 설명이다.

<<중경시 투중구(渝中区) 민족로(民族路)에 위치한 유명한 사찰로 원명은 치평사(治平寺)이다. 중국의 절은 문화대혁명 당시 상당히 많이 파괴됐고, 종교를 터부시했기 때문에, 역사문화 유적지로 절은 많지만, 실제로 종교적 행위가 벌어지는 곳은 드물다. 그러나 나한사(羅漢寺)는 지금도 현지 불교도들이 항상 붐비는 불교 사원이다. 북송 시대에 건축돼 대략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이다. 문화혁명 시기에 많이 파손된 것을 1984년에 중건했다. 나한당에는 524여 개에 달하는 나한들이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나한사내에는 약 20m의 고불암이 현존하며 송대 석각불상이 400여 존이나 보존되어 있다. 경내에는 사대천왕상명비(四大天王像明碑), 고불암(古佛岩), 나한당(罗汉堂), 미륵각(弥勒阁), 대웅전(大雄殿), 강경루(藏经楼) 방장실(方丈室), 선당(禅堂) 등이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명청시대의 불교 유물이 보존돼 있다.>>

나한사를 나와서 거리를 걸었다. 여기는 중경에서 가장 번화한 해방로(졔빵루) 해방탑이 있는 곳이다. 나한사에서 멀지 않다(나한사가 시내 한가운데 있다는 뜻).

▲중심가의 백화점들을 보니 서울 못지 않게 화려하다.
▲야자수 아래 아가씨들과 학생들이 있다.
▲해방탑 거리
▲먹거리 거리, 이른바 푸드코트.
▲먹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어떤 걸 먹을까.

맛있는 것을 잔뜩 먹고서 쉬었다가 홍암 기념관으로 향한다. 홍암 전투는 장개석과 모택동과의 마지막 전투이다. 2차대전 종전 후 일본이 물러간 후 모택동과 장개석은 제2차(제3차?)  국공 합작을 했는데(물론 그 때는 두개의 나라를 세울 생각은 서로 안 했다) 1949년, 결국 장개석이 먼저 배반하고, 중경 사변을 일으켰다.

전쟁 일으킨 당사자가 질 생각을 하고 일으켰겠나. 혼자 다 먹으려고 일으켰을 터다. 그러나 여기 홍암에서의 치열한 전투 끝에 장개석은 패퇴하여 대만으로 쫒겨가고 모택동 군은 위대한 인민의 승리를 여기서 쟁취했던 것이었다.

홍암전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사진은 다음편으로 넘겨야겠다. 
짜이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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